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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냉정들판에 찬바람만 남고, 두루미는 북으로 갔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2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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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래 머물다 간 자리엔 늘 적막이 먼저 내려앉는다.  

경기 포천시 관인면 냉정들판이 그렇다. 겨우내 생명의 온기로 출렁이던 들판은 어느새 고요해졌고, 바람은 빈 들녘을 오래도록 쓸고 지나간다. 그 많던 두루미들이 끝내 북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한여울 권순 작가가 담아낸 3월의 냉정들판에는 이별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한때 들판을 가득 메우던 두루미 떼는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서너 쌍만이 남아 빈 하늘 아래를 서성인다. 무리는 떠났고, 남겨진 것들은 침묵과 바람과 기다림이다.


떠나기 전 두루미들은 들판에 마지막으로 내려앉았다.  

차가운 흙 위를 천천히 걸으며 먹이를 찾고, 머리를 들고 먼 하늘을 살피고, 다시 무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먹이활동이 아니었다. 머나먼 비행을 앞둔 존재들이 몸속에 마지막 힘을 채우는 의식처럼 보였다. 겨울 들판의 적막은 그들의 발끝에서 깨졌고, 생명은 부지런히 들녘을 건너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짙은 주황빛으로 번져가는 일출의 하늘 아래, 두루미들은 날개를 펴 올렸다. 몇 차례 원을 그리듯 선회하더니, 마치 오래 준비해온 작별의 춤이라도 추는 듯 군무를 펼쳤다. 하늘은 붉었고, 날갯짓은 장엄했으며, 들판은 그들의 마지막 비행을 숨죽여 배웅했다. 잠시 후, 그들은 홀연히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들녘에는 권순 작가의 표현처럼 “휑하니 찬바람만” 불었다.


두루미는 늘 그렇게 떠난다.  

머뭇거림 없이, 그러나 한 계절의 기억을 깊이 남긴 채.  

이들이 향하는 곳은 러시아 시베리아와 몽골의 북쪽 번식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험한 길 위에는 찬 공기와 낯선 하늘, 끝없이 이어질 비행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두루미는 해마다 같은 길을 기억하고, 같은 계절의 약속을 따라 다시 날아오른다. 자연은 그렇게 자신의 시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인다.


권 작가는 두루미를 보내며 무사한 여정을 빌었다.  

그리고 가을의 재회를 기다린다고 적었다.  

어쩌면 이별은 끝이 아니라, 돌아옴을 믿는 마음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냉정들판은 쓸쓸하지만, 그 빈자리조차 희망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떠난 새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고, 침묵의 들판은 다시 날갯짓으로 가득 찰 것이다.


두루미가 떠난 뒤의 들판은 전보다 더 넓어 보인다.  

그리고 더 깊다.  

생명이 머문 자리는 비어 있을 때 더 선명해진다. 겨울 동안 이 땅을 지켜준 고귀한 손님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은 바람 속에, 흙냄새 속에,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잘들 다녀오시길….”


권순 작가의 짧은 인사는 끝내 한 편의 기도가 된다.  

냉정들판의 바람은 그 인사를 품고 북쪽으로 불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이 봄의 이별이, 가을의 재회를 더욱 깊고 반갑게 만들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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