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의 날, 이제는 ‘권리의 날’이어야 한다
- 보호의 언어에서 시민의 권리로....포천 도보행진이 묻는 것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매년 4월이 되면 우리는 익숙하게 ‘장애인의 날’을 떠올린다. 각종 기념식이 열리고, 위로와 격려의 말이 오가고, 배려와 이해를 강조하는 문구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 익숙한 풍경 속에서 정작 되묻게 되는 것이 있다. 장애인은 여전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 배려의 수혜자로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포천에서 열리는 ‘제14회 420 두 바퀴로 가는 세상 도보행진’은 바로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든다. 오는 4월 10일, 포천의 장애인과 시민들이 소흘읍행정복지센터에서 포천시청까지 11.5km를 함께 걷는다. 겉으로 보면 하나의 지역 행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걸음의 의미는 단순한 캠페인이나 기념행사에 머물지 않는다. 이 행진은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이라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 명제를 지역사회 한복판에 다시 세우는 일이다.
11.5km라는 거리는 숫자로만 보면 짐작하기 어렵다. 비장애인에게도 결코 가벼운 거리가 아니지만,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이동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는 일상의 불편과 사회 구조의 장벽을 고스란히 마주하게 하는 거리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보도블록의 턱이 위협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횡단보도의 짧은 신호가 하루의 이동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렇게 보면 이 행진은 단지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는 여정이 아니다. 포천이라는 도시가 장애인의 이동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벽을 여전히 남겨두고 있는지를 몸으로 증언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행진은 ‘걷기 행사’가 아니라 ‘질문하는 행진’에 가깝다.
왜 어떤 시민의 이동은 아직도 특별한 결심이 필요해야 하는가.
왜 장애인의 노동은 보호의 이름 아래 축소되거나 예외적으로 다뤄져야 하는가.
왜 교육과 건강, 자립생활은 선언적 권리로만 남아 있는가.
행진의 경로는 도로 위에 놓이지만, 그 질문은 결국 지역 행정과 시민의식, 그리고 정치의 책임을 향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행사가 단순한 상징행동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최 측은 이동권·노동권·교육권·건강권·자립생활 보장 등을 담은 정책요구안을 포천시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역 차원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의지다. 권리는 감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좋은 말 몇 마디나 일회성 행사만으로도 지켜지지 않는다. 제도와 예산, 행정의 우선순위 속에 반영될 때 비로소 권리는 현실이 된다.
우리는 종종 장애인 정책을 복지의 하위 항목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복지 이전에 시민권의 문제다. 이동권은 어디론가 갈 수 있는 자유이고, 노동권은 자신의 능력과 존엄을 사회 안에서 증명할 기회이며, 교육권은 삶의 선택지를 넓히는 기반이다. 자립생활 보장은 단지 혼자 사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다. 이 권리들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일부 시민에게만 완성된 공동체일 뿐이다.
‘장애인의 날’을 둘러싼 가장 큰 한계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념은 있지만 변화는 더디고, 위로는 있지만 권리는 자주 뒤로 밀린다. 동정과 배려의 언어는 때로 따뜻해 보이지만, 그 언어가 장애인을 끝내 수동적 위치에 머물게 한다면 오히려 평등을 가로막을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라는 시선이 아니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라는 관점의 전환이다.
포천에서 열리는 이번 도보행진은 거창한 이론으로 그 전환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시민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걷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보도블록 하나, 경사로 하나, 일자리 하나, 교육의 기회 하나가 어떤 사람에게는 곧 존엄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묻는다. 우리는 장애인을 위한 도시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장애인이 견뎌야 하는 도시를 그대로 두고 있는가.
결국 이번 행진의 의미는 11.5km를 완주하는 데 있지 않다.
그 걸음을 지켜보는 지역사회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바꾸기로 결심하느냐에 달려 있다. 포천의 이 작은 행진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시혜는 잠시일 수 있지만, 권리는 미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를 말하기 전에, 장애인이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먼저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권리를 도시의 구조와 행정의 언어, 정치의 실천 속에 새겨 넣어야 한다. 포천의 11.5km는 바로 그 출발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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