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로봇 등 첨단 기술이 글로벌 안보 지형을 재편하는 가운데, 한반도 통일 전략 역시 기존 군사·이념 중심 접근을 넘어 기술 패권과 평화경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지난 18일 열린 제2차 통일교육 강연에서 국방대학교 안보정책학부 정한범 교수는 ‘글로벌 정세 변화와 이재명 정부의 통일정책’을 주제로 강연에 나서, 첨단 정보전 시대의 안보 현실과 함께 남북 경제교류를 기반으로 한 평화통일 구상을 제시했다.
이번 강연에서 정 교수가 제시한 핵심 화두는 ‘DMZ 평화특구’와 ‘평화경제’였다. 정 교수는 한반도 긴장 완화의 현실적 방안으로 비무장지대(DMZ)의 군사적 대치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이를 평화특구로 전환하는 구상을 언급하며 “이제는 군사적 대결보다 교류와 관리의 관점에서 접경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21세기 전쟁은 정보전”…AI 시대 안보 구조 변화 진단
정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전쟁 양상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21세기 전쟁은 인공위성과 정찰, 데이터, 네트워크가 결합된 고도의 정보전 양상을 띤다”며 “현대 사회에서 전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특히 AI 기술의 발전과 정보 자산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이 보유한 기술력과 산업 기반이 단순한 경제력이 아니라 안보 역량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북한 역시 이러한 한국의 정보·기술 우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적 충돌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적대적 2국가 관계’로 규정한 데 대해서도, 단순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변화한 군사 현실과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반도체 경쟁력이 곧 안보 자산…기술 패권 시대의 한국 위상 조명
이날 강연에서는 국제정치와 첨단 산업 경쟁이 안보와 직결되는 현실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정 교수는 AI 혁명 시대에 반도체가 전략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며, 한국의 제조 역량이 국가 경쟁력뿐 아니라 외교·안보적 위상에도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AI 산업의 핵심은 결국 반도체와 연산 인프라”라며 “설계와 플랫폼 경쟁 못지않게 실제 생산 역량을 갖춘 국가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이 보유한 반도체 생산 기반은 향후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도 쉽게 대체되기 어려운 자산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중국의 빠른 기술 추격과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과 안보전략, 인재 양성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 “무력통일은 비현실적…남북 경제교류가 가장 실현 가능한 경로”
정 교수는 향후 한반도 통일 전략을 세 가지 경로로 나눠 설명하며, 경제교류 확대를 통한 평화통일이 사실상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주도의 체제 통합이나 군사적 충돌을 통한 일방적 방식은 모두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하면서, 과거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 모델을 재정비해 교류 기반을 넓혀가는 접근이 가장 실질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기의 햇볕정책을 언급하며, 갈등 관리와 경제협력을 병행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개성공단 운영 당시 사례를 소개하며, 남북 교류가 거창한 담론보다 일상적 접촉과 생활환경 변화 속에서 더 큰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협력은 단순한 물적 교환이 아니라 상호 인식의 변화와 신뢰 형성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 산업계도 AI 로봇 중심 재편…안보와 산업 전략 결합 필요
강연 말미에는 국내 산업 구조 재편 흐름도 함께 언급됐다. 정 교수는 현대자동차·기아·LG 등 주요 대기업들이 전통 제조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AI와 로보틱스 중심의 미래 산업 생태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 안보 전략 역시 이러한 산업 변화와 분리해 볼 수 없다며, 기술 경쟁력과 안보 역량, 경제 구조 전환을 하나의 큰 틀에서 연결해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평화 전략 또한 군사적 긴장 완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산업·기술·경제 협력 모델과 결합될 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제2차 통일교육 강연은 첨단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한국의 전략적 위상을 어떻게 통일·안보 정책과 연결할 것인가를 다층적으로 조망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DMZ 평화특구와 평화경제 교류를 축으로 한 접근은, 접경 관리와 남북 관계 개선을 동시에 모색하는 현실적 대안으로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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