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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경기도를 다섯 조각으로 나눈다는 것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4.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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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역별 공약은 시작일 뿐이다…유권자가 봐야 할 것은 이름이 아니라 실행의 구조다

김동연 의정부공약.jpg


공약은 정치의 언어다.  

그러나 모든 공약이 같은 무게를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공약은 방향을 제시하고, 어떤 공약은 기대를 부풀리며, 어떤 공약은 실제 행정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다. 선거철 유권자의 일은 그 차이를 읽어내는 것이다. 무엇이 구상이고 무엇이 계획인지, 무엇이 약속이고 무엇이 희망사항인지를 가려내는 일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가 최근 의정부에서 5대 권역별 핵심 공약을 발표했다. 경기도를 동북부, 서북부, 남부권, 서남권, 동남권으로 나누고, 각 권역에 맞는 산업 전략과 교통·주거 비전을 제시했다. 언뜻 보면 매우 합리적인 접근이다. 경기도는 너무 크고,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수원과 포천, 판교와 연천을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지역마다 산업 구조도 다르고 생활 여건도 다르며, 성장의 조건과 제약 역시 판이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권역별 맞춤 전략이 필요하다는 진단은 타당하다.


실제로 경기도는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복합적인 공간이다.  

반도체 산업이 밀집한 남부와 군사 접경의 규제를 짊어진 북부는 같은 행정구역 안에 있지만 전혀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의 정책으로 모든 지역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권역별 전략은 행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설득력을 갖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선을 긋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그 선 안에서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동북부 공약이었다. 의정부에서 발표한 만큼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경기 동북부를 평화방산·신산업 허브로 육성하고, 공업지역 물량 재배치를 통해 AI 방산과 첨단산업 일자리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동북부 공공의료원 설립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요청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 방향에는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오랫동안 군사 규제와 개발 제한의 부담을 떠안아 온 경기 동북부에 대해 이제는 ‘특별한 희생에 대한 특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 주민들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북부는 늘 잠재력보다 제약으로 먼저 설명돼 왔고, 그 누적된 박탈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방산과 AI를 결합하겠다는 구상도 흥미롭다.  

동북부는 군 관련 시설과 안보 산업의 기반이 상대적으로 익숙한 지역이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미래형 방산산업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은 방향성 자체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산업 전략은 결국 지역의 기존 조건 위에 미래 요소를 어떻게 얹느냐의 문제인데, 방산과 AI의 결합은 그런 점에서 동북부의 특수성을 반영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약은 방향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공업지역 물량 재배치라는 표현부터 그렇다. 어디의 물량을 어디로 옮기는 것인지, 그 재배치 과정에서 이해관계 충돌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실제 유치 가능한 기업군은 무엇인지가 빠져 있다. 공약의 문장은 매력적이지만, 실행의 구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동북부 공공의료원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역시 마찬가지다. 요청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은 중앙정부의 몫이다. 이 경우 경기도지사가 약속할 수 있는 범위는 ‘추진’이지 ‘확정’이 아니다. 유권자는 바로 이 경계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경기투자공사 본사를 경기 북부에 설립하겠다는 구상도 상징성이 크다.  

경기도의 주요 기관과 행정 중심이 남부에 집중돼 있다는 인식은 북부 주민들의 소외감과 맞물려 있다. 그런 점에서 북부에 투자 유치의 상징적 거점을 두겠다는 발상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상징과 실익은 다르다. 기관이 북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투자 흐름이 자동으로 북부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관의 주소지가 아니라 투자 배분의 원칙이다. 북부에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산업에 자원을 집중할 것인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다.


철도·도로 지하화 및 지상공간 복합개발을 묶어 ‘경천동지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것도 마찬가지다.  

이름은 강렬하다. 실제로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고 지상 공간을 복합 개발하는 방식은 도시 재편의 수단으로 매우 매력적이다. 단절된 도시 공간을 회복하고, 교통과 재생을 함께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많은 비용과 가장 복잡한 협의를 요구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철도 지하화는 수조 원대 예산과 중앙정부 협력이 필수적인 사업이다. 이름이 클수록 유권자는 더 냉정해져야 한다. 어느 구간을, 어떤 재원으로, 어떤 일정으로 추진할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면 공약은 비전의 언어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다섯 권역에 각각 다른 전략을 제시한 점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동북부는 방산·신산업, 서북부는 K컬처·평화경제, 남부는 반도체·AI, 서남권은 피지컬AI·제조업, 동남권은 반도체 소재·팔당상생. 각각의 권역을 특성에 맞게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이해되지만, 동시에 모든 곳에 다 하겠다는 인상도 남긴다. 경기도 예산과 행정 역량은 무한하지 않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다섯 권역 모두에 충분한 투자와 정책적 에너지를 동시에 투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우선하고 무엇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인가가 설명돼야 한다.


권역별 전략이 실제로 힘을 가지려면 각 권역이 따로 노는 구상이 아니라 하나의 경기도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남부의 반도체 클러스터와 동남권의 소재 산업이 어떤 공급망으로 맞물리는지, 동북부의 방산 AI가 도 전체 산업 구조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서북부의 평화경제와 서남권의 제조혁신이 어떤 방식으로 연계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권역별 전략은 분절이 아니라 연계여야 한다. 지도 위 구획은 편의상 나눌 수 있어도, 실제 경제와 교통과 노동은 그렇게 칼로 자르듯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현직 도지사로서 지난 4년의 경험과 성과를 강조했다.  

분명 강점이다. 무엇이 가능한지, 어떤 사업이 중앙정부 협의가 필요한지, 도정 운영에서 어디가 병목인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초보 행정가보다 현실적인 공약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직 프리미엄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무거운 질문도 가능하다. 지난 4년 동안 동북부 소외가 계속 문제였다면, 왜 아직도 그 문제는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는가. 이번 공약이 이전과 다른 실행력을 가질 수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현직의 강점은 동시에 현직의 책임이기도 하다.


선거에서 유권자가 해야 할 일은 환호가 아니라 질문이다.  

각 공약의 재원은 어디서 오는가. 경기도 예산만으로 가능한 것과 중앙정부 협조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임기 안에 완료할 수 있는 사업과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사업은 무엇인가.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새 공약처럼 포장한 것은 없는가. 이 질문들이 오갈 때 공약은 비로소 정치의 수사에서 행정의 약속으로 바뀐다.


경기도를 다섯 조각으로 나누는 것은 출발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을 어떻게 그었느냐가 아니라, 그 선 안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느냐다. 권역 이름은 지도를 설명할 수 있지만, 정책의 성패는 결국 실행이 결정한다.


공약은 지도다.  

그러나 지도가 길을 대신 걸어주지는 않는다.  

길을 만드는 것은 결국 정책의 디테일이고, 그것을 끝까지 묻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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