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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로 공항에서 쓴 반성문: 장관의 화려한 외출, 아내의 거친 손등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6.1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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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로 공항에서 쓴 반성문: 장관의 화려한 외출, 아내의 거친 손등

권오을 (현 국가보훈부 장관)

 런던 히드로 공항의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이륙하는 비행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둔중한 엔진 소리를 내며 잿빛 런던 하늘로 솟구치는 기체들을 보며, 비로소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의 끈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오전까지만 해도 인빅터스 게임 유치라는 국가적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회담장을 가득 채웠던 묵직한 긴장감, 대한민국 국가보훈부 장관이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만큼 쏟아지던 수많은 이들의 예우와 찬사 속에 몸을 맡겼던 여정이었다. 겉보기에는 참으로 화려하고 번듯한 외출이다. 하지만 폭풍 같은 일정 뒤에 찾아온 짧은 정적의 시간, 낯선 이국땅 공항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 홀로 담배를 삼키듯 고독을 마주하니,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서글픈 풍경 하나가 뚜렷하게 떠오른다.

 

얼마 전, 아내가 내보이던 다친 손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출근길의 뒷모습이다.

나이 일흔. 남들은 평생 일궈온 일터를 뒤로하고 남은 생을 유유자적 여행이나 다니며 즐길 나이라지만, 내 아내는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매일 새벽 식당 문을 열고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근다. 밖에서 내가 ‘장관’이랍시고 번듯한 양복을 입고 대접을 받으며 국가의 대사를 논할 때, 내 삶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안식처였던 아내는 거친 삶의 전선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아내의 가쁜 숨소리와, 손을 다쳤다며 멋쩍게 웃던 그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주변의 또래 친구들이 부담 없이 부부 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보낼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형용할 수 없는 서글픔과 질투가 밀려왔던 건, 내가 가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내 삶을 다 바쳐 지켜주겠노라 맹세했던 단 한 사람에게, 그 소박한 여유조차 선물하지 못했다는 지독한 자책감 때문이었다.

 

"나 영국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언젠가 아내가 푸념처럼, 혹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툭 던졌던 그 한마디가 히드로 공항의 차가운 유리창에 부딪혀 유난히 아프게 메아리친다. 세상의 이목을 끌고, 국가를 위해 무대를 넓히며 대단한 일을 하는 척 살아왔지만, 정작 평생을 함께 걸어온 아내에게 세계여행 한 번 시원하게 시켜주지 못한 무능한 남편이 바로 나였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그토록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렸던 것일까. 내가 쫓았던 명예와 직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세상은 나를 화려한 장관의 이름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아내의 지치고 닳아진 손등 앞에서는 그 어떤 명예도, 세상의 박수갈채도 한낱 신기루처럼 빛을 잃는다. 밖에서 수천, 수만 명에게 받는 예우보다, 내 곁을 지켜준 가장 소중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것이 삶의 진짜 성공이자 완성임을, 이 낯선 이국의 공항 한구석에서 비로소 뼈아프게 깨닫는다.

 

국가를 위한 거창한 행보와 화려한 외출 뒤에 가려진, 한 남편의 부끄럽고도 절절한 참회록. 히드로 공항의 흐릿한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더 이상 거물급 정치가도, 번듯한 장관도 아니었다. 그저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평범하고 모자란 한 남자이자 남편일 뿐이었다.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런던의 붉은 노을 향해 깊은 다짐을 삼켜본다. 다음 비행기에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내 아내의 거친 손을 꼭 잡고 함께 이 하늘을 날아오르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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