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약계층 어르신 위한 ‘내 마음 테라피’ 현장… 말과 침묵, 꽃잎과 향기 사이에서 복지의 본질을 보다







복지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귀에 닿는 것은 소란이 아니라 정적에 가까운 조용함이었다.
바깥은 한낮의 더위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7월의 포천이었다. 햇빛은 선명했고 공기는 무거웠지만, 실내의 분위기는 바깥과는 결이 달랐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도 공간은 차분했고, 그 차분함 속에는 약간의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함께 떠 있었다. 둥글게 놓인 자리마다 어르신들이 하나둘 앉아 있었고, 서로 짧은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는 작았지만 부드러웠다. 아직은 서로의 하루를 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모여 있었지만, 그 풍경은 어딘가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이웃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 7월 7일, 포천나눔의집돌봄센터와 포천시종합사회복지관, 포천시노인복지관이 함께 진행한 ‘2026 노인맞춤돌봄서비스 특화지원서비스 집단프로그램’ 현장은 그렇게 시작됐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오늘도 괜찮아, 내일은 더 단단해질 거야. 내 마음 테라피’.
다정하고도 조심스러운 이 문장은 단순한 행사 제목이라기보다, 누군가의 하루 앞에 먼저 놓아두는 위로의 말처럼 들렸다. 누가 먼저 잘 견디라고 재촉하지 않고, 지금 여기의 마음부터 천천히 살펴보자는 제안 같았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이는 취약계층 어르신 7명.
숫자로만 적으면 크지 않은 모임이지만, 그 일곱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과 사연을 품고 이 자리에 도착해 있었다. 누군가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제 이야기를 해본 지 오래였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흔히 익숙함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노년의 하루는 익숙함보다 침묵에 가까운 날이 더 많다. 몸이 불편해도 말할 곳이 마땅치 않고, 마음이 무거워도 그 무게를 설명하기보다 그냥 삼키는 쪽을 택하는 날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더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 조용함은 때때로 평온이 아니라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 된다.
프로그램은 김주연 상담사의 진행으로 문을 열었다.
처음 대화는 아주 천천히 흘렀다. 누군가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면, 다른 이들도 함께 기다렸다. 성급히 분위기를 띄우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 말을 꺼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섣불리 위로하거나 해석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이 프로그램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꺼냈다.
아주 길지도, 극적이지도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고백 하나가 공간의 결을 바꿨다.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였고, 옆자리에 앉은 또 다른 누군가는 “맞아요” 하고 작게 받았다. 그 말은 단순한 호응이 아니었다. ‘당신의 감정이 낯설지 않다’는 신호였고, ‘여기서는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는 허락에 가까웠다. 그렇게 조심스러웠던 공기는 아주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이 꺼내놓은 것은 대단한 사건이라기보다 오래 쌓여온 일상의 무게였다.
답답했던 순간, 쉽게 가라앉지 않는 마음,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 문득 깊어지는 외로움. 한 사람의 말이 끝나면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니라 공감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태도, 쉽게 해결책을 말하지 않는 배려, 그저 끝까지 들어주는 자세가 그 자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이런 장면 앞에서는 새삼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사람은 조언보다 경청에서 먼저 위로받는다는 것.
누가 내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듣고 있다는 감각, 내가 느끼는 답답함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 그리고 내 하루가 사소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타인의 눈빛.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직접적인 도움만큼, 아니 그보다 더 깊게 마음에 닿는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삶을 버티게 해준 존재들도 하나씩 떠올렸다.
