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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쟁은 구호가 아니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2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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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전을 끼고 사는 나라에서 ‘전쟁 불사’를 말하는 정치의 가벼움

 

파병요구_거부하라.jpg

 

한반도에서 전쟁을 입에 올리는 일은, 원래 그렇게 가벼워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마치 결기 있는 구호라도 되는 양 ‘전쟁 불사’ 같은 말을 쉽게 던진다. 듣고 있자면 섬뜩하다기보다 오히려 허망하다. 전쟁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전쟁은 텔레비전 토론에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고, 선거철 강경 발언 몇 마디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번 불이 붙으면 군인만이 아니라 시민이 죽고, 도시가 무너지고, 일상이 증발한다. 더구나 한국은 그런 파국이 단지 포탄 몇 발의 문제가 아닌 나라다.


이철우 전 의원의 발언이 불편하게 들릴 수는 있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그가 지적한 핵심은 단순하다. 한국은 이미 초고위험 기반시설을 끌어안고 사는 나라라는 점이다. 원전이 그렇고, 수도권의 생명선과도 같은 주요 기반시설이 그렇다. 이런 조건에서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배짱이 아니라 무지에 가깝다. 실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무엇이 타격 대상이 되고, 어떤 연쇄 붕괴가 벌어질지 조금이라도 상상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전쟁은 애국심을 과시하는 문장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는 현실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강경 발언이 대개 현실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 소비의 언어라는 점이다.  

안보를 말하는 척하지만 실은 지지층을 결집하고, 상대를 겁주고, 자신을 더 강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는 수사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런 안보 포퓰리즘은 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복잡한 현실은 지우고, 위험한 감정만 남긴다. 신중함은 비겁함으로 몰고, 평화의 언어는 나약함으로 조롱한다. 그러나 진짜 비겁한 것은 전쟁을 막기 위해 계산하고 인내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감당하지도 못할 재앙을 남에게 떠넘기며 호기를 부리는 태도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특히 그렇다.  

이곳의 전쟁은 국지적 충돌로 끝날 가능성보다, 걷잡을 수 없는 확전과 대규모 민간 피해로 번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수도권 밀집 구조, 에너지 인프라, 접경 지역의 군사적 긴장도, 남북의 상호 타격 능력은 모두 그 사실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서 전쟁은 ‘강하게 나가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시작 자체가 곧 재앙인 구조다. 그런데도 이를 모르는 듯 ‘불사’를 외치는 목소리는 용감해서가 아니라 너무 값싼 것이다.


정치가 시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안정은 허세가 아니라 억제력이다.  

말하자면 ‘싸울 각오’를 과시하는 정치가 아니라, 싸우지 않게 만드는 정치 말이다. 냉정한 판단, 위기 관리, 외교적 출구, 국민 통합,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의 실제 비용을 직시하는 태도. 이런 것들이야말로 안보다. 반대로 전쟁을 입에 올리는 일을 강단으로 착각하는 순간, 정치는 안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안보를 소비하게 된다.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더 센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 나라 국민의 삶을 실제로 지킬 수 있느냐.  

원전을 끼고 살고, 초밀집 도시를 안고 살고, 한 번의 오판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나라에서 ‘전쟁 불사’를 외치는 것은 결기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지우는 선동에 가깝다. 진짜 안보는 입으로 불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끝내 그 불이 번지지 않도록 막아내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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