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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 화단 가꾸는 87세 조을동 어르신… 포천 포애뜰에 남긴 ‘인생 마지막 선물’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6.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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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립선암 말기 고통 속에서도 매일 화단으로… “칼의 반댓말은 꽃”
  • 잡초를 뽑고 꽃을 심으며 이웃을 위로한 한 노인의 여름, 포천 포애뜰에 잔잔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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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30일 오후, 폭염이 내려앉은 포천시 군내면 포애뜰 행복주택.  

아파트 벽면에는 뜨거운 햇빛이 번들거렸고, 바닥에서는 열기가 그대로 치솟았다. 누구라도 그늘부터 찾을 법한 시간, 한 노인이 허리를 굽힌 채 잔디 끝을 더듬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호미도, 거창한 장비도 없었다. 그저 맨손에 가까운 몸짓으로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꽃이 자랄 자리를 살피고 있었다.


그 노인의 이름은 조을동(87).


전립선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그는 지금, 포애뜰 행복주택 화단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남은 시간을 병상에서 버티고, 누군가는 통증을 견디며 하루를 넘긴다. 그러나 조 어르신은 매일 집 밖으로 나온다. 화단과 잔디밭, 그리고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아파트 입구가 그의 하루를 붙드는 자리다.


◇ “가만히 있으면 더 아파… 나와서 잡초 뽑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


조 어르신의 몸은 편하지 않다.  

그는 포천시보건소와 군내면 방문간호사의 정기적인 돌봄 속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생명 연장을 위한 주사를 맞고, 약을 챙겨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말기 암 환자에게 하루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몸은 쉽게 지치고, 통증은 예고 없이 밀려온다.


그런데도 그는 눕지 않는다.


조 어르신은 담담하게 말했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앉아 있으면 더 답답하지.  

 나와서 잡초를 뽑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


그의 말에는 비장함보다 오히려 생활인의 습관 같은 평온함이 배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투병’이 삶의 전부가 되지만, 조 어르신에게 투병은 꽃을 심는 일상 한편에 놓여 있는 듯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도 그가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는 하루를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리고 그 하루를 누군가에게 조금 더 아름답게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 병보다 먼저 자란 것은 꽃이었다


처음부터 화단이 넓었던 것은 아니다.  

조 어르신은 단지 앞 작은 공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무심히 밟고 지나쳤던 자리의 숨을 다시 틔웠다. 그러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작은 꽃 한 포기가 들어서고, 그 옆으로 또 다른 꽃이 자리 잡았다.


이제 그가 가꾸는 공간은 화단 일부를 넘어 아파트 입구와 잔디밭 주변까지 넓어졌다. 손톱 물들이기에 쓰이는 봉숭아를 비롯해 여러 꽃들이 심겼고, 평범한 공동주택의 한편은 어느새 작은 꽃동산이 됐다.


한여름의 볕 아래 꽃은 사람보다 조용하다. 아무 말 없이 피고, 묵묵히 흔들린다. 조 어르신도 그랬다. 그는 꽃을 가꾸며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앞세우지 않았다. 대신 꽃이 피어나는 풍경으로 자신의 시간을 설명했다.


◇ “칼의 반댓말은 방패가 아니라 꽃”


조 어르신이 심는 것은 단지 꽃만이 아니다.  

그가 화단 앞에서 건네는 말에는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사색이 깃들어 있다.


 “꽃에 대고 욕을 하거나 싸움을 거는 사람은 없지.”  

 “사랑을 하려면 꽃을 준비해야 하고, 싸움을 하려면 칼을 들어야 해.”  

 “그런데 칼의 반댓말은 방패가 아니라 꽃이야.”


짧은 말이었지만, 그 문장은 포애뜰 주민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대립과 상처, 날 선 말들이 너무 쉬워진 시대에, 말기 암을 견디는 87세 노인은 삶의 끝에서 ‘방어’가 아닌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처를 막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녹이는 것. 그가 말한 꽃은 장식이 아니라 태도였고, 위로였으며, 마지막까지 인간을 인간답게 붙들어주는 힘처럼 들렸다.


◇ 주민들은 그의 꽃에서 위로를 본다


포애뜰 행복주택은 342세대가 사는 공간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주민이 출근하고 돌아오고, 무심히 지나치고, 또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그 길목마다 조 어르신의 손길이 닿아 있다.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 진심을 다해 꽃을 가꾸고 잡초를 뽑는 어르신 모습을 보면,  

 괜히 제 마음도 차분해져요.  

 일상이 힘들다가도 그 화단을 보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에요.”


그 위로는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다.  

아파트 앞에 핀 꽃 한 송이, 깔끔하게 정돈된 흙,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뽑아낸 잡초의 흔적.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위로는 원래 그렇게 소박한 곳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조 어르신은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매일 몸으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 방문간호의 손길, 한 사람의 존엄을 지탱하다


조 어르신의 하루 뒤에는 포천시보건소의 방문간호 서비스가 있다.  

정기적으로 가정을 찾아 건강 상태를 살피고, 치료와 복약을 돕고,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를 건네는 일. 이런 지역 밀착형 돌봄은 때로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을 다시 바깥으로 나오게 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붙들게 하며, 남은 시간을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내는 시간’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조 어르신 역시 방문간호사의 보살핌 속에서 몸 상태가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의료적 호전만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계속 살피고 있다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돌봄은 숫자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한 노인이 다시 흙을 만지고 꽃을 심게 만드는 힘, 그것이야말로 지역 보건 행정의 가장 인간적인 성과일 수 있다.


◇ 삶의 끝자락에서, 그는 이웃에게 꽃을 남기고 있다


조 어르신이 가꾸는 화단은 어쩌면 그의 마지막 작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품은 비석처럼 남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바람에 흔들리고, 계절이 바뀌면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말기 암을 앓는 한 노인이 허리를 굽혀 잡초를 뽑던 장면을.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이웃의 눈길이 머물 자리를 가꾸던 마음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누군가는 재산을 남기고, 누군가는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는 기록을 남긴다. 조을동 어르신은 꽃을 남긴다. 그것도 혼자 보기 위한 꽃이 아니라, 이웃이 지나가며 잠시라도 미소 지을 수 있는 꽃을 남긴다.


그의 화단은 지금 포천 포애뜰 한가운데서 조용히 말하고 있다.  

인생의 끝은 반드시 쓸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몸은 쇠약해져도 마음은 누군가를 향해 피어날 수 있다고.  

그리고 정말로, 칼의 반댓말은 방패가 아니라 꽃일지도 모른다고.


메트로포천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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