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는 사람들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3.29 11:57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양주 무형유산 단체 협의회가 던지는 질문 — 전통은 누가 지키는가

657373359_2290023024856253_4278313067241840829_n.jpg


소리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악보에 적힌 음표와 달리, 사람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소리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춤도 마찬가지다. 몸으로 전해지는 동작은 문자로 완전히 담을 수 없다. 굿의 리듬, 농악의 장단, 상여 소리의 떨림. 이것들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몸에서 몸으로 전해질 때만 살아남는다.


양주에는 그 소리와 몸짓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양주별산대놀이보존회, 양주소놀이굿보존회, 양주상여와회다지소리보존회, 양주농악보존회, 천봉나전칠기보존회, 청련사 예수시왕생칠재보존회, 양주들노래보존회, 최영장군당굿보존회. 여덟 개의 단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사라지려는 것들을 붙잡고 있다.


◇ 여덟 개의 세계


이 여덟 단체가 지키는 것들을 잠시 들여다보자.


양주별산대놀이는 조선 시대 서민들의 웃음과 풍자가 담긴 탈춤이다. 양반을 조롱하고, 부패한 승려를 비웃고, 삶의 애환을 춤으로 풀어냈던 민중의 예술.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 놀이는 양주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의 대표 격이다.


양주소놀이굿은 농경 사회의 흔적이다. 소를 중심으로 한 농촌 공동체의 의례가 굿의 형식으로 전해진다. 기계가 소를 대체한 지 오래지만, 그 시절 사람과 소가 함께 살았던 삶의 방식이 이 굿 안에 살아있다.


상여와 회다지소리는 죽음을 다루는 소리다. 망자를 보내는 의례, 흙을 다지며 부르는 노래. 현대의 장례 문화에서 거의 사라진 이 소리를 보존하는 것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 조상들의 태도를 기억하는 일이다.


들노래는 논밭에서 일하며 부르던 노래다. 힘든 노동을 견디게 해주던 소리,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리듬.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들노래를 부를 이유가 사라졌지만, 그 소리가 담고 있는 공동체의 기억은 여전히 소중하다.


최영장군당굿은 고려의 명장 최영을 모시는 무속 의례다. 역사적 인물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과정, 민간 신앙이 지역 공동체와 결합하는 방식. 이것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사람들이 역사와 관계 맺는 방식의 기록이다.


나전칠기는 손으로 만드는 예술이다. 자개를 붙이고 옻칠을 하는 수십 단계의 과정.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손의 기억이 천봉나전칠기보존회를 통해 이어진다.


여덟 개의 단체가 지키는 것은 여덟 개의 세계다. 각각의 세계가 사라지면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 혼자서는 버티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형유산 보존단체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문제가 있다. 전승자 부족, 재정 어려움, 대중의 관심 감소. 젊은 세대는 전통 예술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사람이 줄어들면 가르칠 사람도 줄어든다. 악순환이다.


각 단체가 개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계가 있다. 홍보 역량도 부족하고, 공연 기회도 제한적이고, 행정 지원을 받는 방법도 잘 모를 수 있다. 여덟 개의 단체가 각자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면 그 어려움은 배가된다.


이번 협의회가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덟 개의 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운영 현황과 애로사항을 공유했다. 내가 겪는 어려움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립감이 줄어든다.


◇ 개별에서 통합으로


이번 협의회의 핵심 방향은 '개별 단체 중심의 활동에서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승 구조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시민과 관광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양주에 무형유산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별산대놀이는 알아도 소놀이굿은 모르고, 들노래는 들어봤어도 회다지소리는 낯선 경우가 많다.


여덟 개의 단체가 각자 홍보하면 각각의 인지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양주 무형유산'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묶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별산대놀이를 보러 온 관광객이 소놀이굿도 알게 되고, 농악 공연을 본 시민이 나전칠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각각의 매력이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양주관아지 활성화 사업과의 연계도 이 맥락에서 중요하다. 역사적 공간과 무형유산이 결합될 때 시너지가 생긴다. 관아지라는 공간에서 별산대놀이가 펼쳐지고, 농악이 울려 퍼지고, 들노래가 흘러나온다면. 그 공간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전통 문화의 현장이 된다.


