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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한국 반도체 이끈 ‘일본 부모’ 하마다 박사 내외 영면 소식 전해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7.3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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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년 인연 맺은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 부부, 결혼 76주년에 한날한시 합장

양향자, 한국 반도체 이끈 ‘일본 부모’ 하마다 박사 내외 영면 소식 전해 

-38년 인연 맺은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 부부, 결혼 76주년에 한날한시 합장 

-"기술은 사람 향해야" 가르침 가슴에 품고 한일 잇는 다리 될 것

 

 양향자 전 국회의원이 38년간 ‘두 번째 부모’로 모시며 깊은 인연을 이어온 일본의 반도체 공학자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 부부의 영면 소식을 전하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양 전 의원에 따르면 100세의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와 98세의 하마다 요시에 여사는 지난 3월 사흘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아내의 곁을 지켰던 하마다 박사는 아내를 먼저 보낸 뒤 사흘 만에 그 뒤를 따랐으며, 두 사람은 결혼 76주년이 되던 지난 4월 20일 한날한시 한곳에 함께 모셔졌다.

 

두 사람과 양 전 의원의 인연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시작됐다. 당시 21세의 삼성전자 연구보조원이었던 양 전 의원은 일본어 통역을 맡으며 하마다 박사 부부를 처음 만났다. 자녀가 없었던 하마다 박사 부부는 그해 겨울 일본 도쿄 자택으로 양 전 의원을 초대했고, 이후 38년간 친딸과 다름없는 인연을 이어왔다.

 

하마다 박사는 과거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기술 자문을 맡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구상에 기여한 숨은 조력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난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당시에는 현지에서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국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바 있다.

 

양 전 의원은 고졸 여사원에서 출발해 삼성전자 임원에 오르고 정계에 입문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하마다 박사 부부가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고 회고했다. 수백 통의 자필 편지와 종이학, 손때 묻은 반지 등을 주고받으며 38년간 국경을 넘어선 가족의 정을 나눴다.

 

하마다 박사 부부의 유골을 직접 모시고 돌아온 양 전 의원은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하며 과학은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박사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기겠다"며 "과학기술로 양국의 건전한 미래를 열고 한국과 일본을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양향자 전 국회의원의 SNS 전문

