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천시립극단 ‘별이 된 영웅’… 잊힌 이름들이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난 밤
무대의 불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객석도 함께 조용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적막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조금 달랐다. 누군가의 발걸음을 기다리는 듯했고, 오래 불리지 못한 이름들이 어둠 너머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듯했다. 검은 막 뒤에는 배우들이 있었겠지만, 그날 객석이 기다린 것은 단지 등장인물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역사 뒤편에 머물렀던 사람들, 나라를 위해 싸웠으나 끝내 충분히 기록되지 못했던 청년들, 군번도 계급도 없이 전장에 나섰던 포천의 이름 없는 영웅들이었다.
지난 24일과 25일, 포천반월아트홀 소극장에서 열린 포천시립극단 제8회 정기공연 ‘별이 된 영웅 - 군번 없는 독수리유격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막이 내린 뒤에도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공연은 분명 두 시간 남짓의 무대 위에서 진행됐지만, 관객들의 마음속에서는 훨씬 더 오래 머물렀다. 누군가는 눈시울을 훔쳤고, 누군가는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박수는 끝났지만, 마음속 질문은 그때부터 시작된 듯했다. 우리는 왜 이들을 이제야 기억하는가. 국가의 기록 바깥에 있었던 희생은 누가 불러내야 하는가. 그리고 예술은 어떻게 한 지역의 잊힌 역사를 다시 현재로 데려올 수 있는가.
그 밤의 무대는 단순한 연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의 복원이었고, 늦은 예우였으며, 한 공동체가 오래 묵혀두었던 부채를 조심스레 꺼내 마주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 잊힌 영웅을 부르는 일은, 오래 묻은 시간을 깨우는 일이다
독수리유격대는 1950년 11월,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포천의 반공 애국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민간 유격대다.
그들은 정규군이 아니었다. 군번도 없었고, 계급도 없었으며, 제도적 보호의 울타리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그런 구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라가 무너지면 고향도, 가족도, 삶의 터전도 무너진다는 절박함 앞에서 이들은 스스로 총을 들었다. 누가 명령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전장에 들어갔다.
그들에게 군번이 없었다는 사실은 단지 신분의 공백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 싸웠으나 국가의 체계 안에서는 완전히 호명되지 못한 존재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는 누구보다 앞장서 싸웠지만, 전쟁이 지난 뒤에는 서류 한 줄, 공식 기록 한 칸으로도 충분히 남지 못했던 사람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나, 정작 나라의 기록 속에서는 희미해졌던 존재들. 독수리유격대의 역사가 가슴 아픈 것은 바로 그 지점 때문이다.
포천시립극단의 이번 작품은 그 희미해진 이름들을 다시 무대의 한가운데로 불러냈다.
이 공연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다. 지역의 실존 역사, 유가족의 증언, 관련 자료와 현장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허구의 전쟁 서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으나 오랫동안 충분히 말해지지 못했던 지역의 역사를 예술의 언어로 다시 세운 작업이었다. 포천이라는 도시의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가 연극이라는 형식을 만나 비로소 지금의 시민 앞에 다시 선 것이다.
◇ 한 작품이 되기까지, 기억은 몇 해를 돌아 조금씩 몸을 얻었다
‘별이 된 영웅’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무대가 아니다.
2024년 낭독극으로 처음 관객 앞에 섰고, 2025년 입체낭독공연을 거쳐, 올해 비로소 전막 연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치 오래 닫혀 있던 기억이 해마다 조금씩 문을 열고, 목소리를 얻고, 몸을 얻어 마침내 완전한 형태로 우리 앞에 도착한 것처럼 보였다.
낭독은 이야기의 씨앗이었다면, 전막 연극은 그 씨앗이 자라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대사만으로 전해지던 역사는 배우의 호흡과 표정, 음악과 조명, 정적과 움직임을 입으며 더욱 깊은 현실감을 얻었다. 누군가의 말로 설명될 때보다, 실제로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그 절박함을 걸어갈 때 관객은 역사를 더 가까이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독수리유격대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잠시 그 시간의 곁에 서게 했다.
임태순 작·연출로 완성된 이번 작품은 24일 오후 7시 30분, 25일 오후 3시와 7시 30분, 모두 세 차례 공연됐다.