가족일 수도 있고, 오래전 곁을 지켜준 친구였을 수도 있으며, 날마다 밥을 챙기고 하루를 견뎌낸 자기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아픔을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스스로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을 재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날의 대화는 상처를 꺼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상처를 지나오게 한 빛을 함께 찾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어르신들의 표정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굳어 있던 얼굴이 부드러워졌고, 짧은 웃음이 자주 오갔다. 어떤 순간에는 웃음 뒤에 금세 울컥함이 번지는 기색도 보였다. 하지만 그 감정의 흔들림마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오래 혼자 안고 있던 마음이 밖으로 나올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숨결처럼 느껴졌다. 대화가 끝날 즈음, 처음보다 어깨가 조금은 내려가 있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몸의 자세가 풀린다는 것은 때로 마음이 조금 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이어진 시간은 손끝으로 마음을 돌보는 순서였다.
어르신들은 꽃잎을 하나하나 고르며 압화 책갈피를 만들고, 은은한 향을 담은 호두 디퓨저도 완성해갔다. 테이블 위에는 작고 섬세한 재료들이 놓였고, 방금 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손들이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꽃잎을 집어 들었다. 누군가는 색을 맞춰보며 한참을 들여다봤고, 누군가는 향을 맡은 뒤 미소를 지었다. 말이 잠시 줄어든 자리에는 대신 손의 움직임이 생겼고, 그 움직임은 묘하게도 사람을 안정시켰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다.
흩어진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고, 눈앞의 작은 세계를 차분히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꽃잎 하나를 올려놓고 위치를 고르는 짧은 순간에도 사람은 자기 안의 속도를 조절하게 된다. 향기를 담는 행위는 막연한 불안을 구체적인 감각으로 바꾸어놓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활동은 단순한 공예 체험이 아니라,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손끝의 리듬으로 다독이는 시간에 가깝다.
완성된 책갈피와 디퓨저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소박하지만 분명한 기쁨이 비쳤다.
그것은 대단한 성취에서 오는 환희라기보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감각에서 피어나는 잔잔한 만족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는 종종 노년을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곤 한다. 물론 보호는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보호의 대상이기 전에 여전히 표현하고, 선택하고, 만들 수 있는 존재다. 이날의 활동은 어르신들이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무언가를 빚어내는 주체로 다시 서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현장을 보고 있으면, 복지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복지는 예산과 제도로 움직인다. 지원 체계와 사례 관리, 기관 간 협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복지가 정말 사람 곁에 가닿았는지는 결국 현장에서 드러난다. 누군가가 편안히 숨을 쉬게 되었는지, 말문을 열 수 있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오기 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졌는지. 그런 미세한 변화들 속에 복지의 진짜 성과가 숨어 있다.
특히 취약계층 어르신에게 정서적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몸의 건강은 진료와 약으로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지만, 마음의 고립은 더 늦게 발견되고 더 오래 남는다. 하루 동안 누구와 얼마나 대화를 나누는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있는지, 누군가가 내 안부를 진심으로 묻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크고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어르신들의 마음이 지역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존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포천시 관계자는 “복합적인 복지 욕구를 가진 취약계층 어르신들에게는 기관 간 협력과 지속적인 사례 관리가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공공과 민간이 함께 정기적인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그 말은 정책의 방향을 설명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더 오래 남는 것은 문장보다 장면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 완성한 책갈피를 조심스레 들어 보이던 손, 향기를 맡으며 잠시 웃던 표정, 프로그램이 끝난 뒤 처음보다 한결 느슨해진 공기. 그런 것들이야말로 이 자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말해준다.
복지는 때로 거대한 선언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은 순간으로 남는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 끝까지 들어주었다는 기억, 손끝으로 꽃잎을 만지며 마음이 잠시 편안해졌던 감각, “오늘도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정말 조금은 괜찮아졌던 오후. 그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이 한 사람의 하루를 바꾸고, 그런 하루들이 모여 한 도시의 온도를 바꾼다.
포천의 그 여름 오후, 복지관 안에서는 놀랄 만큼 거창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사람에게 닿는 일, 그것은 언제나 작아 보여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
누군가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며 손에 작은 책갈피를 쥐고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은은한 향이 배인 디퓨저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모두의 마음속에는 같은 문장이 조용히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오늘도 괜찮아.
내일은 더 단단해질 거야.
메트로포천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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