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한 칼럼] 길 위에서 써 내려간 기록 : 온기와 생명을 품고 걷는 길
도보 여정의 진짜 묘미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길 위에서 마주하는 뜻밖의 인연, 그리고 그 인연이 건네는 삶의 온기에 있다. 수원에서 오산으로 향하는 10일 차 여정은 유독 사람의 정과 생명의 소중함이 가득 배어난 시간이었다.
6월 19일 금요일 오전 11시경, 정들었던 수원을 빠져나가기 직전 뜻밖의 환대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길 위에서 마주친 한 할머니께서 혼자 걷는 청년의 모습이 대견하고 안쓰러우셨는지, 선뜻 당신의 집으로 이끌어 따뜻한 집밥을 차려주신 것이다. 아삭하고 시원한 오이소박이의 맛은 고단한 여정의 피로를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일품이었고, 떠나는 배낭 위에는 길 가며 먹으라며 이것저것 챙겨주신 할머니의 넉넉한 정이 더해졌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길 위에서는 모두가 따뜻한 이웃이 될 수 있음을 배운 과분한 성찬이었다.
따뜻한 온기를 가슴에 품고 도착한 곳은 원래 방문하기로 계획했던 '멸공반점'이라는 중국집이었다. 그곳에서 군대 시절 선임이었던 아끼는 동생과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치열했던 군 생활의 추억을 공유한 이와의 식사는 단순한 끼니를 넘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반가운 재회를 뒤로하고 다시 오산을 향해 10km의 길을 재촉하던 중, 아스팔트 위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위태롭게 길을 건너던 오리 가족 중 새끼 오리 한 마리가 그만 하수도 구멍 아래로 툭 떨어져 버린 것이다. 당황해하는 오리 가족을 보며 주저 없이 몸을 숙였다. 어둡고 깊은 하수도에서 무사히 구조해 낸 작은 새끼 오리가 다시 엄마 오리의 뒤를 졸졸 따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말로 다 못할 뿌듯함과 뭉클함이 차 올랐다. 길 위의 여행자가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지켜낸 셈이다.
당초 저녁에는 여자 검도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오랜 친구와 만나 회포를 풀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약속이 취소되는 작은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도보 여행자는 길 위의 변수에 의연해야 하는 법. 마침 내일 전국적으로 거센 비 소식이 예보되어 있어, 내일 만약 여정을 잠시 쉬어가게 된다면 그 비를 핑계 삼아 다시 따뜻한 식사 자리를 도모하기로 기약했다.
빗소리가 예고된 10일 차의 밤, 오늘은 거친 아스팔트 대신 뜨끈한 사우나에서 온몸의 굳은살을 녹이며 쉬어갈 예정이다. 할머니의 밥상에서 얻은 온기, 군대 동생과의 신뢰, 새끼 오리를 구한 생명의 경외감까지 품었으니, 오늘 밤의 휴식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평온할 것이다. 길은 청년을 성장시키고, 청년은 그 길을 사랑으로 채워가고 있다.
글 홍주한 도보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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