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반도 평화, 대결이 아닌 교류에서 답을 찾아야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현재의 군사적 긴장과 남북 관계의 냉각만 바라본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분단이 어떤 역사적 경로를 통해 고착됐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1일 열린 제1차 통일교육 강연은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강연은 한반도 분단을 단순한 남북 내부의 충돌이 아니라, 오랜 외세 개입과 국제정치의 산물로 바라보며 자주적 평화 노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사실 분단은 1945년 해방과 함께 갑자기 떨어진 운명이 아니었다. 구한말부터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렸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조선은 주체적 운명을 결정할 힘을 잃었고, 결국 을사늑약과 식민지배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부 세력의 힘의 논리가 지금까지도 분단 구조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더 큰 모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졌다. 전범국이 아닌 식민지 피해국이 분단되고, 민족의 운명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재편 속에서 결정됐다는 점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대목 중 하나다. 우리는 해방을 맞았지만 완전한 자주를 얻지 못했고, 그 결과 분단은 체제가 되고 정전체제는 일상이 됐다. 이 비정상적 구조가 8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반도 문제가 얼마나 깊은 역사적 왜곡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역사 인식은 단지 과거를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다. 강연이 던진 핵심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남북 간 대결 구도를 고착시키는 방식으로는 어떤 안정도, 어떤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사적 긴장을 상수로 받아들이고 적대의 언어를 반복하는 한, 한반도는 늘 외부 힘의 각축장으로 남게 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정전체제를 넘어서는 상상력이고, 대결이 아니라 상생의 구조를 복원하려는 실천이다.
그 실천의 한 축이 바로 평화경제 교류다. 경제협력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체제와 체제가 서로 접촉하고 의존하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다. 개성공단과 같은 시도가 주목받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정치적 변수와 국제관계의 벽 앞에서 지속되지 못했지만, 남북이 적대만이 아닌 협력의 언어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교류와 신뢰, 그리고 공동의 이익을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현실이 된다.
물론 자주적 평화 노선이라는 말은 때로 막연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뜻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외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한반도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우리 스스로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설계하려는 태도다. 그것은 반외세 구호를 외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어떤 방식으로든 긴장을 낮추고 실질적 협력의 공간을 넓히려는 구체적 정책 의지로 이어져야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인식의 변화다. 분단은 너무 오래 지속된 탓에 마치 자연스러운 현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비정상은 익숙해졌다고 정상으로 바뀌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 대화가 번번이 중단되는 구조, 평화보다 적대가 더 손쉬운 선택지가 되는 현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이 분단의 기원과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화가 단지 이상이 아니라 생존과 번영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통일교육 강연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를 다시 호출한 것은 과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기 위해서다. 한반도의 진정한 독립은 형식적인 국가 주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쟁의 공포를 넘어서는 평화체제,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자주적 선택, 남북이 함께 이익을 나누는 상생 구조가 마련될 때 비로소 그 말은 현실이 된다.
결국 평화는 멀리 있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으며, 대결보다 교류를 선택하려는 집단적 의지에서 시작된다. 분단의 진실을 직시하는 일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외면한 채로는 어떤 해법도 나올 수 없다. 이제는 분단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벗어나, 평화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과제로 인식할 때다. 진정한 독립국가는 국경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평화의 능력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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