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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토수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4.0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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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있었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회암사 지붕 끝에 자리 잡은 토수는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서 절터를 내려다봤다. 긴 코, 짧은 다리, 기묘한 형상. 무엇을 지키는지,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토수가 이제 말을 건다. 이름은 토담이. 무학대사가 건넨 망토를 두르고, 수호용에서 수다쟁이 용으로 변신했다. 4월 17일 왕실축제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다. 오랜 침묵이 끝났다.


◆캐릭터가 역사를 여는 방법.


회암사지는 어렵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왕실 사찰,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인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역사적 가치는 크지만 일반 관람객이 그 가치를 바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발굴된 터와 유물들이 말하는 것을 읽으려면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캐릭터는 그 진입 장벽을 낮춘다. 토담이를 따라가면 회암사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이는 귀여운 캐릭터에 끌려 역사에 다가가고, 어른은 캐릭터 뒤에 담긴 이야기를 찾게 된다. 수다쟁이 용이라는 설정이 그래서 영리하다. 이야기를 전하는 존재. 토담이의 역할이 그 한 문장에 담겼다.


기존 캐릭터 회암이, 율정이에 이은 세 번째 캐릭터다. 캐릭터 세계관이 쌓이고 있다. 각각의 캐릭터가 회암사지의 다른 면을 대표하고, 함께 모이면 더 풍부한 이야기가 된다.


◆토수라는 선택.


토담이의 모티브가 토수라는 것이 흥미롭다. 토수는 화려하지 않다. 주인공이 아니라 지붕 끝에 조용히 있는 존재다. 그러나 그 존재가 오랫동안 회암사터를 지켜왔다.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서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다. 더 쉬운 선택은 무학대사나 이성계 같은 역사적 인물을 캐릭터화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주시는 지붕 위의 작은 장식물을 골랐다. 그 선택이 토담이를 특별하게 만든다.


긴 코와 짧은 다리. 토수의 형태적 특징을 살렸다는 것은 캐릭터가 실제 유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귀엽게 만들되 원형을 잃지 않는 것. 그 균형이 캐릭터의 신뢰성을 만든다. 토담이를 보고 실제 토수를 찾아보고 싶어지는 것. 그것이 캐릭터가 역사 교육으로 연결되는 경로다.


◆왕실축제의 첫선.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제9회 양주 회암사지 왕실축제. 토담이의 데뷔 무대다.


진행요원들이 토담이 캐릭터가 새겨진 단체 티셔츠를 입는다. 축제 현장 전체가 토담이의 공간이 된다. 굿즈 상품도 판매된다. 관람객이 토담이를 만나고, 사진을 찍고, 굿즈를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회암사지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굿즈의 힘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토담이 인형이나 에코백을 산 사람은 그것을 쓸 때마다 회암사지를 떠올린다. 그 반복이 브랜드를 만든다. 지역 캐릭터 굿즈가 지역 홍보의 가장 효율적인 수단 중 하나인 이유다.


◆유네스코 무대까지.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토담이가 국제 무대에 선다.


회암사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연계한 홍보. 이 전략이 영리하다. 세계유산 등재는 학술적 가치만으로 되지 않는다.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그 관심을 끄는 데 캐릭터가 역할을 할 수 있다.


딱딱한 보고서와 학술 자료만으로는 세계유산위원회 참가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그러나 회암사지의 이야기를 담은 캐릭터와 굿즈는 다르다. 손에 쥘 수 있고, 기억에 남는다. 토담이가 회암사지를 세계에 소개하는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별산과 토담이의 세계.


양주시 대표 캐릭터 별산과 연계한 홍보 콘텐츠 확대. 캐릭터들이 함께 움직이는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별산이 양주시 전체를 대표한다면, 토담이는 회암사지를 대표한다. 각자의 영역이 있으면서 함께 양주를 이야기한다. 이 구조가 콘텐츠의 가능성을 넓힌다. 별산과 토담이가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 회암이·율정이·토담이가 함께하는 회암사지 세계관. 캐릭터가 늘어날수록 이야기가 풍부해진다.


수백 년 동안 지붕 위에서 침묵하던 토수가 이제 말을 건다. 긴 코를 씰룩이며, 무학대사의 망토를 두르고, 수다쟁이답게 회암사지의 이야기를 쏟아낼 것이다.


토담이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러 왕실축제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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