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길 위에서 마주한 고립과 두려움
[홍주한의 길 위의 칼럼] 철원에서 제주까지 — 천안에서 청주까지
낯선 길 위에서 마주한 고립과 두려움
6월22일 오후 12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침은 걸어오면서 간식으로 받았던 참외와 호두과자로 가볍게 해결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목적지인 조치원역을 검색한 후, 가장 빠른 경로를 선택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안내하는 길은 갈수록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지도가 안내한 곳은 '운주산'이라는 낯선 산길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된 듯 무릎 위까지 쑥 자란 풀숲이 앞을 가로막았고, 사방에는 거미줄이 빽빽하게 쳐져 있었다. 지도를 믿고 조금 더 전진해보았지만, 흙바닥에 가득한 야생동물의 선명한 발자국을 본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깊은 산속에서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경고 신호였다.
위기 속에서 바꾼 목적지, 20km의 질주
조치원으로 향하는 길은 계속해서 그 위험한 산길만을 가리켰다.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목적지를 청주로 긴급히 변경했다. 원래대로라면 10km 남짓이면 도착했을 거리였지만, 경로를 바꾸면서 가야 할 길은 20km로 두 배나 늘어났다.
당시 시각은 오후 6시, 예상 도착 시각은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길을 홀로 걷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기에, 해가 지기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치열한 질주 끝에 결국 해가 저물었고, 주위는 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어둠 속에서 찾은 평화, 그리고 한 단계의 성장
배낭에서 헤드 랜턴을 꺼내 머리에 꼈다. 좁은 조명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는 어둠에 적응해갔고, 마음에 가득했던 두려움은 서서히 사라졌다. 오히려 고요한 밤의 공기 속에서 은근한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사방을 분간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을 내 힘으로 통제하고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 그것은 단순한 도보를 넘어 나 자신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깊은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값진 훈장이었다.
길 끝에서 만난 뜻밖의 보상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청주에는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역을 딱 8일 남겨두고 마지막 말년 휴가를 나온 군대 동기였다. 당시에는 정말 심각하고 아찔했던 순간들이었지만, 무사히 도착해 동기랑 마주하고 앉으니 그 고생마저도 웃으며 털어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시원한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감사하게도 동기의 집에서 편안하게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돌아보면 6월 22일 월요일 하루는 정말 많은 일이 몰아친 다이내믹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 겪는 위기는 언제나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심각해도, 지나고 보면 인생이라는 큰 책 한 권에 새겨질 별거 아닌, 그러나 가장 빛나는 에피소드가 될 뿐이다. 철원에서 제주로 향하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한 뼘 더 자란다.
글:홍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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