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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한의 철원에서 제주까지 21일 차 6월 30일 칼럼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7.0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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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에서 청도

홍주한의 철원에서 제주까지 21일 차 6월 30일 칼럼

 

대구에서 청도

 

오늘은 아침부터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하루 더 대구에 머물며 쉬어갈까 몇 번을 망설였다. 하지만 곧 장마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었고 초반에 입은 허리 부상 탓에 이미 일정이 많이 지체된 터라 결국 무거운 배낭을 다시 멨다.

 

몸은 솜이불을 물에 적신 듯 무거웠고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자주 길가에 주저앉아 숨을 고라야 했다. 그렇게 간신히 15km 남짓을 걸어 지도를 확인했을 때 절망감이 밀려왔다. 또다시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는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조차 아득한 팔조령이었다.

 

지칠 대로 지친 데다 하루 종일 거의 공복 상태였기에 눈에 띄는 가창면의 류화라는 중국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땀범벅이 된 나를 보자마자 사장님은 마치 기다리던 손님을 맞이하듯 반갑게 인사하며 시원한 콜라 한 캔을 툭 건네셨다. 

 

타는 목을 축이고 더운 날씨에 어울리는 중화냉면과 군만두를 주문했다. 먼저 나온 냉면을 비우고 있는데 사장님이 슬며시 다가와 군만두 접시를 놓으며 이것도 서비스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낯선 길 위에서 받은 연이은 호의에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서려는데 사장님은 어느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직접 내려 손에 쥐여주셨다. 하루 종일 온몸을 짓누르던 피로가 그 따뜻한 정성 덕분에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낯선 이가 건넨 귀한 응원을 배에 채우고 팔조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든든한 식사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에너지가 된 것일까. 신기하게도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침내 정상 전망대에 서서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한 순간 가슴속에 꽉 막혀 있던 답답함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갔다.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자전거로 그 가파른 팔조령을 타고 올라오신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할아버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너 같은 젊은 친구들이 이 땅에 있으니 대한민국은 절대 쉽게 망하지 않는다며 어깨를 토닥여주셨다. 그리고 인근 매점에서 음료수 한 병을 사서 건네셨다.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그 한마디가 심장을 쿵 하고 울리며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다.

 

문득 오늘 아침의 망설임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힘들다고 대구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면 이 소중한 인연들도 눈부신 풍경도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팔조령의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며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가장 또렷하게 남은 문장이 하나 있었다.

 

고생은 낭만과 비례한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예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 투박한 말이 내 여정에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훈장이었다.

 

그렇게 산을 내려와 다시 10km를 더 묵묵히 걸은 끝에 드디어 청도군에 발을 디뎠다.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밤공기가 내려앉은 공원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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