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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기획] 모수국과 무지랭이골에 대한 연구 ①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7.10 0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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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지랭이는 어디에서 왔나
  • 생활 지명 하나를 따라가니 ‘모지령’과 모수국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신동명2.jpg


경기 의정부시 고산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치매예방 프로그램 ‘웃음빵빵 두뇌짱짱’ 수업 시간이었다.  

게이트볼을 즐기시는 서금주 어르신이 문득 물으셨다.


“박사님, 이 동네 이름이 왜 무지랭이인가요?”


사연은 분명했다.  

본인이 활동하는 동호회 연습장 이름이 ‘무지랭이 게이트볼’이었기 때문이다. 질문은 금세 공감을 얻었다. 함께 있던 분들도 “무지랭이라면 왠지 어수룩하고 무식한 느낌 아닌가”, “그런 이름이 어떻게 버스정류장 이름으로까지 남아 있느냐”고 거들었다.


순간 머릿속이 바빠졌다.  

설명을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도 그 이름의 사연을 제대로 전해야 했다.


우선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의 ‘무지랭이’는 본래 ‘무지령(無至嶺)’에서 변한 말로 볼 수 있다고. 더 올라가도 마을이 나오지 않는 깊은 골짜기, 혹은 막다른 고개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무지령’이 입에 붙으며 ‘무지랭’으로, 다시 ‘무지랭이’로 굳어졌을 가능성도 덧붙였다.


설명은 일단 통했다.  

그런데 곧장 이런 반응이 나왔다.


“뜻이 그렇다면 무지령으로 고쳐야지요. 왜 무지랭이예요.”


충분히 그럴 만한 문제 제기였다.  

하지만 일주일 뒤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이 지명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더 오래된 이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지령보다 앞선 이름 말입니다.”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제 연구로는, 이곳의 원형이 ‘무지령(無至嶺)’이 아니라 ‘모지령(牟之嶺)’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지령.  

곧, ‘모씨의 나라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모씨의 나라’가 바로 이번 글의 주제인 모수국(牟水國) 이다.


◇ 생활 지명은 때로 고대사의 문을 연다


‘무지랭이’는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다소 거친 이름이다.  

하지만 지명은 현재의 어감만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오래된 지명일수록 발음이 바뀌고, 한자 표기가 덧입혀지고, 후대의 뜻풀이가 반복되면서 본래의 의미에서 멀어지는 일이 흔하다.


이 점에서 ‘무지랭이’는 단순한 속칭이나 별칭으로만 볼 수 없는 이름이다.  

지금 우리가 듣는 ‘무지랭이’라는 발음 뒤에 ‘무지령’이 있고, 그보다 더 깊은 층위에는 ‘모지령’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즉 이 지명은 단순한 생활어가 아니라, 오래전 이 땅을 지나고 정착했던 집단의 기억을 품은 언어일 수 있다는 뜻이다.


◇ 모수국은 실체 없는 전설이 아니다


모수국은 단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허구의 나라 이름이 아니다.  

필자는 중국 측 고대 문헌의 동이 관련 기록, 조선시대 지리지,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문의 ‘모수성(牟水城)’ 표기 등을 모수국 연구의 중요한 단서로 본다.


물론 여기서 곧바로 특정 지역을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문헌에 나오는 ‘모수’와 지금 우리가 상정하는 ‘모수국’을 일대일로 겹쳐 읽는 데에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있다. ‘모수’라는 이름이 고대 동이계 세계의 정치·지리 인식 속에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가볍지 않은 단서라는 점이다.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지명 연구의 가능성을 본다.  

문헌이 남긴 이름과 지역에 축적된 땅이름이 서로 맞물릴 때, 잊혀진 역사의 실마리가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 모수국의 기원, 산둥반도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모수국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고대 산둥반도 일대의 모(牟) 계열 집단, 곧 모이족(牟夷族)의 존재 가능성이다.


산둥성에는 오늘날까지도 ‘모평(牟平)’ 등 ‘모’ 계열 지명이 남아 있고, 고대 수계 가운데는 ‘모수(牟水)’라는 이름도 보인다. 필자는 이 일대에서 활동한 집단이 해상 교역과 농경, 야철과 옥 교역을 바탕으로 상당한 씨족 기반을 형성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후 춘추시대 제(齊)나라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변 동이계 소국들이 강한 압박을 받았고, 일부 집단은 이동하거나 재편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바로 이 시기를 모수국 형성과 연결되는 역사적 배경으로 본다.


