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무궁화 백 그루가 심은 것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30 13:42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갈월천 '생태 인문의 숲'이 포천에 묻는 질문

657518376_26519515181034234_6253742661193419169_n.jpg

 

657179010_26519516164367469_331920588323204577_n.jpg

 

658877354_26519516531034099_3596061301258568692_n.jpg

 

657224898_26519518351033917_5861147842566608767_n.jpg

 

658139178_26519518664367219_822650128083681968_n.jpg

 

658377953_26519527971032955_5299207115256334023_n.jpg


80년을 살았던 땅을 떠나면서 그는 짐 대신 나무를 남겼다.


무궁화 백 그루. 김대수·김하숙 부부가 가마골을 떠나며 갈월천에 기증한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터전에, 자신들이 살았다는 흔적 대신 앞으로 살아갈 것들을 심었다. 그 선택 안에 이번 행사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


3월 30일, 포천시 신북면 갈월리에 '생태 인문의 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이름이 붙기 전부터 이 숲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한 노부부의 조용한 결심으로.


◇ 오지가 품은 역설


가마골은 오지였다.


차 두 대를 망가뜨려야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는 이 마을은, 그 불편함 덕분에 오히려 온전히 남아있었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에 갈월천이 흘렀고, 그 물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이 살았다.


황의출 포천예총 회장이 "옥보다 귀한 물이 흐르는 곳"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포천에 이런 물줄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그의 말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 채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오지는 결핍의 공간이 아니었다. 보존의 공간이었다. 그 역설을 이번 명명식이 드러냈다.


◇ 4년의 씨앗, 하루의 꽃


이 숲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


최광석 탄소중립지원센터장이 회고한 4년 전의 이야기가 있다. 신미숙 신북면장이 기후환경과장 시절, 지자체 최초로 탄소중립의 기틀을 잡았던 그 노력이 오늘 갈월천의 마중물이 됐다는 것이다. 경기도 공모사업 예산을 확보하고, 주민 공동체와 협력하고, 4년의 시간을 쌓아온 결과가 이날 명명식으로 피어났다.


행정의 미덕은 지속성이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방향이 유지되고,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갈월천 생태 인문의 숲은 그 미덕이 실현된 사례다. 4년 전 누군가 심은 씨앗이 오늘 꽃을 피웠다.


◇ 시가 흐르는 하천


이날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시 낭송이었다.


포천시장이 정호승의 '봄길'을 읊고, 시의회 의장이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고, 면장이 도종환의 '담쟁이'를 전했다. 공무원들이 시를 읽는 자리. 행정 보고서 대신 시집을 펼치는 순간.


이것이 단순한 행사 연출이었다면 금방 잊혔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고른 시가 각자의 자리와 맞닿아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임종훈 의장이 '서시'를 읽으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의정을 펼치겠다"고 말할 때, 그것은 시의 언어를 빌린 다짐이었다. 백영현 시장이 '봄길'을 통해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스스로 길이 되는 주민들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시가 현실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인문 도시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장이 시를 읽고, 면장이 시를 외우고, 주민이 나무를 심는 일상의 축적으로 만들어진다. 갈월천 명명식은 그 축적의 한 장면이었다.


◇ 담쟁이의 방식


신미숙 면장이 고른 시, 도종환의 '담쟁이'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가마골은 오랫동안 벽이었다. 접근하기 어렵고, 개발하기 어렵고, 알려지기 어려운 곳. 그러나 담쟁이처럼 조금씩, 말없이, 주민들이 그 벽을 올랐다. 무궁화를 키우고, 공동체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담쟁이가 벽을 오르는 방식은 혼자가 아니다. 시의 다음 구절이 그것을 말한다. "담쟁이는 / 담쟁이 잎 하나하나가 / 서로 손을 잡고 / 그 벽을 오른다." 가마골 공동체가 갈월천을 만들어온 방식이 그랬다. 주민이 나무를 심고, 행정이 예산을 대고, 시인의 말이 그 위를 흘렀다.


◇ 남겨진 과제, 솔직한 목소리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가장 기억해야 할 말은 축사가 아니었다.


황의출 예총 회장의 쓴소리였다. "이름만 붙인 숲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닿을 수 있는 숲이 되어야 한다." 차량 교행이 불가능한 좁은 도로, 접근성의 한계. 아름다운 공간이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지만, 그 공간에 닿기 위한 길이 여전히 험하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완성을 향한 요구다. 생태 인문의 숲이 진정한 시민의 공간이 되려면, 시민이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 백 시장과 임 의장이 인프라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화답한 것은 그 요구를 들었다는 신호다. 그 약속이 실행으로 이어지는지가 이 숲의 다음 장을 결정할 것이다.


◇ 무궁화가 피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갈월천에 무궁화가 필 것이다.


김대수·김화숙 부부가 80년 삶의 터전을 떠나며 남긴 백 그루의 나무가 꽃을 피울 것이다. 그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이 갈월천을 걸으며 시 한 줄을 읽을 것이다.


그것이 인문 도시의 풍경이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와 시 한 줄이 만드는 일상의 풍경.


갈월천에 이름이 붙었다. 이제 그 이름에 걸맞은 길을 만들 차례다. 숲으로 가는 길, 그리고 그 숲이 시민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정호승의 시처럼, 갈월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무궁화 백 그루가 심은 것은 나무가 아니라 그 시작이었다.


ⓒ 메트로포천 & metropc.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90세 노모가 입혀준 붉은 점퍼 소통과 효심으로 그리는 포천의 미래
  • 가평 ‘상동터널’ 건립 사업, 행안부 중투심 통과. ‘사업 추진 가속도’
  • 국민의힘, 포천 시의원 선거 ‘위기론’ 확산... 승부수는 ‘필승 전략공천’
  • 임종훈 포천시의장, '험로' 무소속 시의원 3선 도전...
  • 가을 정취 물들이는 허브아일랜드 관광객을 위한 음악회 성황
  • 경민고 총동문회 골프팀 SBS골프 고교골프최강전 4강 진출 쾌거 10월 13일 준결승 격돌
  • 독수리유격대 전몰대원 추모행사 노곡리 전적비서 엄수
  • 옥정 포천 광역철도 대진대역 공사 현장 무법천지
  • (단독)미2사단 한미연합사단 포천서 2026 추석 리셉션 개최 굳건한 한미동맹 다져
  • 도마치계곡 익수 사고 현장서 빛난 포천시 시민안전과의 대응… 군부대 비협조는 뼈아픈 오점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기자수첩] 무궁화 백 그루가 심은 것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