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무가 생겨야 가는 곳이 있다. 주민센터가 그랬다. 번호표를 뽑고, 창구 앞에 앉고, 서류를 받아 나온다. 그 동선이 전부였다. 머무는 곳이 아니라 통과하는 곳. 행정의 공간이지 사람의 공간이 아니었다.
의정부시 신곡1동주민센터의 마주쉼터는 그 공식을 조용히 깨고 있다. 해바라기가 피어 있고, 그림이 걸려 있고, 아이들이 색칠을 한다. 용무가 없어도 잠시 앉아 있고 싶은 공간. 그 변화가 작아 보이지만 실은 크다.
◆이름이 먼저 바뀌었다.
마주쉼터. 이 이름을 천천히 읽어보면 설계 의도가 보인다. 마주 보는 것, 쉬는 것, 머무는 것. 세 가지가 하나의 이름 안에 담겼다. 행정의 언어였다면 '주민공유공간 제1호' 같은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주쉼터는 다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장면을 이름으로 만들었다.
이름이 공간의 성격을 결정한다. 회의실이라고 부르면 회의를 하러 가는 곳이 된다. 쉼터라고 부르면 쉬러 가는 곳이 된다. 신곡1동이 주민회의실의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민 의견 수렴과 투표로 새 이름을 정한다는 계획. 이름을 짓는 과정 자체가 이미 참여다.
공간은 이름을 닮아간다. 마주쉼터라는 이름이 그 공간을 마주 보고 쉬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해바라기 한 송이의 힘.
해바라기 장식 트리와 꽃화분. 거창한 리모델링이 아니다. 그러나 주민의 반응은 달랐다. "분위기가 훨씬 밝아졌다. 잠시 쉬어가며 꽃을 볼 수 있어 기분도 좋아진다."
공간의 온도는 시설이 아니라 디테일이 결정한다. 아무리 넓고 깨끗한 공간도 차갑게 느껴질 수 있고, 작고 소박한 공간도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꽃 한 송이, 조명 하나, 의자의 배치다.
해바라기를 희망과 긍정의 상징으로 선택한 것도 의미 있다. 주민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항상 좋은 일로 오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서류를 처리하러 오기도 하고,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러 오기도 한다. 그 발걸음이 해바라기 앞에서 잠시 멈추고, 사진을 찍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포토존이 됐다는 것도 흥미롭다. 주민센터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 장면 자체가 공간이 바뀌었다는 증거다.
◆미술관은 멀지 않아도 된다.
1~2월, 의정부 미술협회 소속 예술가들의 아크릴 회화 작품이 마주쉼터에 걸렸다. 3~4월에는 미술 동호회 회원들의 작품이 이어진다. 앞으로 서예 작품, 중랑천 철새 사진, 어린이 글짓기 작품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주민의 말이 이 전시의 의미를 정확히 짚는다. "멀리 있는 미술관이 아니라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미술작품을 접할 수 있고, 바쁜 일상 속에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예술을 바라보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화 접근성의 문제는 늘 거리와 시간의 문제다. 미술관이 멀면 가지 않는다. 바쁘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서류를 떼러 갔다가 우연히 그림 앞에 서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때로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지역 예술가에게도 마주쉼터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갤러리를 빌리지 않아도, 홍보를 하지 않아도 매일 주민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작품을 본다. 예술가와 주민이 중간 어딘가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구조다.
◆아이들이 의정부를 배우는 방법.
색칠놀이 공간이 생겼다. 의돌이·랑이, 능소화·백로·버드나무, 의정부 8경. 아이들이 색을 칠하면서 자신이 사는 도시의 상징들을 만난다.
교과서로 배우는 것과 손으로 색칠하며 배우는 것은 다르다. 손이 기억하는 것이 더 오래간다. 능소화를 주황색으로 칠한 아이는 길에서 능소화를 보면 알아볼 것이다. 백로를 하얗게 칠한 아이는 중랑천에서 백로를 만나면 반가울 것이다. 그 작은 연결이 지역에 대한 애착을 만든다.
청소년을 위한 보드게임 확충도 같은 맥락이다. 주민센터가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찾는 공간이 된다면, 그것은 행정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공동체의 씨앗이다.
◆행정이 사람을 닮아가는 방식.
마주쉼터의 변화들을 나열하면 소박하다. 꽃화분, 그림 전시, 색칠 공간, 보드게임, 가구 재배치. 예산이 많이 든 것도 아니고, 시설이 크게 바뀐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소박한 변화들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행정의 공간을 사람의 공간으로. 통과하는 곳을 머무는 곳으로. 용무가 있어야 가는 곳을 그냥 들러도 되는 곳으로.
그 방향이 맞다. 주민센터가 동네의 거실이 될 수 있다면, 그곳에서 이웃을 만나고 예술을 보고 아이들이 놀 수 있다면, 행정과 시민의 거리가 조금 좁아진다. 거리가 좁아지면 신뢰가 생긴다.
마주쉼터.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가는 공간. 그 이름이 현실이 되고 있다. 해바라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추고, 아이들이 색칠을 하는 동안 어른들이 잠깐 숨을 고른다.
주민센터에 머문다는 것. 그 작은 변화가 동네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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