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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는 왜 닫히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흔드는가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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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쇄보다 무서운 것은 ‘봉쇄될 수 있다’는 지속적 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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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서 위기는 반드시 현실화해야만 위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실행되지 않는 위협이 실제 충돌보다 더 오래, 더 깊게 세계 경제를 압박한다. 호르무즈해협이 그렇다. 이 해협은 완전히 닫힌 적이 거의 없지만, 닫힐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국제 유가와 해운시장, 각국의 외교·안보 계산을 흔들어 왔다. 호르무즈의 본질은 봉쇄 그 자체보다, 봉쇄 가능성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불안에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중동 에너지 질서의 요충지다.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들의 원유와 가스 상당량이 이 좁은 해협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나온다. 폭은 수십 km에 이르지만 실제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항로는 훨씬 제한적이다. 물리적으로 좁고 전략적으로는 과밀하다. 세계 경제의 에너지 동맥이 이곳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호르무즈는 단순한 지역 해협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취약 지점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비슷한 병목지대로 자주 비교되는 수에즈운하와 호르무즈해협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수에즈는 막히면 곧바로 복구와 정상화 압력이 작동한다. 관리 주체가 분명하고, 운하 운영이 곧 국가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반면 호르무즈는 책임의 구조가 훨씬 복잡하다. 이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단순한 항행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이란, 미국, 걸프 산유국, 국제 해운업계, 에너지 시장이 동시에 얽힌 지정학적 문제다. 더구나 위기 때마다 이란 정부와 혁명수비대의 메시지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은 불확실성을 한층 키운다.


이란이 왜 호르무즈를 반복적으로 거론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읽힌다. 실제 봉쇄는 이란 자신에게도 큰 부담이다. 자국의 수출로와 경제에도 충격을 줄 수 있고, 미국과 동맹국의 군사 대응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봉쇄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효성 없는 공갈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실행하지 않을 때 가장 효율적인 전략 카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닫으면 전면 충돌 위험이 커지지만, 닫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유가를 자극하고 시장 심리를 흔들며 외교적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호르무즈는 이란에 ‘최후 수단’이 아니라 ‘상시 압박 수단’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호르무즈 문제는 예멘 후티의 홍해 공격과도 결이 다르다. 물론 홍해 위기도 세계 해운에 중대한 타격을 준다. 그러나 홍해에서의 위협이 물류 동선의 교란이라면, 호르무즈에서의 위협은 에너지 공급 본류의 불안정이다. 후티가 바브엘만데브를 흔들어 수에즈 경로에 충격을 주는 것과, 이란이 호르무즈를 둘러싼 긴장을 고조시켜 세계 원유 흐름 자체를 위협하는 것은 파급력의 차원이 다르다. 호르무즈는 물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 안정성의 문제로 직결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경제이자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중동산 원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그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를 거친다. 수에즈가 흔들리면 한국은 더 비싼 운임과 더 긴 운송 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호르무즈가 흔들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단지 비용이 오르는 수준이 아니라, 공급 자체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정유, 석유화학은 물론 전력 비용, 운송비, 소비자 물가, 환율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를 둘러싼 위기는 한국에 먼 중동의 뉴스가 아니다. 국제 유가 급등은 곧바로 국내 물가와 산업 비용으로 연결되고, 공급 불안은 기업의 생산 계획과 국가의 에너지 안보 문제로 번진다. 세계시장이 호르무즈의 불안을 가격에 반영할 때, 한국 경제도 그 비용을 함께 떠안는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곧 생활 물가와 기업 수익성의 문제로 번지는 구조다.


앞으로의 전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현상 유지다. 이란은 강경 발언과 제한적 도발로 긴장을 유지하되 실제 봉쇄는 피한다. 시장은 이에 익숙해지면서도 완전히 무감각해지지는 못한다. 둘째는 부분적 충돌이나 일시적 통항 마비다. 유조선 나포, 오인 충돌, 제한적 무력시위만으로도 보험료와 운임이 치솟고 선사들이 회피에 나설 수 있다. 셋째는 가능성은 낮지만 가장 파괴적인 전면 충돌 시나리오다. 미국과 이란이 직접 군사적으로 맞붙는다면 해협은 단숨에 세계 경제의 최대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이 어딘가일 것이다. 즉, 완전 봉쇄는 아니지만 늘 불안하고, 때때로 시장이 충격을 받는 상태가 장기화하는 그림이다. 이것이 가장 불편한 시나리오다. 분명한 파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버티려 하고,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은 지속적으로 위험 프리미엄을 얹는다. 호르무즈는 이처럼 ‘닫히지 않으면서도 늘 비용을 발생시키는 해협’으로 기능한다.


결국 핵심은 분명하다. 호르무즈의 위험은 닫히느냐 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열려 있어도 불안정하면 그 자체로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다. 국제정치는 때로 군사 행동보다 불확실성의 관리 여부에서 더 큰 차이를 만든다. 호르무즈는 바로 그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닫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위협적이다.


한국이 해야 할 대응도 분명하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비축 역량 강화, 중동 리스크를 상수로 놓는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 호르무즈가 언제 닫힐지를 묻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닫히지 않아도 계속 흔들릴 해협에 한국 경제가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다.


호르무즈는 오늘도 열려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열려 있다’는 말은 결코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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