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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걸을 수 있다'는 이유로 버스도 못 탔다…포천 장애인 이동권의 역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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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획일적 소견서 기준이 만든 사각지대, 현장의 목소리가 행정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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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있으면 버스를 탈 수 있다. 얼핏 당연해 보이는 이 논리가, 오랫동안 포천시 발달·청각 장애인들의 발목을 잡아왔다.


장애인 바우처택시를 이용하려면 '대중교통 이용이 어렵다'는 의사 소견서가 필요했다. 그런데 병원은 물었다. 걸을 수 있습니까? 신체적 보행에 문제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소견서를 드리기 어렵습니다.


중증 발달장애인은 복잡한 버스 노선을 스스로 파악할 수 없다. 청각장애인은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다. 두 발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갈 수는 있지만,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 내려야 하는지를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이것이 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행정의 잣대는 단순했다. '보행 가능 여부'. 이 하나의 기준이 수많은 장애인을 이동권 사각지대로 밀어냈다.


◇ 서류 한 장이 만든 벽


제도의 취지는 분명 선했다.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택시 이용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것. 그러나 '어려움'을 측정하는 방식이 문제였다. 의사 소견서라는 단일 기준은 신체적 장애를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었고, 인지적·감각적 어려움은 그 틀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이가 두 발로 걷는다는 이유로 소견서를 못 받았어요. 그런데 혼자 버스를 타라고요?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는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청각장애인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버스 안내 방송은 들리지 않고, 기사에게 말을 걸기도 쉽지 않다. 낯선 노선에서의 대중교통 이용은 매번 모험이다. 그럼에도 '걸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 현장이 행정을 바꿨다


변화는 현장에서 시작됐다. 포천시장애인네트워크연대는 지난 2월 포천시청 교통행정과와 포천도시공사 관계자를 만나 이 불합리한 현실을 조목조목 짚었다. 숫자와 통계가 아니라, 당사자들이 매일 겪는 구체적인 고충을 전달했다.


포천도시공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의사 소견서 대신 장애인 복지카드와 읍·면·동 발급 장애인 증명서만으로 바우처택시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서류 접수 후 2일 이내 처리, 완료 즉시 문자 안내라는 행정 편의도 더했다.


작은 변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보행 가능 여부'라는 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나, 장애의 다양한 유형과 그에 따른 실질적 어려움을 행정이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이동권은 삶의 출발점이다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행위가 아니다. 병원에 갈 수 있고, 일터에 나갈 수 있고,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권은 교육권·노동권·사회참여권의 전제 조건이다. 이동이 막히면 삶 전체가 좁아진다.


그동안 포천의 발달·청각 장애인들은 그 좁은 삶을 강요받아 왔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자신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 남은 과제들


이번 제도 개선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포천시장애인네트워크연대가 밝혔듯, 이동권은 시작일 뿐이다. 교육권, 노동권, 자립생활 권리 등 장애인의 삶 전반에 걸친 사각지대는 여전히 넓다.


행정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제도는 바뀐다. 이번 포천의 사례가 그것을 증명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일회성 성과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의 목소리를 상시적으로 행정에 반영하는 구조로 이어지는 것이다.


걸을 수 있어도 버스를 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그것이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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