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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품은 가톨릭의 땅, 그곳에 남겨진 아이들의 눈물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6.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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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품은 가톨릭의 땅, 그곳에 남겨진 아이들의 눈물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뜻하는 '코피노'는 양국 관계의 가장 아픈 단면이다. 현재 약 4만에서 5만 명으로 추산되는 코피노 문제의 기저에는 한국 남성들의 무책임한 도덕 관념뿐만 아니라, 필리핀 사회의 강력한 종교적 배경과 '낙태 금지'라는 법적·문화적 환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생명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신앙과 강제된 출산

필리핀은 전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대표적인 국가다.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는 종교적 교리에 따라 교회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며, 이에 따라 낙태는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문제는 현지 유학생, 사업가, 관광객 등 일부 한국인 남성들이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뒤 발생한다. 한국인 아버지가 낙태를 요구하거나 부양을 거부하고 한국으로 도주하더라도, 필리핀 여성들은 가톨릭 신앙과 법적 규제 때문에 부득이하게 아이를 출산해 혼자 기를 수밖에 없다. 생명을 무조건 낳아서 길러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이, 역설적으로 홀로 남겨진 싱글맘과 아이에게 독자적인 생존의 무게를 지우는 그늘이 된 셈이다.

 

책임은 증발하고 낙인만 남은 현실

일부 한국인 남성들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연락처를 바꾸거나 가짜 인적 사항을 남긴 채 잠적하곤 한다. 필리핀 사회가 이들을 문화적으로 포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경제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홀로 남겨진 코피노 가정은 극심한 빈곤과 사회적 소외라는 이중고를 겪는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라나는 아이들은 경제적 기회를 박탈당하기 쉽고, 무책임한 한국인 '코피노 파파'들의 행태는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법적 투쟁과 변화의 움직임

수십 년간 방치되던 이 문제에 최근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필리핀의 시민단체들은 '코피노 아빠 찾기' 운동을 통해 무책임한 아버지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실제로 법적 소송을 통해 한국인 아버지를 상대로 친자 확인을 받아내고 양육비를 청구하는 승소 사례가 늘고 있으며, 소송 과정에서 뒤늦게 연락을 취해오는 아빠들도 생겨나고 있다.

 

핵심 시사점필리핀의 낙태 금지 제도는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에서 출발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결합했을 때 여성과 아이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코피노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법적 공조와 철저한 양육비 이행 강제 등 제도적 안전망이 확충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인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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