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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앞 햄버거와 명함 한 장… 밤 깊은 호병골길에서 ‘어른’을 묻다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6.10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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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원 전역 후 제주까지 걷는 청년과 포천시민 홍영식 씨의 따뜻한 조우

[취재수첩] 터미널 앞 햄버거와 명함 한 장… 밤 깊은 호병골길에서 ‘어른’을 묻다

철원 전역 후 제주까지 걷는 청년과 포천시민 홍영식 씨의 따뜻한 조우

 

 최근 한 지역 시민의 SNS에 올라온 짧은 글 한 편이 잔잔한 감동과 함께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포천시민 홍영식 씨. 그가 어제 밤 늦은 시각, 포천시외버스터미널 앞 길 위에서 직접 겪고 써 내려간 고뇌와 온정의 기록이다.

 

어제 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발걸음으로 향하던 터미널 앞은 인적이 끊겨 차가운 밤공기만 감돌고 있었다. 그 쓸쓸한 풍경 속에서 홍 씨의 눈에 유독 커다란 배낭을 멘 청년 하나가 들어왔다. 다가가 말을 건네니, 이제 막 철원에서 전역하고 걸어서 제주도까지 국토 순례를 하는 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청년의 말 한마디는 홍 씨를 순식간에 40년 전 전역하던 자신의 옛 모습으로 이끌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한반도를 조금이나마 눈에 담고 싶어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온몸으로 부딪혔던 그 젊은 날의 푸르던 기억. 홍 씨는 눈앞의 청년에게서 스스로 길 위에서 깨닫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고생길을 자처했던 자신의 청춘을 보았을 것이다.

 

기특함과 동시에 앞으로 청년이 겪어야 할 여정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울지 눈에 선했던 그는 그대로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홍 씨는 청년의 손을 이끌고 근처 롯데리아로 향했다. 따뜻한 햄버거 세트 하나를 청년의 손에 쥐여주는 그의 손길에는 든든하게 먹고 힘내라는 무언의 응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게를 나와 돌아섰지만, 문득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홍 씨는 고백한다. 자신이 청춘의 길목에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이 청년만큼은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가슴 저미게 올라온 탓이다. 결국 그는 다시 돌아서서 주머니 속 명함 한 장을 청년에게 건넸다. "가는 길에 정말 힘들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든든한 말과 함께였다.

 

이후 비척대며 돌아오는 호병골길 위에서 홍 씨는 SNS를 통해 세상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존재하는가’, ‘그 어른을 존중할 젊은이들이 여전히 있을까’ 하는 쓸쓸한 질문이었다. 나이와 경력만을 앞세워 대접받기를 바라는 ‘꼰대’는 넘쳐나지만, 정작 젊은 세대의 아픔을 품어주는 진짜 어른은 실종되었다고 한탄하는 이 시대에 대한 깊은 고뇌였다.

 

그러나 홍 씨가 올린 글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선은 달랐다. 그가 어제 밤 길 위에 남긴 발자취 자체가 이미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명확하고도 따뜻한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어른'은 거창한 권위나 지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청춘의 도전을 무모하다 비웃지 않고 조용히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넬 수 있는 마음, 내가 걸어온 거친 길을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걸어가길 바라는 그 순수한 온정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위대한 힘이다.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존경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존경과 존중은 이처럼 진심 어린 배려를 마주했을 때 젊은이들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감정이다. 터미널 앞에서 홍 씨를 마주한 청년은 힘든 길 위에서 발이 부르트고 비바람을 맞을 때마다, 자신에게 명함을 건넸던 포천의 한 어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아직은 참 따뜻하구나'를 느끼며,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터이다.

 

뜨거운 청춘을 응원하는 방법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의 배고픔을 달래줄 햄버거 하나, 그리고 세상에 내 편 하나쯤은 있다는 믿음을 주는 어른의 따뜻한 시선 하나면 충분하다.

 

호병골길 위로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서 청년의 무사 완주를 함께 기도한다. 지치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제주까지 닿기를. 그리고 포천시민 홍영식 씨의 SNS 글귀처럼, 기댈 수 있는 어른의 든든한 버팀목들이 이 땅의 지친 청춘들의 길을 밝히는 가장 따뜻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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