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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길은 사람을 모으고, 병원은 사람을 살게 한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2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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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병원-순천향대 협약이 던지는 질문 — 지방 의료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중증응급환자이송.jpg


경기도 포천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는 오래된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밤에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일단 차에 태우고 의정부나 서울로 달린다. 포천에서 버티다가는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노부모를 모시는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중증 응급 상황이 생기면 지역 병원을 믿고 맡기기가 두렵다.


이것이 포천 시민들이 수십 년째 안고 살아온 현실이다.


◇ 원정 진료의 서러움


상급 종합병원의 부재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심근경색, 뇌졸중, 중증 외상. 이런 상황에서 골든타임은 분 단위로 계산된다. 서울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는 그 자체로 치명적인 변수가 된다.


더 깊은 문제는 이 불안이 인구 유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아이를 낳고 키울 곳, 노부모를 모실 곳을 고를 때 사람들은 묻는다. 거기 병원은 있나요?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는 도시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다.


길은 사람을 모을 수 있다. 그러나 병원은 사람을 살게 한다.


◇ 협약 한 장이 바꾸는 것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이 지난 25일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과 체결한 업무협약(MOU)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중증응급환자 신속 이송과 진료 연계, 의료인력 교류, 전공의 수련 협력. 협약서에 담긴 항목들은 건조한 행정 언어로 쓰여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건조하지 않다.


핵심은 '인적 교류'다. 서울 대형 병원의 숙련된 전공의들이 포천 현장에 결합하는 통로가 열린다는 것. 이는 단순히 환자를 서울로 보내는 이송 체계를 넘어, 서울의 의료 수준을 포천으로 끌어오는 역방향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이성진 순천향대 서울병원장이 "의료인력 교류 사업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단순한 의례적 발언이 아니다. 대형 병원이 지역 공공의료와의 인적 연계에 실질적 가치를 인정했다는 신호다.


◇ 협약이 협약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러나 냉정하게 봐야 할 것도 있다.


병원 간 MOU는 매년 수백 건씩 체결된다. 그중 상당수는 협약식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서랍 속에 잠든다. 이번 협약이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파견 의료진에 대한 실질적인 처우 보장이다. 전공의가 포천에서 수련하는 것이 경력에 도움이 되고, 생활 여건도 감당할 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협약은 종이 위의 약속으로 남는다.


둘째, 지자체의 제도적 뒷받침이다. 의료 인프라 확충은 병원만의 과제가 아니다. 포천시와 시의회가 예산과 조례로 이 협력을 지탱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협약이 이행되고 있는지, 실제로 포천 시민들의 의료 접근성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묻고 확인하는 것은 결국 시민의 몫이다.


◇ '머무는 도시'의 조건


포천시는 지금 인구 성장을 화두로 내걸고 있다. 정주 여건 개선 또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 도시에 뿌리를 내리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이가 아플 때 달려갈 병원이 있는가. 부모가 쓰러졌을 때 믿고 맡길 곳이 있는가.


이번 포천병원의 협약이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되기를 기대한다.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는 도시, 그 전환의 열쇠 중 하나가 바로 이 협약서 한 장에 담겨 있다.


의료는 복지가 아니라 생존의 인프라다. 포천이 그 인프라를 갖추는 날, 비로소 사람들은 이 도시에 남을 이유를 하나 더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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