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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난은 예고 없이 오지만, 대비는 미리 할 수 있다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3.29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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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수판 4개가 던지는 질문 — 우리는 기후변화 시대의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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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역설이 있다.


피해가 발생하면 모두가 주목한다. 뉴스가 쏟아지고, 대책 회의가 열리고, 예산이 투입된다. 그러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조용히 설치된 차수판 하나, 미리 점검된 배수로 하나는 뉴스가 되지 않는다.


의정부시가 중랑천과 백석천 진출입로 4개소에 차수판 설치를 완료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재난이 일어난 뒤의 수습이 아니라, 재난이 일어나기 전의 대비이기 때문이다.


◇ 2025년 여름이 남긴 교훈


이번 차수판 설치의 출발점은 2025년 집중호우였다.


당시 중랑천 신곡교 인근, 가금교 인근, 백석천 동의교 인근에서 하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며 인접 저지대로 하천수가 유입될 우려가 제기됐다. 다행히 대규모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아슬아슬한 경험은 취약 지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행정이 이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위기가 지나간 뒤 안도하며 잊어버리는 것과, 그 경험을 데이터로 삼아 다음 위기를 대비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정이다. 의정부시는 후자를 선택했다.


◇ 차수판이라는 선택


차수판은 단순하지만 영리한 시설이다.


평상시에는 개방 상태를 유지해 하천 접근과 이용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집중호우로 수위가 상승할 때만 신속하게 설치해 범람을 차단한다. 고정식 방벽처럼 상시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즉각 기능을 발휘하는 가변형 방재시설이다.


이 선택에는 도시 행정의 균형 감각이 담겨 있다. 안전을 위해 시민의 일상적 편의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 재난 대비와 일상의 공존을 설계한 것이다.


◇ 기후변화 시대, 예방 행정의 의미


기후변화는 재난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과거의 집중호우가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랐다면, 지금의 국지성·돌발성 호우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기상청의 예보가 있어도 실제 강우량과 수위 상승 속도는 예측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에서 사후 대응 중심의 재난 관리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가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난이 발생한 뒤 복구하는 비용은 재난을 예방하는 비용보다 수십 배, 때로는 수백 배에 달한다. 인명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차수판 4개의 설치 비용이 단 한 번의 침수 피해를 막는다면, 그것은 가장 효율적인 행정 투자다.


◇ 취약 지점을 아는 도시


이번 사업에서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취약 지점의 특정이다.


4개소라는 숫자는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의정부시가 관내 하천의 어느 지점이 위험한지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연한 대비가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선제적 대응이다.


시는 금년도 우기를 대비해 중랑천을 포함한 관내 지방하천 6개소에 대한 안전 강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단순한 계획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취약 지점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데이터 축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올해의 경험이 내년의 대비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도시의 재난 대응 역량은 해마다 강화된다.


◇ 보이지 않는 안전의 가치


안전 인프라의 역설은 잘 작동할수록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수판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시민들은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침수 걱정 없이 일상을 보낼 수 있다. 그 평온함이 차수판 덕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재난 예방 행정의 성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좋은 행정의 증거다. 시민이 재난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도시, 폭우가 쏟아져도 일상이 유지되는 도시. 그 조용한 안전을 만드는 것이 도시 행정의 가장 근본적인 책무다.


재난은 예고 없이 오지만, 대비는 미리 할 수 있다. 중랑천과 백석천 변에 조용히 설치된 차수판 4개는 그 단순한 진실을 실천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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