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주한의 ‘철원에서 부산까지’ 국토대장정 (6월 27일 여정)
[홍주한 칼럼] 길 위에서 만난 따뜻한 인연, 국토대장정을 지속하게 하는 힘
- 홍주한의 ‘철원에서 부산까지’ 국토대장정 (6월 27일 여정)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공기 속에서 배낭을 챙겼다. 어제부터 뜻을 모아 함께 걷기 시작한 동생들과 신발끈을 동여매고 길을 나선 시각은 오전 6시. 철원을 출발해 부산을 향해 가는 이번 국토대장정 여정 중, 6월 27일의 이 코스는 단연코 가장 험난하고 외로운 길이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 이리저리 휘어진 아리랑고개는 걷는 이의 숨을 턱끝까지 차오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힘겨웠던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빈 벌판이었다. 중간에 목을 축일 만한 마트나 허기를 채울 식당 하나 보이지 않았다. 무려 20km를 걸은 뒤에야 겨우 첫 끼를 해결할 수 있었고, 다시 25km를 더 걸어서야 작은 가게 하나를 발견했을 만큼, 이번 길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길’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가며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쯤, 약 15km를 남겨두고 괘방령에 들어섰다. 장원급제길을 지나 저 멀리 ‘경상북도’ 진입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 순간, 가슴속에서 말로 다 못할 반가움과 새로운 힘이 샘솟았다. 그리고 그 경상북도 땅은 우리에게 약속이라도 한 듯 가슴 따뜻한 인연들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길 위에서 마주한 네 번의 기적 같은 인연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 차를 돌려 편의점에서 시원한 얼음커피를 사다 건네준 이름 모를 이웃이었다. 갈증을 씻어주는 그 커피 한 잔에는 타인의 도전을 응원하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어 차를 세우고 양갱을 건네준 6·25 참전용사 부자(父子)와의 만남은 가슴을 묵직하게 울렸다.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군 출신으로서, 얼마 전 맞이했던 6·25전쟁 76주년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우리가 지금 아름다운 대한민국 땅을 자유롭게 걸으며 대장정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분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임을 알기에, 감사와 존경을 담아 엄숙히 거수경례를 올렸다.
세 번째 인연은 10km 남짓을 남겨둔 길가에서 만난 포스터 한 장으로 시작됐다. ‘국토대장정 하는 분들 음료 무료’라는 문구가 적힌 카페 ‘아버지와 자전거’. 민폐가 될까 주저하던 우리를 사장님이 직접 밖으로 나와 “안 들어오면 후회한다”라며 붙잡으셨다. 7년 동안 직접 셀프 인테리어로 꾸몄다는 아늑한 공간 속에서, 헌혈 110회와 백두대간 완주라는 놀라운 삶의 궤적을 지닌 사장님과 나눈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값진 배움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여정인 김천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예전부터 SNS 댓글로 “김천에 오면 꼭 밥 한 끼 사주고 싶다”라며 응원해 주시던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이 대접해 주신 든든한 삼겹살과 따뜻한 대화는 하루의 피로를 완벽하게 씻어주는 위로였다.
하나의 목표가 만들어낸 끈끈한 연대
가장 거칠고 험난했던 길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많은 사람의 온정을 느낀 하루였다. 이제 만난 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은 동생들이지만, 찜질방에 나란히 누워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은 마치 2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처럼 친밀하고 끈끈하다. 국토대장정이라는 하나의 목표와 거친 도전에 함께 몸을 던졌기에 가능한 연대감일 것이다.
길 위의 척박함 속에서 만난 대중의 따뜻한 마음은 국토대장정을 이어가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 감사한 마음을 배낭 속에 깊이 새겨 넣고, 우리는 내일도 왜관역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길은 험할지라도,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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