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선정이 던지는 질문 — 70년 희생의 땅, 이제 무엇을 심을 것인가

지도 위에서 포천은 늘 경계선 가까이에 있었다.
수도권이라 불리지만 수도권의 혜택은 멀었고, 접경지역이라는 이름은 개발 제한의 다른 말이었다. 군사기지보호법, 수도권정비계획법, 자연보전권역 규제. 겹겹이 쌓인 제약 속에서 포천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조용히 희생해왔다.
그 땅이 이제 다른 이름으로 불릴 가능성이 열렸다.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 선정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먼저 냉정하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30일 경기도의 발표는 포천이 평화경제특구로 지정됐다는 것이 아니다. 후보지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다음 달부터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이 시작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통일부에 특구 지정을 신청하고,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후보지 선정 자체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경기도 내 접경지역 8개 시군 중 7개가 공모에 참가했고, 그중 3곳만 선정됐다. 포천이 그 3곳 안에 들었다는 것은 전문가들이 포천의 특구 지정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박현석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이 "전문가들이 경기도의 특구 지정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린 평가"라고 밝힌 것은 그 선정이 정치적 배려가 아니라 실질적 가능성에 근거했음을 말한다. 포천이 가진 무언가가 전문가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 포천이 가진 것
포천이 후보지로 선정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포천이 가진 조건을 봐야 한다.
첫째, 광활한 가용 부지다. 수십 년간 개발이 제한됐던 땅들이 미군 기지 반환과 함께 열리고 있다. 캠프 호비를 비롯한 반환 예정 공여지들은 백지 상태의 도화지다. 특구 조성에 필요한 대규모 부지를 즉각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이 전국에 얼마나 되겠는가.
둘째, 접경지역의 상징성이다. 평화경제특구는 단순한 경제특구가 아니다. 남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경제협력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포천은 지리적으로 그 상징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셋째, 역설적이게도 규제의 역사다.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됐다는 것은 자연환경이 보존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관광·문화형 특구를 조성할 수 있는 생태적 자산이 살아있다. 갈월천 생태 인문의 숲 같은 자원들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 특구가 가져올 변화
평화경제특구로 지정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법인세와 지방세 감면, 부담금 감면, 자금 지원. 기업 유치의 문턱이 낮아진다. 산단형, 관광·문화형, 복합형 중 포천의 특성에 맞는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세제 혜택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규제의 프레임이 바뀌는 것이다. 지금까지 포천을 규정해온 언어는 '제한', '보호', '규제'였다. 평화경제특구라는 이름은 그 언어를 '기회', '개발', '투자'로 바꾼다. 같은 땅이 다른 이름으로 불릴 때, 그 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기업이 달라진 시선으로 포천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투자자들이 달라진 지도로 포천을 찾을 것이다. 그 변화가 쌓이면 포천의 경제 지형이 바뀐다.
◇ 70년 희생에 대한 국가의 응답
이 지점에서 더 큰 맥락을 봐야 한다.
포천을 비롯한 경기북부 접경지역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70년을 희생했다. 군사기지가 들어서고, 개발이 제한되고, 인구가 빠져나갔다. 그 희생의 대가로 이 지역은 수도권의 발전에서 소외됐다.
평화경제특구는 그 희생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 될 수 있다. 안보를 위해 개발을 포기했던 땅에, 이제 국가가 특별한 지원과 혜택으로 화답하는 것. 그것이 이 제도의 본질적 의미다.
물론 제도가 의미를 자동으로 실현하지는 않는다. 특구 지정이 곧 지역 발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새만금이 그랬고, 수많은 경제특구들이 그랬다. 이름만 붙이고 실질이 따르지 않으면 또 하나의 빈 약속이 된다.
◇ 무엇을 심을 것인가
후보지 선정 이후가 더 중요하다.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에서 포천의 특화 전략이 결정된다. 산단형으로 갈 것인가, 관광·문화형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복합형으로 갈 것인가. 그 선택이 포천의 미래 20년을 결정한다.
몇 가지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포천이 가진 자연환경과 역사 자원을 활용한 관광·문화형은 포천의 정체성과 가장 잘 맞는다. 한탄강 지질공원, 산정호수, 갈월천 생태 인문의 숲. 이 자산들을 연결하는 생태관광 벨트는 포천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반환 군 부지를 활용한 첨단산업형도 가능성이 있다. 대규모 부지와 접근 가능한 수도권 인재 풀의 결합. 앞서 논의됐던 AI 데이터센터 유치 같은 구상이 특구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더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어떤 방향을 선택하든 핵심은 하나다. 포천이 가진 것을 살리는 전략이어야 한다. 다른 지역을 모방하는 특구가 아니라, 포천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구여야 한다.
◇ 연천·파주와의 협력
포천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번에 함께 선정된 연천과 파주. 세 지역이 각자도생하는 것보다 협력하는 것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연천의 역사 자원, 파주의 출판·문화 인프라, 포천의 생태·자연 자원이 연결될 때 경기북부 전체가 하나의 평화경제 벨트가 된다.
경기도가 "전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평화경제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세 지역의 협력이 그 모델의 핵심이 될 수 있다.
◇ 희망과 경계 사이에서
포천 시민들은 이런 소식에 익숙하다.
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기대가 부풀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패턴. 그 반복이 만든 피로감이 있다. 이번 후보지 선정 소식에도 그 피로감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 피로감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피로감이 무관심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개발계획 수립 과정에 포천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어떤 특구를 원하는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그 논의에 시민이 참여할 때 특구는 행정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가 된다.
70년 동안 포천은 대한민국을 위해 무언가를 지켰다. 이제 대한민국이 포천을 위해 무언가를 심을 차례다. 평화경제특구라는 씨앗이 포천의 땅에서 어떤 나무로 자랄지는, 앞으로 우리가 그 씨앗을 어떻게 돌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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