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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수막 없는 선거, 가능한가 ...선거 문화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4.06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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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숙한 선거 풍경을 없애자는 제안,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선거현수막.jpg


선거철이 되면 도시는 먼저 풍경부터 달라진다.  

전봇대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우편함에는 공보물이 쌓이며, 유세차는 하루 종일 같은 음악과 구호를 반복한다. 후보의 이름과 얼굴이 거리 곳곳을 점령한다. 우리는 오래도록 그것을 선거의 당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여 왔다. 너무 익숙해서 문제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진 정당이 있다.  

기본소득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현수막, 종이 공보물, 유세차 없는 선거 문화를 제안했다. 작은 정당의 문제 제기라고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제안은 선거가 왜 늘 같은 방식이어야 하는지, 민주주의는 왜 꼭 그렇게 시끄럽고 낭비적인 형태여야 하는지 묻고 있다.


질문은 단순하다.  

현수막 없는 선거가 가능한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것이 더 나은 선거인가.


■ 선거가 끝나면 남는 것은 쓰레기다


현수막은 선거 기간 내내 가장 눈에 띄는 상징물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가장 먼저 폐기물이 된다. 수천 톤의 현수막이 쏟아지고, 처리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가 부담한다. 문제는 양만이 아니다. 상당수 현수막은 재활용이 쉽지 않은 소재로 제작돼 결국 소각으로 처리된다. 정치가 유권자 앞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외치면서도, 정작 선거 과정에서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비용 문제까지 겹친다.  

원자재 가격과 유가 상승은 현수막 제작 단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곧 선거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비용이 커질수록 자금력이 약한 후보와 정당은 더 불리해진다. 결국 현수막은 환경을 해치고, 선거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이중의 문제를 안고 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라면, 그 축제는 왜 이렇게 많은 쓰레기와 비용을 전제로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 현수막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흔들리는가


기본소득당이 상기시킨 1998년의 사례는 의미가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 사회 전체가 긴축과 절제를 요구받던 시기에 실제로 현수막 없는 선거가 시행된 적이 있었다. 그때 민주주의가 멈췄는가. 유권자가 후보를 몰라서 투표하지 못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선거는 치러졌고, 유권자는 선택했다.


오히려 지금은 그때보다 정보 접근 환경이 훨씬 낫다.  

인터넷과 SNS, 유튜브와 각종 뉴스 플랫폼을 통해 유권자는 후보의 공약과 이력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전처럼 거리의 현수막이나 집집마다 들어오는 종이 공보물이 아니면 정보를 접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선거 문법을 반복하고 있다.


현수막이 없으면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약하다.  

문제는 가능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낡은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 그러나 디지털이 곧 평등은 아니다


그렇다고 종이 공보물과 현수막을 단번에 없애고 모든 것을 디지털로 돌리자는 주장에도 신중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다. 스마트폰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온라인 정보 접근이 불편한 시민에게 디지털 공보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정보 접근의 평등이 전제돼야 한다.  

디지털 전환이 또 다른 정보 격차를 만든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새로운 불평등일 수 있다. 따라서 종이 공보물을 완전히 폐지하기보다는, 원하는 사람은 디지털로 받고 필요한 사람은 종이로 받는 선택형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 전환은 급진적 폐지가 아니라 세심한 설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 유세차는 선거 도구인가, 생활 소음인가


유세차 문제는 더 직접적이다.  

시민들이 가장 피로하게 느끼는 선거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유세차의 확성기 소음이다. 반복되는 노래와 구호, 과도한 음량은 정책 전달보다 생활 방해로 기억될 때가 많다. 선거를 알리는 수단이 시민의 일상을 침해하는 순간, 그것은 민주주의의 활력이 아니라 피로가 된다.


물론 여기에도 현실은 있다.  

현수막 제작업체, 유세차 운영업체, 공보물 인쇄업체처럼 선거철을 생계의 중요한 시기로 삼는 업종이 존재한다. 선거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생업을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것이 단계적 축소와 전환 계획이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일과 생계 충격을 완화하는 일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변화는 필요하지만, 변화의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취지가 또 다른 반발을 부를 수 있다.


■ 소수정당의 문제 제기, 어디까지 타당한가


기본소득당은 현수막과 공보물, 유세차 중심의 선거가 거대 정당에 유리하고 소수정당에는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이 지적은 일정 부분 맞다. 선거보전금과 자금력, 조직력에서 앞서는 거대 양당이 오프라인 선거 도구를 더 많이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비용이 오를수록 불리한 쪽은 늘 작은 정당과 신인 후보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도 있다.  

현수막을 없애고 디지털 중심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운동장이 평평해지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광고도 결국 돈이 많이 드는 쪽이 유리하고, 알고리즘은 인지도가 높은 후보를 더 쉽게 띄운다. 즉 소수정당의 불리함은 단지 선거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 제도 전반의 문제다.


그래서 이 논의가 더 진지해지려면, 단순히 현수막을 없애자는 주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선거보전금 구조, 신인 후보 진입장벽, 정당 간 불균형 문제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선거 문화 개혁이 단순한 형식 변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질을 넓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선거는 보여주는 경쟁이 아니라 설명하는 경쟁이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선거를 시각적 점유 경쟁으로 치러왔다.  

누가 더 많은 현수막을 걸었는지, 누가 더 큰 유세차를 돌렸는지, 누가 더 두꺼운 공보물을 보냈는지가 경쟁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유권자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누가 더 나은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더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는지, 누가 지역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다.


현수막 전쟁과 소음 경쟁이 줄어들수록 선거는 오히려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정책 토론과 공개 질의, 디지털 정보 제공, 주민 설명회 같은 방식이 더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선거가 얼굴 알리기보다 내용 경쟁으로 이동해야 민주주의의 수준도 함께 올라간다.


기본소득당의 제안은 완벽하지 않다.  

디지털 격차 문제도 있고, 관련 업계의 생계 문제도 있으며, 소수정당 논리 역시 제도 개혁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방향까지 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불가능하다”는 반사적 거부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묻는 진지한 토론이다.


■ 익숙함을 줄일수록 선거는 더 선명해질 수 있다


현수막이 많다고 민주주의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세차가 시끄럽다고 정책이 잘 전달되는 것도 아니다. 종이 공보물이 두껍다고 유권자의 판단이 더 현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선거의 본질은 홍보물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질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선거 문화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환경을 위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유권자가 더 본질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거리를 뒤덮는 현수막이 줄어들고, 소음을 앞세운 유세가 줄어드는 날, 선거는 오히려 더 조용하고 더 분명해질지 모른다.


현수막 없는 선거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이미 해본 적도 있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기술과 대안을 갖고 있다.  

문제는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바꾸려는 의지가 있느냐다.


선거는 익숙한 방식으로 치른다고 더 민주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형식을 덜어낼 때, 민주주의는 조금 더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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