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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만에 깨닫게 된 부모님의 용기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6.24 0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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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50여 년 만에 깨닫게 된 부모님의 용기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판사로 불리는 프랭크 카프리오의 저서 연민에 관하여는 자신의 이름조차 읽지 못했던 가난한 조부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책을 읽다 보니 며칠 전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어머니께 문득 옛날 이야기를 여쭤봤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왜 자꾸 옛날 이야기를 불쑥불쑥 물어봐서 눈물 나게 하니.
어머니의 한마디에 저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생각의 시작은 지난주 포천에서 만난 한 동갑내기 친구와의 대화였습니다.
 
권 박사 부모님은 신혼을 포천에서 시작하셨다면서 왜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거든.
그 당시 서울에 친척이 있었어?
아니. 친척도 없었고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왕래도 거의 없었어.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살았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나 스스로도 궁금해졌습니다. 왜 그토록 어려운 시절에 부모님은 포천과 동두천에 형제자매들이 모두 있었음에도 연고 하나 없는 서울로 나가셨을까? 지금 기준으로 봐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때 친구가 무심히 덧붙였습니다.
아마 자식들 공부시키려고 그러셨을 거야.
 
그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찾아왔습니다. 1970년대 중반 친척도 친구도 없는 서울로 다섯 식구가 단칸방 생활을 각오하고 올라왔던 30대 초반의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비로소 처음으로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곧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엄마 혹시 우리 공부시키려고 서울로 오신 거예요?
잠시 침묵하시던 어머니는 목이 메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왜 자꾸 옛날 이야기를 물어봐서 눈물 나게 하니. 너희 공부시키려고 아빠는 동두천 버스회사에서 서울 관광버스 회사로 옮겼고 나는 너희 삼형제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지. 서울에 아는 사람이 어디 있었니.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자식으로서 너무 늦게 여쭤본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이사할 때마다 집주인이 아이가 둘인 줄 알고 방을 내줬다가 이삿날 셋째 형제까지 나타나 삼형제인 것이 들통나 눈총을 받던 일 둘째 형이 집주인 댁 야쿠르트를 몰래 먹다 크게 혼났던 일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창피하고 무서운 기억으로만 남았던 일들이 이제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가옵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낯선 서울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부모님의 절박한 마음이 보입니다. 자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감당해야 했을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묵묵히 버텨내신 희생이 이제야 온전히 읽힙니다.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겨운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그들을 도울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내 직업의 보람을 느낍니다.
 
돌아보면 제 부모님 역시 프랭크 판사의 가족 못지않은 거대한 용기와 위대함을 지닌 분들이었습니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삶의 모든 것을 걸었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존경의 마음이 차오릅니다.
 
앞으로 더 자주 옛날 이야기를 물어봐 드리고 더 많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마음 깊이 다짐해 봅니다. 그분들이 삶으로 보여주신 용기와 연민 그리고 고귀한 희생을 나 역시 조금이나마 닮아가겠노라고 말입니다.
 
글:권신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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