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은 역사를 담는다. 의정부의 미군 반환공여지는 오랫동안 철조망 안에 있었다. 그 땅이 무엇이 될 것인가는 의정부의 미래를 결정하는 질문이었다. 아파트를 지을 수도 있었다. 공원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의정부시가 선택한 답은 경제자유구역이다. 그리고 그 안에 바이오 산업을 심겠다고 한다.
4월 3일, 의정부시청 회룡홀에서 세 기관이 손을 잡았다. 의정부시,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 지자체와 병원과 대학이 하나의 협약서에 서명했다. 지·학·병 협력체계. 이 세 글자가 의정부 바이오 생태계의 설계도다.
◆왜 바이오인가.
의정부가 바이오 산업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진다.
첫째, 의정부성모병원이 있다. 바이오 산업에서 병원은 단순한 의료 기관이 아니다. 임상 데이터가 생산되는 곳이고, 신약과 의료기기가 검증되는 곳이다.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들이 대형 병원 주변에 형성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스턴의 바이오 허브가 하버드 의대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옆에 있는 것처럼.
둘째,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있다. 연구에서 사업화로 이어지는 다리가 필요하다.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물이 기업으로 연결되고, 기업이 제품을 만들고, 제품이 시장에 나가는 과정. 산학협력단이 그 과정을 촉진한다.
셋째, 미군 반환공여지라는 부지가 있다. 도심 인근에 대규모 개발 가능 부지가 생기는 것은 드문 기회다. 그 땅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면 외국인 투자 유치와 규제 완화라는 추가적인 이점이 생긴다.
세 조건이 동시에 갖춰진 도시가 많지 않다. 의정부가 바이오를 선택한 것은 그 조건들을 읽은 결과다.
◆지·학·병이 만드는 삼각형.
지자체, 대학, 병원. 이 세 주체가 협력하는 구조는 바이오 산업 생태계의 기본 단위다.
지자체는 땅과 행정을 제공한다. 부지를 조성하고, 인허가를 처리하고, 기업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를 만든다. 혼자서는 산업을 만들 수 없지만, 산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다.
대학은 연구와 인재를 제공한다.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연구·사업화 기능을 담당한다. 실험실에서 나온 기술이 특허가 되고, 특허가 창업으로 이어지고, 창업 기업이 클러스터 안에 자리를 잡는다. 인재 양성도 대학의 몫이다. 바이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원과 전문가를 공급하는 것.
병원은 임상과 검증을 제공한다. 의정부성모병원의 의료·임상 역량이 여기서 빛난다. 신약 후보 물질이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고, 의료기기가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병원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 의정부는 매력적인 입지가 된다.
삼각형은 안정적이다. 세 꼭짓점이 서로를 지지할 때 구조가 흔들리지 않는다. 지·학·병 협력체계가 삼각형을 이루는 이유다.
◆대웅개발과의 MOU가 말하는 것.
협약 직전 의정부시는 ㈜대웅개발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바이오 기업과의 협력 관계가 이미 시작됐다는 신호다.
기업 유치는 닭과 달걀의 문제다. 인프라가 없으면 기업이 오지 않고, 기업이 없으면 인프라를 만들기 어렵다. 이 순환을 깨는 방법은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의정부시가 협약을 맺고, 생태계를 설계하고, 선도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그 첫 움직임이다.
선도 기업이 오면 다음 기업이 따라온다. 클러스터는 그렇게 형성된다. 처음 몇 개의 기업이 자리를 잡으면 그것이 신호가 되어 더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갖는다. 의정부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그 신호다.
◆경제자유구역이라는 도구.
경제자유구역은 강력한 도구다. 외국인 투자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규제 완화, 행정 지원.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특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바이오 산업은 글로벌 산업이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해외 기업과의 협력, 글로벌 임상시험, 해외 시장 진출. 이 모든 것이 국제적 연결을 필요로 한다. 경제자유구역은 그 연결의 문을 여는 열쇠다.
의정부가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추진하면서 바이오를 핵심 전략산업으로 설정한 것은 그 도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디자인, 미디어 콘텐츠, 인공지능, 바이오 메디컬. 네 가지 전략산업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도 설계됐다.
◆자족도시로 가는 길.
의정부는 오랫동안 서울의 위성도시였다. 서울에서 일하고 의정부에서 자는 도시. 그 구조가 의정부의 성장을 제약했다. 일자리가 없으면 인구가 유출되고, 인구가 유출되면 상권이 죽고, 상권이 죽으면 도시가 쇠퇴한다.
자족도시는 그 구조를 깨는 것이다. 의정부 안에서 일하고, 의정부 안에서 소비하고, 의정부 안에서 삶이 완결되는 도시. 바이오 클러스터가 그 자족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연구원이 오고, 기업이 오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업이 따라오고, 인구가 늘어난다.
미군 기지가 있던 자리에 바이오 기업이 들어서는 날. 그 날이 의정부가 위성도시에서 자족도시로 전환하는 날이 될 수 있다.
협약서 한 장이 도시의 미래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향을 정한다. 의정부시, 의정부성모병원,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 방향의 끝에 글로벌 바이오 거점 의정부가 있다.
철조망이 걷힌 땅에 새로운 것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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