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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필리핀 ‘셋업 범죄’의 늪, 500만 원 미끼로 시작되는 영혼 파괴 수법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5.2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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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필리핀 ‘셋업 범죄’의 늪, 500만 원 미끼로 시작되는 영혼 파괴 수법
 
최근 필리핀 현지 공권력과 결탁한 이른바 ‘셋업(Setup) 범죄’가 다시 고개를 들며 우리 국민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셋업 범죄는 무고한 민간인을 범죄자로 조작해 가둔 뒤, 석방을 빌미로 거액의 합의금을 뜯어내는 악질적인 국제 범죄 수법이다.
 
특히 최근에는 처음부터 거액을 요구하기보다, ‘500만 원’ 안팎의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액수를 미끼로 던져 피해자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교묘한 작업 방식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교묘해진 수법, ‘500만 원’ 선금의 함정
과거의 셋업 범죄가 처음부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요구하는 정면 돌파형이었다면, 최근의 ‘작업’ 방식은 훨씬 치밀해졌다.
일당들은 타깃의 가방에 마약이나 총기류를 몰래 집어넣거나, 미성년자를 동원한 함정 단속을 벌인 뒤 현지 경찰관을 대동해 현장을 급습한다. 갑작스러운 유치장 수감으로 패닉에 빠진 피해자에게 이른바 ‘현지 해결사’나 브로커가 접근하는 것이 본격적인 작업의 시작이다.
 
이들은 "경찰 간부에게 손을 써서 당장 보석으로 풀려나게 해주겠다"라며 우선 500만 원 상당의 착수금이나 로비 자금을 요구한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500만 원으로 이 끔찍한 상황을 끝낼 수 있다면’이라는 심정으로 송금 버튼을 누르기 쉽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계산된 덫이다. 500만 원이 입금되는 순간, 사기 일당은 피해자의 자금 동원 능력을 확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사건이 상부로 이첩되어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검사 측 조율 비용이 누락됐다"라며 5,000만 원, 1억 원으로 액수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워간다. 결국 처음에 보낸 500만 원이 발목을 잡아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다.
 
공권력 유착과 불투명한 확인 경로가 무기
필리핀 셋업 범죄가 무서운 이유는 실제 현지 부패 경찰들이 범죄에 직접 가담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체포 절차를 밟는 것처럼 위장해 위조된 공문이나 체포영장을 제시하므로, 현지 사정에 어두운 한국인들로서는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이들은 국내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연락할 때도 "현지 보안 문제상 직통 전화가 어렵다"라며 메신저나 확인되지 않는 대포통장, 환치기 계좌로만 송금을 유도한다. 철저히 폐쇄적인 환경을 만들어 피해자가 외부의 정상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고립시키는 전략이다.
 
촉이 왔을 때 멈춰야… "단 1원도 송금 금지"
외교 전문가들과 현지 영사관 관계자들은 필리핀 연루 사건에서 조금이라도 ‘작업’의 냄새가 나거나 석연치 않은 자금 요구가 있을 경우, 단돈 1원도 먼저 입금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돈이 넘어가는 순간 사건 해결은커녕 일당들의 완벽한 타깃으로 고착되기 때문이다.
 
만약 주변 인물이나 지인이 필리핀 현지에서 경찰에 연루되어 급전이 필요하다고 연락해 올 경우, 아래와 같은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공식 경로를 통한 사실 확인: 현지 브로커의 말은 전적으로 무시하고,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이나 외교부 영사콜센터를 통해 실제 체포·구금 여부와 사건 번호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송금 전면 중단: 합의금, 보석금, 변호사 선임비 등 명목을 불문하고 개별적인 송금 요청은 일체 거부해야 한다.
국내 수사기관 신고: 셋업 범죄 정황이 포착되는 즉시 국내 경찰청 외사과나 외교부에 신고하여 국제 공조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
 
한 번 걸려들면 전 재산은 물론 영혼까지 피폐해지는 필리핀 셋업 범죄. 500만 원이라는 ‘미끼 액수’에 현혹되지 않는 냉정하고 단호한 대처만이 추가 피해를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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