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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숲이 기억을 붙잡는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4.0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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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 예방의 새로운 길, 포천은 자연에서 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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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소하다. 방금 들은 말을 놓치고, 약속한 시간을 헷갈리고, 익숙한 길에서 잠시 멈칫한다. 너무 천천히 진행되기에 본인도, 가족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그러나 치매는 바로 그렇게, 일상의 작은 틈에서 시작된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치매는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이미 진행된 치매를 완전히 되돌리는 일은 지금의 의학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적절히 개입하면 진행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개입의 방식이 약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기억을 지키는 일은 때로 병원 밖에서, 더 느리고 더 따뜻한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포천시 치매안심센터가 국립수목원과 손을 잡고 정원치유 프로그램 ‘기억이음’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야외 체험이 아니다. 자연을 활용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고, 정서적 안정을 도우며, 치매 예방의 가능성을 넓혀보려는 시도다. 말하자면 숲이 기억을 붙잡는 일에 함께 나서는 셈이다.


숲은 오래전부터 사람의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숲에 들어서면 숨이 깊어지고, 어깨가 내려가고, 마음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경험을 누구나 해본다. 이것이 단순한 기분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꾸준히 확인돼 왔다.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며, 면역 기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압과 심박수의 변화, 긴장의 완화, 정서적 안정을 통해 몸은 자연스럽게 치유의 상태에 가까워진다.


이 변화는 기억과도 무관하지 않다.  

만성 스트레스는 뇌 기능, 특히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에 부담을 준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기억력과 인지 기능을 지키는 환경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 여기에 흙을 만지고, 식물을 관찰하고, 정원을 가꾸고, 꽃과 나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자연 속에서 명상하는 활동은 오감을 두루 자극한다. 손의 감각, 눈의 색채, 코끝의 향기, 귀를 스치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까지 한꺼번에 작동하면서 뇌는 보다 풍부한 자극을 받게 된다. 치매 예방에서 중요한 것은 머리를 억지로 쓰게 하는 훈련만이 아니라, 삶 전체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포천의 이번 프로그램은 장소 자체가 가진 힘이 크다.  

국립수목원은 포천이 지닌 가장 특별한 자연 자원 가운데 하나다. 광릉숲의 깊은 시간과 생태적 가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상징성은 다른 어떤 실내 프로그램으로도 대체하기 어렵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치매 예방 사업을 운영하지만, 포천처럼 국립수목원이라는 자원을 직접 연결해 활용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실내 인지 훈련이나 음악·미술 치료가 효과적인 방식이라면, 정원치유는 여기에 ‘환경의 치유력’까지 더하는 방식이다.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치료의 일부가 된다.


‘기억이음’이라는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치매는 기억이 끊어지는 병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흐려지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실이 느슨해지며, 결국 자신과 세계를 이어주던 감각마저 약해진다. 그런 점에서 기억을 잇는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흐려지는 기억을 붙잡고, 삶의 연결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해보려는 노력의 이름이다.


격주 월요일, 5월부터 9월까지 모두 10회에 걸쳐 운영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것은 하루 반짝하는 체험 행사가 아니다. 반복적으로 같은 공간을 찾고, 같은 사람들과 만나고, 같은 리듬 속에서 자연과 호흡하는 과정이다. 치매 예방은 단발성 이벤트로 이뤄지지 않는다. 꾸준한 자극과 반복되는 경험, 그리고 관계의 형성이 함께 가야 한다. 자연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걷고, 함께 만들고, 함께 느낀 기억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인지의 자산이 된다.


포천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더 절실한 이유는 지역의 인구 구조와도 연결된다.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농촌형 도시에서 치매는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의 과제가 된다. 치매 환자가 늘어나면 가족의 부담은 커지고, 돌봄 비용과 정서적 피로도 함께 증가한다. 돌보는 가족의 삶까지 흔들리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다. 결국 치매는 환자 한 사람의 병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지역 공동체가 함께 떠안아야 할 사회적 부담이다.


그렇기에 예방은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다.  

이미 증상이 악화된 뒤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과 에너지보다, 초기 단계에서 진행을 늦추고 일상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적다. 프로그램 대상이 15~20명 규모라고 해서 그 의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 그 숫자만큼의 어르신이 조금 더 오래 익숙한 일상을 지키고, 그 가족이 돌봄의 무게를 조금 더 늦게 짊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예방 정책은 언제나 숫자보다 여운이 크다.


포천시가 이번 사업을 ‘체험형 치유 행정’으로 확장하려는 방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행정이 건강을 지원하는 방식은 더 이상 검사와 진단, 치료 연계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연 속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며, 지역의 자원을 복지의 자산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립수목원이라는 포천만의 자원을 생애주기별 산림복지 서비스로 확장하겠다는 구상 역시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어르신만이 아니라 아이들, 청년, 중장년층까지 숲을 통해 건강을 돌보는 도시. 그것은 포천이 지향할 수 있는 매우 포천다운 복지 모델이 될 수 있다.


물론 숲이 치매를 치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숲이 기억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줄 수 있다면, 그 시간은 결코 작지 않다. 자신이 누구인지, 사랑하는 가족이 누구인지, 지금 이 계절이 어떤 빛과 냄새를 품고 있는지 조금 더 오래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은 분명 달라진다.


5월의 국립수목원에서 어르신들이 흙을 만지고, 꽃을 보고, 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을 것이다.  

피톤치드가 스민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가고, 새소리가 귀를 채우고, 햇살이 피부 위에 내려앉는다. 그 순간은 단지 체험이 아니라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쩌면 흐려지는 시간을 조금 더 천천히 흐르게 할지 모른다.


숲이 기억을 붙잡는다.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은 충분히 따뜻하고, 또 충분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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