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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에서 밀양까지, 빗속에서 가방을 비우다

  • 박동민 기자
  • 입력 2026.07.02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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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주한의 철원에서 제주까지 22일차
[칼럼] 청도에서 밀양까지, 빗속에서 가방을 비우다

홍주한의 철원에서 제주까지 22일차

 

 청도를 떠나 밀양으로 향하는 길, 길 위에서는 누구나 정직해진다. 하늘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밤, 청도의 좋은 날씨에 취해 야외 벤치에서 침낭만 덮고 청했던 단잠은 불청객처럼 찾아온 빗방울에 두 시간 만에 깨여버렸다. 지붕을 찾아 서둘러 자리를 옮긴 새벽 3시, 낯선 이가 건넨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얼어붙던 마음을 녹인 것도 잠시, 날은 눅눅했고 밀양까지 갈 길은 멀었다.

 

결국 판초우의를 꺼내 입고 빗속으로 나섰다. 청도 경계를 넘어 밀양으로 이어지는 25km의 여정. 처음에는 어떻게든 옷과 신발이 젖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물웅덩이를 피해 가고, 스며드는 빗물을 털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그것은 부질없는 저항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무거워졌고, 젖지 않으려 발버둥 칠수록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어느 순간, 문득 내려놓게 되었다. 어차피 옷 안은 이미 흘러내린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에이, 좀 젖으면 어때.’ 마음을 바꾸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젖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신경질이 사라진 자리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청도와 밀양 사이의 고즈넉한 풍경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 안개에 싸인 산등성이, 빗방울이 수면을 두드리는 소리, 맑은 날에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빗속 고유의 운치와 매력이 눈과 귀를 채웠다.

 

그 길 위에서 큰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우리가 삶에서 버리지 못하는 미련은 비단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만 늘리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행동과 마음가짐 역시 마찬가지다. 늘 부족함 없이, 완벽하게 해내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스스로에게 부담만 지우고 삶을 더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가끔은 흐르는 비를 온전히 맞아들이듯,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가지 깨달음을 안고 마침내 밀양에 도착했지만, 인생의 변수는 끝까지 이어졌다. 고단한 몸을 뉘려던 찜질방은 이미 1년 전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밀양의 한 버스정류장에 주저앉아 있을 때, 초등학생 아이 둘이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유튜버 하세요?”

 

길 위의 이방인에게 호기심을 보이던 맑고 긍정적인 아이들과 한참 동안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며 웃다 보니, 숙소가 폐업해 생긴 짜증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쥐여 보내고 새 숙소에 들어서 샤워를 마쳤을 때, 밀려오는 피로감 속에서도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충만했다.

 

청도에서 밀양까지의 25km는 단순히 공간을 이동한 시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늘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젖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때로는 비를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 앞에서도 멈춰 서서 웃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풍경과 사람의 온기가 보이기 마련이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 완벽이라는 미련을 비워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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