그러나 회차를 나누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 중요했던 것은 같은 이야기가 매번 새롭게 객석에 닿았다는 점이다. 어떤 관객은 전투 장면에서 숨을 삼켰고, 어떤 관객은 총소리보다 긴 침묵 앞에서 더 깊이 흔들렸다. 결국 이 작품이 전한 감동은 단순히 전쟁의 비장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너무 늦게 도착한 기억의 무게에서 나왔다.
◇ 무대는 전쟁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복원했다
이 작품이 가진 힘은 거대한 전쟁 서사를 과시하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너무 쉽게 숫자로만 남게 되는 개인의 얼굴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청년들의 결의, 가족과 헤어지는 순간의 침묵, 서로를 의지하며 버티는 동료애,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 앞에 멈춰 서는 인간의 표정. 이 공연은 전쟁의 결과보다 전쟁 속 사람의 마음을 따라갔다.
공연은 독수리유격대 전적비 제막식 장면으로 문을 연다.
현재의 시간에서 출발해 과거로 건너가는 방식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도입부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왜 다시 불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문이었다. 이어 기념사업회장과 유가족의 인터뷰, 대원들의 결성, 출정, 첫 전사자에 대한 추모, 내부 비극, 373고지 전투로 이어지는 흐름은 한 공동체가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길처럼 이어졌다.
이 구조 덕분에 관객은 단지 과거를 구경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묻는 자리에 함께 앉게 된다. 연극은 과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재의 책임을 건드린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했고, 무엇을 잊었으며, 무엇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는가. 그 물음은 공연이 진행될수록 더 선명해졌다.
◇ 가장 깊은 비극은 적의 총탄이 아니라 아군의 오해에서 왔다
독수리유격대의 역사가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비극이 단지 전쟁 일반의 잔혹함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적과의 격전이 아니라, 같은 편의 오해 속에서 벌어진 참극이다. 부대 이동 과정에서 무단 이탈자로 오인된 독수리유격대 간부 5명, 그중 초대 유격대장 최종성을 포함한 이들이 1951년 설날 아침 총살당한 사건은 이 이야기의 가장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무대 위에서 이 장면이 펼쳐질 때 객석은 유난히 조용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극적 긴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라를 위해 싸우던 이들이 정작 나라의 이름으로 희생됐다는 사실, 충성이 오해로 돌아오고 헌신이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기 때문이다. 전쟁의 참혹함은 적과 아군이 맞서는 데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같은 깃발 아래 선 사람들 사이에서 더 설명하기 어려운 비극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총성보다도 더 긴 침묵을 남겼다.
남겨진 대원들이 군복마저 벗긴 채 강을 건너라는 명령을 받는 대목은 그 침묵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갈래강’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모멸과 배신의 기억이자, 군번 없는 존재로서 감당해야 했던 취약함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무대는 그 비극을 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절제된 연출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겼다. 크게 울부짖지 않기에 더 아팠고, 담담하게 지나가기에 더 오래 남았다.
◇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독수리유격대의 이야기가 끝내 숭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비극 앞에서 무너질 수 있었음에도 다시 일어섰다는 데 있다.
간부를 잃고, 억울함을 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흔들리는 모멸을 겪고도 살아남은 대원들은 다시 흩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전선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피해의 서사를 넘어선다. 독수리유격대는 비극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끝까지 싸운 주체들이었다.
그들의 투혼은 373고지 전투에서 절정에 이른다.
공연은 이 장면을 긴장감 있게 끌고 갔다. 충분한 지원 병력도, 넉넉한 화력도 없는 상황에서 대원들은 험준한 고지를 향해 몸을 던진다. 배우들의 몸짓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었다. 비탈을 오르는 듯한 숨, 휘청이지만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 쓰러진 동료를 바라보는 짧은 눈빛 속에서 관객은 전쟁의 물리적 고통보다 더 깊은 인간의 결의를 보게 됐다.
