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산런' 사진전이 던지는 질문 — 기념일은 누가 만드는가

3·1절은 매년 온다.
태극기를 달고, 기념식을 열고, 뉴스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되짚는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 3·1절이 점점 형식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행사, 익숙해서 더 이상 감동이 없는 의례.
양주시의 '별산런'과 그것을 기록한 사진전은 그 형식에 균열을 냈다. 시민 300여 명이 직접 달리고, 직접 태극기를 완성하고, 그 과정을 사진작가가 기록하고, 그 기록이 다시 전시가 됐다. 기념일이 행정의 행사에서 시민의 이야기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 달리는 것과 기억하는 것
'별산런'은 달리기 행사다. 3·1절을 기념해 시민들이 함께 달리는 것.
달리기와 독립운동 기념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처음에는 낯선 조합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연스럽다. 3·1운동은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만세를 외치며 걷고 달리던 사람들. 그 움직임이 역사를 만들었다.
시민들이 함께 달리는 것은 그 움직임을 몸으로 기억하는 방식이다. 교과서에서 읽는 역사와 발로 뛰며 경험하는 역사는 다른 층위의 기억을 만든다. 숨이 차오르고 땀이 나는 그 순간, 107년 전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의 용기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 300명이 완성한 태극기
시민 300여 명이 참여해 대형 태극기를 완성했다.
한 사람이 태극기를 그리는 것과 300명이 함께 태극기를 완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형태가 되는 것.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이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는 것을 느낀다.
3·1운동도 그랬다.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든 역사가 아니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세를 외쳤고, 그것이 모여 역사가 됐다. 300명이 함께 태극기를 완성하는 퍼포먼스는 그 집단적 역사 만들기를 현재의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 과정을 기록한다는 것
이번 사진전의 구성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강조다.
완성된 태극기 사진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태극기가 완성되는 전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함께 상영했다. 이 선택이 의미 있다.
결과는 깔끔하고 인상적이다. 그러나 과정은 살아있다. 처음에는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고, 각자의 자리를 찾고, 조금씩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표정, 움직임, 서로를 돕는 장면들. 이것들이 결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사진작가 박철이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한 것은 그 본질을 포착한 것이다. 좋은 사진은 결과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담는 것이다.
◇ 재능기부가 만드는 공동체
사진작가 박철의 재능기부가 이 전시를 가능하게 했다.
재능기부는 돈이 아닌 능력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다. 사진작가가 자신의 기술로 공공 행사를 기록하고, 그 기록이 전시가 되어 더 많은 시민과 공유된다. 한 사람의 재능이 공동체의 기억이 되는 과정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재능을 나누려는 개인의 의지와,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행정의 역할. 양주시가 시청 3층 오픈갤러리를 전시 공간으로 제공하고, 사진작가가 재능을 기부하고, 시민들이 행사에 참여한 것. 이 세 가지가 만나 하나의 전시가 완성됐다.
공동체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작은 실천들이 쌓여서.
◇ 양주의 독립운동가들
전시에 조소앙, 백남식, 김진성, 이용화. 양주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겼다.
이 선택이 중요하다. 3·1운동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거대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이 땅에서 살았던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양주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 역사를 추상에서 구체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조소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론적 기반을 만든 인물이다. 그가 양주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양주 시민이 얼마나 될까. 이번 전시가 그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역사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만든 역사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지역 역사 교육의 출발점이다.
◇ 10일간의 전시가 남긴 것
3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의 전시가 끝났다.
전시는 끝났지만 그것이 만든 것들은 남는다. 사진작가의 렌즈에 담긴 300명의 표정, 함께 달린 기억, 태극기를 완성하던 순간. 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내년 3·1절을 다르게 맞이할 것이다.
좋은 기념 행사의 효과는 행사가 끝난 후에 나타난다. 참여한 사람들이 그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다음에는 함께 참여하고 싶어지는 것. 그 확산이 공동체의 기억을 만든다.
10일간의 전시가 씨앗을 뿌렸다. 그 씨앗이 자라는 것은 이제 시민들의 몫이다.
◇ 기념일을 만드는 사람들
기념일은 달력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날을 의미 있게 보내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함께 달리고, 함께 태극기를 완성하고, 그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 기록을 전시로 나누는 사람들. 그들이 3·1절을 살아있는 기념일로 만든다.
양주시의 '별산런'과 사진전은 그 방향을 보여준다. 행정이 기획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어 만들고 행정이 그것을 지원하는 것. 기념일의 주인이 행정에서 시민으로 이동하는 것.
그것이 107년 전 거리로 나섰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과 닮아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것. 시민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
3·1절은 매년 온다. 그러나 시민이 직접 달리고, 함께 태극기를 완성하고, 그 과정이 사진으로 남는 3·1절은 다르다. 기념일은 달력이 만들지 않는다. 그날을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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