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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포천 '420 두바퀴로 가는 세상', 빗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연대의 발걸음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4.1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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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걷는 길 위에서, 권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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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0일 오전, 포천 소흘읍 일대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이슬비가 내렸다. 도로는 젖어 있었다. 그러나 소흘읍행정복지센터 앞에 모인 사람들은 우산 대신 우비를 걸쳤다. 휠체어 바퀴가 빗물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2026 포천시 420 장애인 권익옹호연대 — 두 바퀴로 가는 세상 도보행진'이 그렇게 시작됐다.


■ 빗속에 펼쳐진 노란 현수막


행진에 앞서 교차로 한복판에 노란 현수막이 펼쳐졌다.


"포천시 420 장애인 권익옹호 연대 / 포천나눔의집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글씨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현수막 네 귀퉁이를 참가자들이 손으로 잡았다.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관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차량들이 멈췄다. 도심 교차로가 잠시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휠체어를 탄 참가자가 현수막 옆에 자리를 잡았다. 흰 우비를 뒤집어쓴 사람이 그 곁에 섰다. 비는 계속 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이 장면 하나가 이날 행사의 전부를 담고 있었다. 불편한 날씨, 불편한 도로, 불편한 시선—그 모든 불편함 속에서도 이 자리에 있겠다는 것. 그것이 14년째 이어져 온 이 행진의 언어였다.


■ "두 바퀴로 가는 세상"


행사 현수막에는 참여 단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포천나눔의집장애인자립생활센터, 경기북부장애인교육권연대,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주시지회,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포천시지회,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포천지회,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의정부세움자립생활센터, 의정부장애인자립생활센터, 포천시민사회단체연대, 햇빛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포천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함께여는세날 장애인야학…


한 단체가 아니었다. 한 지역이 아니었다. 경기 북부 일대의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포천에 모였다. 그 이름들이 현수막 위에서 빗물에 젖으면서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행진 거리는 소흘읍행정복지센터에서 출발해 약 11.5킬로미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거리다. 그러나 휠체어 바퀴로, 보조기구를 짚으며, 빗속에서 걷는 11.5킬로미터는 다른 무게를 가진다.


■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


행진 출발 전 발언이 이어졌다.


주행사 차량 뒤편에 마이크가 설치됐다. 빗속에서 우비를 입은 채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주황색 조끼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장애인 시대로 민주주의."


그는 주먹을 쥐어 올렸다.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나왔다.


옆에는 정장 차림에 초록색 우비를 걸친 남성이 서 있었다. 그도 주먹을 들었다. 두 사람의 손이 같은 높이에서 같은 방향을 향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과 서 있는 사람. 그 두 손이 나란히 올라가는 장면이 이날 행사의 상징처럼 남았다.


하지만 또 한 명의 발언자는 달랐다. 마이크를 잡고 웃고 있었다. 빗속에서, 우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그러나 표정은 밝았다. 옆에 선 사람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았다. 무거운 구호보다 그 웃음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 휠체어와 두 발이 나란히 움직인 거리


행진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속도였다.


빠르게 앞서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휠체어의 움직임에 맞춰 걸음이 조절됐다. 뒤처지는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대열의 흐름도 함께 늦춰졌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보행 속도일지 몰라도, 이날만큼은 '함께 간다'는 것 자체가 행진의 방식이자 메시지였다.


빗속에서 우비를 걸친 참가자들이 포천 시내를 지났다. 손팻말과 현수막에는 장애를 동정의 시선이 아닌 권리의 문제로 바라보자는 뜻이 담겼다. 행진 대열 옆을 지나던 시민들 중 일부는 발걸음을 멈추고 현장을 바라봤다.


한 참가자는 말했다.


"우리를 특별하게 봐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같은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같이 걷는 이 길이 그런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동정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행사 내내 반복해서 들린 말은 '배려'보다 '권리'였다.


오랫동안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 도와줘야 할 존재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이날 참가자들이 거리에서 전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며, 이동하고 일하고 배우고 관계 맺을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것이다.


행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420 두바퀴로 가는 세상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오래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시작된 행사입니다. 동정과 시혜가 아니라 존중과 권리의 언어로 장애를 말하자는 취지가 14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그 취지가 구호보다 장면으로 더 또렷하게 전해졌다. 빗속에서 보폭을 맞추기 위해 무심히 걸음을 늦추는 사람들, 행진 도중 잠시 숨을 고를 때 건네는 짧은 말들 속에서 연대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눈앞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 14년 이어진 행진, 포천의 봄에 남은 질문


'420 두바퀴로 가는 세상'이 올해로 14회째를 맞았다.


포천에서는 장애인 인권을 알리고 지역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한 민간 중심의 연대 활동이 10년 넘게 이어져 왔다. 해마다 같은 취지로 거리를 걷는 일은 단순해 보여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지역 안에서 이 문제가 꾸준히 기억되고, 반복해서 말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비가 내렸다.


그러나 비가 내렸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선명해진 것들이 있었다. 빗속에서도 나온 사람들. 젖은 도로 위를 구르는 휠체어 바퀴. 우비 속에서도 올라간 주먹. 그 장면들이 14년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참가자들은 단지 장애인의 날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도시가 누구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몸으로 확인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길과 그렇지 못한 길,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동선과 여전히 불편한 공간은 행사 취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한 시민 참가자는 말했다.


"멀리서 보면 좋은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같이 걸어보니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장애인 인권이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동네의 일상과 연결된 문제라는 걸 더 실감하게 됐습니다."


■ 행사가 끝난 뒤에도 남는 과제


행진은 끝났다.


우비를 벗고, 현수막을 걷고, 참가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얼굴에는 빗물과 피곤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선명했던 것은 내년에도 다시 걷겠다는 조용한 다짐이었다.


장애인 인권이 일상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동권 보장, 자립생활 지원, 무장애 환경 조성, 복지 사각지대 해소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 행사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시작은 늘 이런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포천의 봄거리에서 이날 사람들이 함께 남긴 것은 단순한 행진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동등한 시민으로 맞이할 것인가를 지역사회에 묻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누가 더 크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함께 걷느냐에 달려 있는 듯했다.


빗속에서도 걸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2026년 4월 10일, 포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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