이 전투에서만 14명이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전사자 16명 가운데 대부분이 이 한 전투에서 희생됐다는 사실은, 그들이 감당한 전쟁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그들은 고지를 탈환했지만, 그 승리는 개선의 언어보다는 애도의 언어에 더 가까웠다. 누군가는 이름 없이 스러졌고, 누군가는 살아남아도 오래도록 기억되지 못했다. 그래서 373고지는 단지 전공의 현장이 아니라, 이름 없는 충성의 무덤이기도 했다.
공연은 바로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승리를 과장하지 않았고, 희생을 소비하지도 않았다. 대신 관객이 그 장면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서도록 만들었다. 영웅담은 종종 화려하게 포장되지만, 진짜 영웅의 시간은 대개 말없이 지나간다. ‘별이 된 영웅’은 그 말없음을 무대 위에서 가장 묵직한 언어로 바꾸어냈다.
◇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많은 전쟁 이야기는 휴전이나 승전, 혹은 귀환으로 끝난다.
그러나 독수리유격대의 시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 후의 시간이 더 길고 더 외로웠다. 정식 참전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부 대원들은 다시 군에 입대해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했고, 유가족들은 수십 년 동안 정부 문서와 군 기록을 찾아다니며 참전 사실과 희생을 입증해야 했다.
이 대목에서 공연은 총성이 멎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비극을 보여준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억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두 번 지운다. 한 번은 전장에서, 또 한 번은 기록 속에서. 독수리유격대 유가족들의 긴 시간은 바로 그 두 번째 지움에 맞선 싸움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다 감당하기도 전에, 그 죽음이 실제였고 그 헌신이 정당했다는 사실을 다시 설명해야 했던 세월. 그것은 제도와 시간에 맞선 또 다른 전쟁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전적비가 세워지고, 그들의 존재가 조금씩 공식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은 너무 길었다.
너무 늦게 찾아온 인정은 때로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그 늦음 자체가 또 하나의 상처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이 깊은 울림을 준 이유는 바로 그 지연된 정의를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영웅을 기리는 일은 찬란한 수식어를 덧붙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이렇게 늦게야 제 이름을 찾게 되었는지 묻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작품은 말없이 보여주었다.
◇ 배우들은 인물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잊힌 시간을 붙잡아 세웠다
이번 공연에는 시립극단 단원 신광호, 홍성빈, 강유빈, 조정조, 양정윤을 비롯해 객원 배우 이정희, 이진주, 남성원 등이 출연했다.
그러나 그들의 연기를 단순히 ‘열연’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그들은 누군가의 비극을 과장해 보이려 하기보다, 그 비극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결을 조심스럽게 살려냈다. 최종성의 결단, 남겨진 대원들의 흔들림, 가족들의 기다림과 체념, 그리고 끝내 사라지지 않는 억울함이 배우들의 몸을 통해 천천히 살아났다.
무대감독 송근오, 음악감독 유재경, 조명감독 정훈 등 제작진의 역할도 인상적이었다.
이 공연은 화려한 장치로 압도하기보다 절제된 미학으로 감정을 끌어올렸다. 조명은 인물의 감정을 과도하게 밀지 않으면서도, 특정 장면에서 시간의 무게를 또렷하게 부각했다. 음악은 눈물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말로 다 닿지 않는 감정을 조용히 떠받쳤다. 무대는 비워진 자리들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했다. 텅 빈 공간은 전쟁터가 되기도 했고, 기다리는 집이 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전적비 앞의 현재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침묵의 사용이었다.
이 작품은 말을 많이 하는 연극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장면에서는 말이 멈춘 자리에 더 큰 감정이 흘렀다.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가족의 시선, 총성이 지나간 뒤 남은 공백, 억울한 죽음 앞에서 차마 이어지지 못하는 문장들. 그 순간들 속에서 관객은 알게 된다. 역사는 때로 기록된 말보다 말해지지 못한 침묵 속에 더 많이 남는다는 것을.
◇ 객석은 연극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지역의 상처를 함께 건너갔다
그날 객석의 표정은 공연 내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지역의 역사극’을 보러 온 얼굴들이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표정에는 어떤 책임감 같은 것이 어렸다. 관객은 독수리유격대의 사연을 단지 ‘알게 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억울함과 희생, 늦은 명예 회복의 시간을 함께 지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누군가의 희생이 기억되지 못한 채 오래 머문다는 것은 공동체에게도 상처다.
