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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대찌개의 성지? 아니, 백제의 시원을 품은 의정부의 ‘얼’을 찾아서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3.2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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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議政府). 우리에게 이 이름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가? 누군가에게는 미군 부대가 있던 ‘기지촌’의 멍에로, 또 누군가에게는 ‘부대찌개’라는 먹거리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이름 속에는 그보다 훨씬 깊고 찬란한, 그러나 애써 외면받아온 역사의 뼈대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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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얼세우기총연합회 [사진=메트로 포천]

 

기지촌의 멍에를 벗고, ‘조선을 구한 이름’을 쓰다

60여 년을 의정부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서, ‘기지촌’이라는 꼬리표는 평생을 따라다닌 정서적 족쇄였다. 감수성 예민한 시절부터 중장년이 된 지금까지도 의정부는 여전히 전쟁의 흔적과 착취의 역사로만 소비되곤 한다. 심지어 ‘의정부’라는 지명조차 조선 시대 관청에 공납을 하던 ‘둔야(屯夜)’—즉, 수탈의 현장에서 유래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우리가 아는 관청 이름(議政府)이 아닌, ‘회의할 의(議)’, ‘정 정(情)’, ‘언덕 부(부)’ 자를 쓴 또 다른 의정부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조선을 위해 희생한 의순공주의 넋을 기리는, ‘사랑과 존경의 언덕’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착취의 땅이 아닌, 나라를 구한 희생과 사랑이 깃든 땅.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의정부의 첫 번째 얼굴이다.


2천 년 전의 비밀, 소서노와 온조의 숨결

의정부의 역사는 조선 시대에 머물지 않는다. 호원동 이성산성(二聖山城)은 단순히 두 개의 성이 아니다. 백제의 건국 시조인 소서노와 온조, 즉 ‘두 성인’이 쌓은 성이라는 설화가 깃든 곳이다. 기원전 18년, 백제의 하북위례성이 바로 이곳 의정부였다는 증거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또한, 귀락마을의 고인돌 군락지는 5천 년 전 ‘모수국’의 찬란한 상고 문명을 증명한다. 수원이 모수국의 역사를 탐내고 있지만, 진짜 유물과 현장은 바로 우리 의정부에 있다. 이성계라는 한 인물의 서사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백제의 시원과 고대 국가의 기틀이 닦인 ‘최초’이자 ‘최고’의 역사적 아젠다를 선점해야 한다.


사라지는 고인돌, 무너지는 자부심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무분별한 개발 논리에 밀려 의정부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들이 콘크리트 아래 묻히고 있다. 최근 10여 년 사이, 경기도 박물관이 공인한 고인돌 9개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수천 년의 세월을 버틴 성혈(星穴)이 새겨진 바위들을 파쇄했다.


도봉산과 수락산의 풍광을 가로막는 고층 빌딩 숲이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진정한 유산인가? 역사는 한 번 묻히면 되돌릴 수 없다. 우리가 ‘땅 이름 얼 세우기’ 운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향심이 곧 미래의 지도자를 만든다

우리는 왜 이토록 지독하게 역사 운동에 매달리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 즉 미래 세대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를 ‘부대찌개 동네’로 아는 것과 ‘백제의 시원이 시작된 유서 깊은 땅’으로 아는 것은 그 아이의 자존감에 천양지차를 만든다.


지역을 잘 아는 것(知)이 자부심(信)이 되고, 그 자부심이 곧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愛)으로 이어진다. 애향심이 없는 아이가 나라를 사랑하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는 없다. ‘땅 이름이 마을의 미래’라는 우리의 모토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다. 의정부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 지도자로서의 그릇을 만들어주는 교육의 정점이다.


이제 시민이 깨어나야 할 때

행정가와 정치인들은 표가 되는 개발에만 눈을 돌릴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를 지키는 것은 결국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시민들의 몫이다. 소서노 축제를 열고, 소서노 길을 조성하며, 사라져가는 고대 산성을 재조명하는 일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의정부는 더 이상 서울의 변방이나 군사 도시가 아니다. 우리는 5천 년 역사의 도도한 흐름 위에 서 있다. 우리 세대가 이 역사의 부채를 이자를 쳐서 갚지 않는다면,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부심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제 의정부의 ‘얼’을 다시 세우는 이 거대한 여정에 시민 여러분의 뜨거운 동참을 기대한다.


[기자의 한마디]


"땅 이름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역사의 화석입니다. 그 화석을 발굴해 우리 아이들의 가슴 속에 자부심으로 심어주는 일,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값진 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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