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이 다시 협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나쁘지 않은 신호다. 전쟁은 길어질수록 모두에게 손해이고, 결국 어디선가는 출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미국은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고, 이란은 “그런 협상은 없다”고 맞선다. 둘 다 평화를 말하지만, 정작 평화가 가까워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지금의 분위기는 협상 국면이라기보다, 협상이라는 말을 앞세운 또 다른 대치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과 이란이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장면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하는 평화는 단순히 총성이 멎는 상태가 아니다. 이란의 핵 개발 능력을 묶고, 장거리 미사일 역량을 꺾고, 후티 반군이나 헤즈볼라 같은 친이란 세력에 대한 지원도 차단하는 상태에 더 가깝다. 다시 말해 미국이 생각하는 평화는, 이란이 지금까지 쌓아온 전략적 영향력을 상당 부분 내려놓는 데서 출발한다.
반면 이란이 원하는 평화는 전혀 다르다. 이란은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 재공격을 받지 않을 안전보장, 그리고 자국의 주권과 지역 내 역할에 대한 인정을 요구한다. 이것은 항복이 아니라 인정의 문제다. 이란 입장에서는 “무장을 풀고 조용히 있어라”는 식의 평화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일 것이다. 자신들이 버텨냈고, 무너지지 않았고, 여전히 중동 질서에서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결국 양측 모두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미국은 이란의 후퇴를 원하고 이란은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길 원한다. 접점이 생기기 어려운 구조다. 둘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셈이다.
협상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조건’보다 ‘불신’이다
사실 국제정치에서 조건 차이 자체는 낯선 일이 아니다. 협상이란 원래 서로 다른 조건을 맞춰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미국과 이란 사이에는 조건 차이 이전에 신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란은 미국을 믿지 않는다. 과거에도 대화와 압박이 교차했고, 합의가 오래가지 못한 경험이 누적돼 있다. 그러니 미국이 협상을 말해도 이란은 그것이 진짜 타협의 신호인지, 아니면 시간을 벌기 위한 압박 전술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 역시 이란을 신뢰하지 않는다. 협상 가능성을 내세우며 제재를 피하고, 그 사이 핵과 미사일 역량을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워싱턴 안에 깊게 깔려 있다.
서로를 믿지 않는 두 나라가 협상에 나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말은 오가지만 양보는 없다. 대화는 이어지지만 진전은 없다. 겉으로는 외교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속내를 떠보기 위한 탐색전만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미국-이란 관계가 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는 “협상이 진행 중이다”라는 말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미국은 국제사회에 외교의 문을 닫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할 것이다. 이란은 반대로 서둘러 매달릴 이유가 없다는 점을 과시하려 할 것이다. 양측 모두 국내외 청중을 의식한 발언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현실의 협상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걸프 국가들이 느끼는 불안은 더 현실적이다
이 대치를 가장 불안하게 바라보는 쪽은 오히려 걸프 지역 국가들일지도 모른다. 이들 역시 이란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란이 무너지는 혼란을 원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느냐보다, 불안정이 얼마나 길어지느냐다.
걸프 국가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상처 입었지만 무너지지 않은 이란이다. 강경함은 더 커졌고, 드론과 미사일, 해상 위협 능력은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 말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처럼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가 긴장 상태에 놓이면, 중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경제 전체의 불안으로 번진다. 누군가에게는 외교 문제일 수 있지만, 걸프 국가들에게는 곧바로 안보와 생존의 문제다.
생각해 보면 이들의 걱정은 꽤 현실적이다. 미국은 압박을 통해 이란을 바꾸려 하고, 이란은 버티기를 통해 자신을 인정받으려 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실제 비용을 치르는 곳은 현장에 가까운 나라들이다. 유가는 출렁이고, 해상 물류는 흔들리고, 안보 불확실성은 커진다. 강대국의 전략 게임이 지역 국가들에는 일상의 불안으로 바뀌는 것이다.
군사적 우위가 곧 정치적 해법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더 큰 군사력을 가진 나라다. 필요하다면 압박 수위를 높일 수도 있고, 추가 병력을 배치하며 선택지를 넓힐 수도 있다. 하지만 군사적 우위가 언제나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미국이 가장 신중해야 할 대목이다.
이란은 단순히 공습 몇 차례로 굴복할 상대가 아니다. 영토도 넓고, 직접 충돌뿐 아니라 비대칭 방식으로 대응할 수단도 많다. 미국이 군사적 압박을 높일수록 이란은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할 수 있고, 그 결과는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적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전쟁은 시작보다 출구가 더 어렵다. 그리고 출구가 불분명한 군사행동은 외교적 해법을 앞당기기보다 오히려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이란이 버티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국이 쉽게 전면전으로 가지 못한다는 점, 국제사회 역시 중동의 대형 충돌을 반기지 않는다는 점, 시간이 지나면 압박의 강도도 정치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점을 계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이란은 지금의 긴장을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협상은 더 어려워진다. 급한 쪽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메시지’가 아니라 ‘낮춘 요구’다
국제 갈등이 꼬일 때마다 각국은 강한 메시지를 내놓는다. 원칙을 말하고, 결의를 강조하고, 양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협상은 원칙만으로 성사되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이란처럼 불신이 깊은 관계에서는 더 그렇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현실적인 수준으로 요구를 조정할 수 있느냐다.
지금처럼 미국은 이란의 전략 자산 전반을 제한하려 하고, 이란은 자국의 영향력과 안전보장을 포괄적으로 인정받으려 한다면, 합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대 요구를 계속 들이밀수록 협상은 원점에서 맴돈다. 외교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완전히 패배했다고 느끼지 않으면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찾는 기술이어야 한다. 지금의 미국과 이란은 그 지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협상 중’이라는 선언이 아니다. 각자의 요구를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미국은 이란의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접근이 현실적인지 돌아봐야 하고, 이란 역시 버티기만으로 원하는 인정을 모두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를 말하는 언어는 점점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평화는 구호가 아니라 계산의 산물이다
우리는 종종 평화를 선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평화는 선의만으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차가운 계산의 산물이다. 전쟁을 이어가는 비용이, 양보하는 비용보다 더 커졌을 때 비로소 협상이 움직인다. 지금 미국과 이란은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은 듯하다. 미국은 더 압박할 수 있다고 보고, 이란은 더 버틸 수 있다고 본다. 둘 다 아직은 자신이 불리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가장 위험하다. 모두가 전쟁의 종식을 말하면서도, 누구도 진짜 타협할 준비는 하지 않은 상태. 지금의 미국-이란 관계는 그 불편한 균형 위에 서 있다. 겉으로는 외교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신뢰도, 절충도, 출구 전략도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이 평화론은 희망의 언어이기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긴장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평화는 말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완전히 꺾겠다는 기대를 조금 내려놓을 때, 그리고 자신도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까워진다. 지금 미국과 이란에 가장 부족한 것도 어쩌면 바로 그 현실감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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