핵심은 이것이다.  

그들의 이동이 단순한 유랑이나 표류가 아니라, 일정한 목적지를 염두에 둔 계획적 이동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황해를 건넌 이주민들이 아무 정보 없이 떠난 것이 아니라, 옥이 나는 곳, 농사가 가능한 곳, 내륙 수로로 연결되는 곳을 알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를 ‘기획이동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왜 하필 의정부·포천이었나


이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이것이다.  

서해 연안에는 넓은 평야가 적지 않은데, 왜 굳이 하천 수계를 따라 깊숙한 내륙까지 들어왔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두 가지로 답한다.  

하나는 수로의 존재, 다른 하나는 자원과 지명 흔적이다.


임진강에서 한탄강, 다시 영평천과 포천천, 고모천으로 이어지는 수계는 내륙으로 진입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여기에 의정부 낙양동의 옥재, 포천 일대에 분포한 ‘모·무·거’ 계열 지명이 겹치면, 이 지역은 단순한 통과지가 아니라 일정한 목적성을 지닌 정착지였을 가능성을 띠게 된다.


필자는 특히 다음과 같은 지명들에 주목한다.


- 영중면의 거사리, 옛 이름 거시울

- 영중면의 모루터

- 군내면 구읍리의 모산, 한모루

- 소흘읍 일대의 모산, 솔모루(송우리)

- 고모리, 고모산, 고모저수지

- 무림리, 무봉리

- 의정부 낙양동 일대의 오리골, 옥재


이들 지명이 실제로 하나의 계통적 구조를 이루는지는 앞으로 더 엄밀한 비교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일대에 ‘모’와 ‘무’ 계열의 이름이 유난히 밀집해 있다는 사실은 향토사 연구의 시야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 ‘무지령’보다 오래된 이름, ‘모지령’의 가능성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무지랭이’는 어디에서 왔는가.


필자의 현재 가설은 비교적 분명하다.  

오늘의 ‘무지랭이’는 ‘무지령’의 변형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층위에서는 ‘모지령(牟之嶺)’, 곧 “모수국으로 넘어가는 고개”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 모지령(牟之嶺) : 모씨 집단, 또는 모수국으로 향하는 고개  

- 무지령(無至嶺) : 후대에 뜻이 바뀌며 재해석된 표기  

- 무지랭 / 무지랭이 : 생활 발음 속에서 굳어진 현대 지명


지명은 종종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원래의 뜻은 흐려지고, 발음은 변하고, 후대의 사람들이 다시 자기식으로 풀이를 덧붙인다. 그러다 보면 처음의 이름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실은 변형된 채 오래 버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지랭이 역시 그런 경우일 수 있다.


◇ 지명이 남긴 마지막 기억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필자가 거듭 느끼는 것은 지명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기록은 끊어져도 땅이름은 남는다. 왕조는 무너져도 마을 이름은 살아남는다. 그래서 향토사의 출발점은 거창한 사료집이 아니라, 때로는 주민 한 분의 질문일 때가 많다.


“왜 하필 무지랭이인가.”


이 단순한 물음 하나가, 무지령을 거쳐 모지령으로, 다시 모수국이라는 오래된 이름으로 이어졌다. 아직 더 검토해야 할 대목은 많다. 문헌 대조도 보완해야 하고, 지명 변천 자료도 더 모아야 하며, 고고 자료와의 연계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무지랭이는 단지 듣기 거북한 지명이 아니라, 어쩌면 사라진 고대 정치체의 기억이 남아 있는 언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골짜기 이름 하나가,  

실은 오래전 모수국으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흔적일지도 모른다.


◇ 연재를 시작하며


이번 글은 ‘무지랭이’라는 생활 지명을 출발점으로, ‘모지령’과 모수국의 연결 가능성을 탐색해 본 첫 번째 글이다. 다음 회에서는 의정부·포천 일대의 ‘모·무·거’ 계열 지명을 조금 더 촘촘히 살피고, 오리골·옥재·고모리 등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지명군을 이루는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기고: 땅이름얼세우기총연합회 신동명 대표(교육학박사·서정대 겸임교수)

편집: 메트로포천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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