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비애를 성찰로 승화시킨 ‘공부’, 소외된 이웃 향한 깊은 연민과 위로 전해

인생의 고비마다 마주하는 슬픔과 고통을 ‘공부’라는 한마디로 품어 안는 시심(詩心)이 시민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김사인 시인의 시 ‘공부’가 서울 광화문글판의 문안으로 선정되며, 일상의 비애를 삶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깊은 통찰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김사인 시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수록된 시 ‘공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순간을 “마지막 큰 공부”라고 표현한다. 시인은 “어머니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을 두고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 비로소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이 된 것 같은 평온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넘어,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이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성찰의 과정이다.
박준 시인은 이에 대해 “명석하거나 영특해서 절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기를 쓰고 애를 써서 끝내 알아내고 마는 것”이 공부라고 정의하며, 타인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그 속내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곧 가장 아름다운 공부임을 역설했다.
김사인의 시선은 유독 낮고 소외된 곳을 향해 머문다. 시 ‘바짝 붙어서다’에서는 승용차가 지나갈 때 골목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바짝 붙어 서는 팔순 노파의 고독한 뒷모습을 관찰하며, 그 헐거운 몸뻬와 기운 싱크대 너머의 고단한 삶을 연민의 눈으로 응시한다. 또한 ‘비둘기호’에서는 어린 시절 검표원 앞에서 나이를 속여야 했던 가난한 아버지의 서러운 뒷모습을 통해 인생의 비참함과 섧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버스 안에서 어린 여동생을 챙기는 오빠의 모습(‘오누이’)이나, 말없이 곁을 지키는 낙엽 하나(‘조용한 일’)에서도 발견된다.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는 구절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광화문글판 선정 이유에 대해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 사람과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 ‘인생 공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공동체의 따뜻한 시선이 우리를 위로하고 있음을 떠올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사인 시인은 1981년 등단 이후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시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는 삶의 비애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 속에서 견뎌내는 힘을 길어 올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 공부지요”라는 그의 말처럼, 시인은 오늘도 세상이라는 교실에서 누군가의 곁을 “골똘히 지켜서며” 삶의 비급을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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