◇ 전통은 박물관에 있지 않다


전통 문화를 보존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박물관식 보존이다. 유물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전시한다. 완벽하게 보존되지만 살아있지 않다. 유리 케이스 안의 전통은 볼 수 있지만 느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살아있는 보존이다. 사람들이 직접 배우고, 공연하고, 일상에서 경험한다.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살아있다. 변형되고 진화하면서도 본질을 유지한다.


무형유산은 본질적으로 두 번째 방식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악보에 기록된 별산대놀이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춤추는 별산대놀이, 영상으로 남겨진 소놀이굿이 아니라 실제로 울려 퍼지는 소놀이굿. 사람들이 보고 듣고 참여할 때 전통은 살아있다.


그래서 시민과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단순한 홍보 전략이 아니다. 그것이 무형유산을 살리는 방법 자체다.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배우고 싶어지고, 더 많은 전승자가 생긴다.


◇ 협의회가 씨앗이 되려면


이번 협의회가 일회성 모임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정기적인 만남이 이어져야 한다. 한 번 모이는 것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은 다르다. 신뢰는 반복적인 만남에서 쌓이고, 협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둘째, 구체적인 공동 사업이 만들어져야 한다. 연간 공연 일정을 공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함께 기획하는 공연, 함께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 함께 만드는 홍보물이 나와야 한다.


셋째, 젊은 세대와의 연결이 필요하다. 전통 예술이 어렵고 낯설다는 인식을 바꾸는 것. 학교 교육과의 연계, 청년 대상 체험 프로그램, 소셜미디어를 통한 콘텐츠 제작. 전통이 현재와 만나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 전승의 미래를 결정한다.


◇ 사라지기 전에


세상에는 한번 사라지면 되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언어가 그렇고, 소리가 그렇고, 몸으로 전해지는 기술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아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 지식은 영원히 사라진다. 어떤 기술로도 복원할 수 없다.


양주의 여덟 개 보존단체는 그 사라짐을 막고 있는 사람들이다. 화려하지 않고, 주목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경제적 보상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없으면 별산대놀이의 탈춤이, 소놀이굿의 리듬이, 들노래의 가락이 사라진다.


이번 협의회가 그 사람들을 연결하는 첫걸음이 됐다. 혼자 버티던 사람들이 함께 버티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전통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소리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리는 불리지 않으면 사라진다. 양주의 전통이 살아있으려면 무대가 필요하고, 관객이 필요하고, 다음 세대가 필요하다. 협의회는 그 모든 것을 향한 첫 번째 문을 열었다.


ⓒ 메트로포천 & metropc.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90세 노모가 입혀준 붉은 점퍼 소통과 효심으로 그리는 포천의 미래
  • 가평 ‘상동터널’ 건립 사업, 행안부 중투심 통과. ‘사업 추진 가속도’
  • 국민의힘, 포천 시의원 선거 ‘위기론’ 확산... 승부수는 ‘필승 전략공천’
  • 임종훈 포천시의장, '험로' 무소속 시의원 3선 도전...
  • 가을 정취 물들이는 허브아일랜드 관광객을 위한 음악회 성황
  • 경민고 총동문회 골프팀 SBS골프 고교골프최강전 4강 진출 쾌거 10월 13일 준결승 격돌
  • 독수리유격대 전몰대원 추모행사 노곡리 전적비서 엄수
  • 옥정 포천 광역철도 대진대역 공사 현장 무법천지
  • (단독)미2사단 한미연합사단 포천서 2026 추석 리셉션 개최 굳건한 한미동맹 다져
  • 도마치계곡 익수 사고 현장서 빛난 포천시 시민안전과의 대응… 군부대 비협조는 뼈아픈 오점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기자수첩]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는 사람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