<100세와 98세의 원앙, 하마다 박사님 내외>
- 2026년 4월 20일, 결혼 76주년에 한날한시 한곳에 묻히다
붉은 돌 위에 한쌍의 원앙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님.
1925년 4월 19일에 태어나 2026년 3월 5일에 떠나셨다.
하마다 요시에 여사님.
1927년 4월 21일에 태어나 2026년 3월 2일, 남편보다 사흘 먼저 떠나셨다.
평생 아내의 곁을 지켰던 박사님은 아내를 먼저 보내고 사흘 만에 그 뒤를 따르셨다.
두 분의 생일은 이틀 간격이다.
박사님의 생일은 4월 19일, 여사님의 생일은 4월 21일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인 4월 20일이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었다.
2026년 4월 20일.
결혼 76주년이 되던 날, 두 분은 마침내 한날한시 한곳에 함께 누우셨다.
오늘 두 분을 함께 모신 곳에 다녀왔다.
하네다공항에서 두 시간 남짓.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처음 뵈었으니, 꼭 38년의 인연이다.
1988년, 나는 스물한 살의 삼성전자 연구보조원이었다.
일본어 통역을 맡으며 박사님 부부를 처음 만났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김포공항에서 헤어지던 날, 박사님은 내게 일본에 꼭 한번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해 겨울, 나는 태어나 처음 비행기를 탔다. 처음 밟아보는 외국 땅이었다. 도쿄 히가시야마토에 있는 두 분의 집에서 4박 5일을 보냈다.
손님으로 들어간 집에서 나는 딸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열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두 분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언젠가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자식이 없어 외롭지 않으셨어요?”
두 분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셨다.
“향자가 있어서 행복해.”
그 한마디는 내게 가족이란 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서로의 삶을 오래 바라보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견디며, 한 사람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두 분은 삶으로 보여주셨다.
두 분은 고졸 여사원이었던 내가 선임연구원이 되고, 책임연구원과 수석연구원을 거쳐 삼성전자의 임원이 되는 모든 시간을 지켜보셨다.
반도체 기술자로 성장하는 딸의 모습도, 정치의 길에 들어선 딸의 모습도 묵묵히 바라봐주셨다.
평생 반도체인으로 살아온 내게 박사님은 늘 말씀하셨다.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하며, 과학은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박사님은 이병철 회장의 기술 자문으로 삼성의 반도체 사업 구상에 힘을 보탠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숨은 조력자였다.
2019년 일본정부의 반도체 소재규제시에는 일본 국민들로부터 '매국노'라는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국 문제 해결에 앞장 서 주셨다.
내게 박사님은 위대한 공학자이기 전에, 공학도의 길을 열어주고 삶의 방향을 밝혀준 두 번째 아버지였다.
38년 동안 수백 통의 자필 편지가 한국과 일본 사이를 오갔다.
편지에는 서로의 안부와 가족의 이야기가 담겼고, 기술과 세상에 대한 생각이 담겼으며, 차마 말로 다 전하지 못한 그리움이 담겼다.
1994년 생신때는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두 분의 건강을 빌며 종이학 777마리를 접어 보내드렸다.
두 분은 그 종이학을 수십 년 동안 거실에 고이 간직하셨다.
두 분의 침실 머리맡에는 내가 젊은 날 보내드린 사진이 놓여 있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먼지 한 점 묻지 않도록 보호필름까지 씌워 보관하고 계셨다.
1993년 대전엑스포 때 요시에 여사님께 드린 값싼 반지는 아랫부분이 끊어질 만큼 닳고 닳았지만, 여사님은 끝내 손에서 빼지 않으셨다.
값으로는 작은 반지였지만, 여사님에게는 딸의 마음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보석이었던 것이다.
여사님은 박사님에게 선물 받았던 소중한 반지를 친딸에게 물려주듯 내 손에 끼워주시기도 했다.
반지는 손가락에서 손가락으로 옮겨갔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나 혼자 일본을 찾았다.
그러다 남편과 함께 둘이 되었고, 아이가 태어나 셋이 되고 넷이 되었다.
두 분은 남편을 친아들처럼, 아이들을 친손주처럼 사랑해주셨다.
박사님은 우리 가족과 더 가까이 이야기하고 싶다며 한글까지 배우셨다.
딸이 첫 월급을 받아 보내드린 용돈을 여사님의 치과 치료에 보태셨다며 너무도 감격해 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다시 깨달았다.
우리는 국적만 달랐을 뿐, 영락없는 한 가족이었다.
매년 4월이면 두 분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두 분의 생일은 이틀 간격이었고, 그 사이인 4월 20일이 결혼기념일이었다.
지난해 4월 20일, 두 분은 결혼 75주년을 함께 맞으셨다.
두 사람이 75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단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의 젊음과 늙음을 모두 바라보는 일이고, 서로의 찬란한 날과 초라한 날을 모두 받아들이는 일이며, 기쁜 때보다 힘겨울 때 더 가까이 곁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아흔이 넘어 보행이 어려워진 여사님에게 100세를 바라보던 박사님은 평생의 발이 되어주셨다. 98세까지 운전을 하셨으니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아내의 건강이 나빠진 뒤에는 평생 익숙하지 않았던 음식까지 직접 만들기 시작하셨다.
여사님이 신문에서 요리법을 오려 건네면, 박사님은 그것을 하나하나 정리해 한 끼 한 끼를 준비하셨다.
그토록 아내의 곁을 지키셨던 분이다.
그래서였을까.
요시에 여사님이 먼저 떠나시자 박사님도 사흘 만에 그 뒤를 따라가셨다.
100세와 98세.
두 분의 삶은 길었지만, 마지막 이별은 길지 않았다.
박사님의 유골을 내가 직접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유골함에 모셨다.
유골 한 점을 옮길 때마다 38년의 시간이 손끝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내 손을 잡아주시던 스물한 살의 겨울, 한국과 일본을 오간 수백 통의 편지, 777마리의 종이학, 닳아 끊어질 듯한 반지, 침실 머리맡의 오래된 사진, 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웃어주시던 두 분의 모습이 하나씩 떠올랐다.
특히 한일관계를 위해 고군분투하셨던 모습에 숙연해진다.
사람은 떠나지만, 사랑은 떠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이 내게 주신 사랑은 내 삶의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사랑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어졌고,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흘러갔으며,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 속에서도 살아 있을 것이다.
비석 위에 새겨진 두 마리 새처럼, 이제 두 분은 아무런 고통도 없는 곳에서 나란히 앉아 계실 것이다.
제9회 지방선거에서 꼭 이기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드렸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죄송했다.
두 분이라면 늘 그랬듯이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셨을 것이다.
잘했다고도, 괜찮다고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저 다시 걸어갈 힘을 손끝으로 전해주셨을 것이다.
나는 두 분 앞에서 다시 약속했다.
두 분이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가겠노라고.
과학기술로 두 나라의 건전한 미래를 열겠다고.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어 다시 찾아오겠다고.
두 분의 딸로 살아온 38년.
내 삶에 두 번째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주신 시간이다.
나는 두 분이 주신 사랑을 세상에 돌려주며 살아갈 것이다.
감사했다.
다시 올께요. 꼭.
성공해서 올께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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