그래서 이 공연은 영웅을 기리는 무대인 동시에, 지역사회가 자기 자신의 기억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포천은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묻게 된다.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전쟁의 기억은 무엇인가. 지역이 지켜야 할 이름은 누구인가. 그리고 문화예술은 그 이름들을 어떻게 다시 시민의 삶 속으로 불러올 수 있는가.
반월아트홀 소극장이라는 비교적 작은 공간은 오히려 그래서 더 적절해 보였다.
거대한 공연장이었다면 놓쳤을지도 모를 숨결과 떨림이 이곳에서는 더 가까이 전해졌다. 배우의 눈빛이 객석에 닿고, 잠시 멈춘 호흡이 그대로 전달되는 거리. 전쟁은 먼 과거의 역사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같은 얼굴을 가졌던 사람들이 겪은 현실이었다는 사실이 그 가까운 거리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 “기억하는 것이 곧 보훈”이라는 말, 그날 무대는 그 문장을 증명했다
공연에 앞서 백영현 포천시장은 독수리유격대를 두고 “군번도, 훈장도 없이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했던 민간 유격대”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역사 속에 묻혀 있었지만 유족들의 간절한 노력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말은 짧았지만 무거웠다. 포천시가 ‘독수리유격대 현충시설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 역시, 이번 공연이 단지 일회성 무대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기억 인프라를 넓혀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포천문화관광재단 이종효 대표이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포천의 역사적 사실과 연극이라는 순수예술을 결합해 포천만의 독창적 문화 콘텐츠를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날 무대가 남긴 것은 ‘콘텐츠’라는 단어보다 더 깊은 결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소비되는 공연이라기보다 기억의 제단에 가까웠다. 무언가를 보고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름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자리. 한때 국가의 기록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을 지역의 예술이 다시 공동체 안으로 모셔오는 자리였다.
시립극단이 전한 제작 취지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이제는 우리가 그분들을 기억하고 숭고한 뜻을 이어가야 할 때”라는 말은 단지 다짐이 아니라, 이번 작품이 관객에게 건네는 요청처럼 들렸다. 기억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말해야 하고, 누군가 써야 하며, 누군가 무대 위에 올려야 한다. 그 일을 예술이 해낼 때, 역사는 박제된 사실이 아니라 현재의 윤리가 된다.
◇ 별이 된 영웅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무 늦게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의 불이 켜졌을 때도, 사람들의 표정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임태순 감독은 울먹였고, 관객의 박수는 길게 이어졌지만, 그 박수는 단순한 찬사라기보다 늦은 인사처럼 들렸다. 이제야 알게 되어 미안하다는 마음, 이제라도 불러 다행이라는 마음, 그리고 앞으로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뒤섞인 박수.
‘별이 된 영웅’은 독수리유격대를 영웅으로만 높이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청년으로, 가족을 두고 떠나야 했던 이웃으로, 제도 바깥에서 충성을 다해야 했던 사람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더 아팠고, 더 가까웠다. 영웅이라는 말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이 무대는 그 단어를 다시 인간의 얼굴로 돌려놓았다.
그들은 국가가 충분히 기록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분명 존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군번 없이 싸웠고, 훈장 없이 희생했으며, 긴 세월 동안 이름 없이 남겨졌다. 그러나 그날 밤 무대 위에서 그들은 다시 불려 나왔다. 배우들의 몸을 빌려 걸어 나왔고, 대사의 숨결을 타고 관객의 가슴으로 건너왔다. 한때 서류에는 희미했을지 몰라도, 그날 객석에서는 결코 희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공연이 남긴 가장 큰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영웅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늦게 알아본 것이다.
별이 된 이들은 먼 하늘로만 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 기억하는 순간 다시 돌아온다.
그날 밤 포천반월아트홀 소극장에서 독수리유격대는 바로 그렇게 돌아왔다.
무대의 조명이 모두 꺼진 뒤에도, 그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포천의 청년들은 그날 시민들의 기억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고, 오래전 끝난 전쟁은 비로소 오늘의 언어를 얻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기억되지 못한 희생을 기억하는 일, 늦게라도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예우라는 것을.
사진: 최봉규 기자
기사: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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