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장애인 화장실이 세탁실이 된 도시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4.06 16:38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무장애 도시는 조례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도시의 품격이 된다

최수연 양주시의원.jpg


도시는 선언으로 바뀌지 않는다.  

조례를 만들고, 계획을 세우고, 보도자료를 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행정은 종이 위에서 가장 쉽게 완성되지만, 시민의 삶은 언제나 현장에서 판가름 난다. 양주시가 그렇다. 2019년 경기도 내에서도 비교적 선도적으로 「양주시 무장애 도시 조성 조례」를 제정했고, 하늘물근린공원 같은 무장애 공원도 조성했다. 제도도 있었고, 의지도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장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장애인 화장실은 세탁실이 되고, 임산부 휴게시설은 창고가 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시설 관리의 허술함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 도시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 행정이 권리를 이해하는 수준, 그리고 ‘무장애’라는 말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까지 함께 묻는다. 양주시의회 최수연 의원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드러낸 사례들은 그래서 더 뼈아프다. 선언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추상적 비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학교 안 장애인 화장실이 세탁실로 쓰이고 있고, 행정복지센터의 임산부 휴게시설이 창고로 전락해 있다면, 그것은 행정이 할 일을 덜 했다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그 시설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무너져 있다는 뜻이다.


장애인 편의시설의 문제는 늘 두 단계로 나뉜다.  

하나는 설치이고, 다른 하나는 운영이다. 많은 행정이 설치에서 멈춘다. 법과 제도가 요구하니 공간을 만들고, 기준에 맞추어 표지판을 붙이고, 서류상으로는 완료 처리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 공간이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가, 본래 목적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불편과 배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관리되고 있는가. 무장애는 설치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운영으로 증명되는 정책이다.


그런데 세탁실이 된 장애인 화장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누군가는 그 공간을 본래 용도와 무관하게 전용했고, 그 과정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거나, 제기했어도 바로잡지 않았다는 뜻이다. 창고가 된 임산부 휴게시설 역시 마찬가지다. 공간은 있었지만 권리는 사라졌다. 법적 요건은 남았지만 실질적 접근권은 지워졌다. 이런 사례 앞에서는 “시설은 설치돼 있다”는 해명이 오히려 공허하게 들린다. 시민이 실제로 이용할 수 없다면, 그 시설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단 실내 편의시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암저수지 숲속 야영장의 급경사와 계단, 회암사지 전망대의 단차와 높은 경사, 별산대놀이마당의 위험 요소와 미흡한 보행 안전 통로는 공공 문화공간이 여전히 이동 약자를 중심에 두고 설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불편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이 야영장에 갈 수 없고, 전망대에서 경치를 볼 수 없으며, 전통문화 공간을 온전히 향유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문화적 권리와 여가권의 박탈이다.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공공재가 특정 시민에게만 열려 있다면, 그 도시는 아직 평등하지 않다.


더 상징적인 문제는 양주시의회 청사다.  

최 의원의 지적처럼 지하주차장에서 본청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나 전용 통로가 충분하지 않아 휠체어 이용 시민이 의정 활동 공간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면, 이는 단순한 시설 미비를 넘어선다. 민주주의의 공간이 민주주의를 제한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의회는 모든 시민의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시민은 계단과 동선의 장벽 앞에서 처음부터 배제된다면, 그 배제는 물리적 구조를 넘어 정치적 배제로 이어진다. 무장애 도시를 말하는 의회가 스스로 무장애 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뼈아픈 자기모순이다.


이쯤 되면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양주에 무장애 관련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조례는 있다. 필요한 것은 선언의 추가가 아니라 작동의 점검이다. 무엇이 설치돼 있는지보다, 무엇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정기적 관리 체계가 있어야 한다. 시설을 점검하고, 목적 외 사용을 적발하고, 즉각 시정하도록 하고, 그 개선 결과를 시민에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무장애 정책은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쓸 수 있다’고 증명해야 한다.


최 의원이 제시한 대안들은 그래서 현실적이다.  

회암사지에 AR 기반 체험시설을 도입해 물리적 접근이 어려운 한계를 기술적으로 일부 보완하자는 제안, 별산대놀이마당에 커버형 트렌치와 전동 이동 보조수단을 도입하자는 제안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개선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기술이 물리적 장벽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는 공간 자체가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장기적 물리 개선이 시간과 예산을 필요로 한다면, 단기적 보완책으로서 기술과 보조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실용적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해법이 아니니 하지 말자”가 아니라, “당장 가능한 것부터 하자”는 태도다.


최근 문을 연 반다비 체육센터 역시 같은 교훈 위에서 운영돼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통합 공간이라는 상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장애인 우선 이용 원칙, 장애 유형에 맞춘 맞춤형 프로그램, 전문 인력 배치, 실제 접근성과 이용 편의 보장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다비 체육센터도 결국 이름만 포용적일 뿐, 실질은 평범한 공공체육시설에 머무를 수 있다. 시설의 의미는 건물 이름이 아니라 운영 철학에서 결정된다.


다시 2019년을 떠올리게 된다.  

양주시는 그해 무장애 도시를 약속했다. 그 약속이 2026년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7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사이 제도는 남았지만 현장은 충분히 바뀌지 못했다. 조례가 현장을 움직이지 못했다면, 더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강제하는 점검과 평가 체계다. 행정은 선포보다 유지가 어렵고, 설치보다 관리가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행정의 책임이다.


무장애 도시는 장애인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다.  

유모차를 미는 부모, 무거운 짐을 든 시민, 일시적으로 다친 사람, 고령자 모두에게 장벽 없는 도시는 더 안전하고 더 편한 도시다. 결국 무장애는 특정 집단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두의 일상을 위한 기본 설계다. 도시의 수준은 가장 빠르고 건강한 사람에게 얼마나 편한가가 아니라, 가장 불편한 사람도 배제하지 않는가로 측정돼야 한다.


세탁실이 된 장애인 화장실은 작은 사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도시의 민낯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법은 있었지만 감수성은 없었고, 시설은 있었지만 권리는 비어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무장애 도시는 거창한 비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본래 목적대로 쓰이도록 되돌려 놓는 것, 접근할 수 없던 공간을 다시 열어놓는 것, 시민 누구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2019년의 약속이 아직 유효하다면, 이제는 말이 아니라 점검표와 시정명령, 예산과 실행계획으로 답해야 한다.  

무장애 도시는 선언하는 도시가 아니라, 끝까지 관리하는 도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아주 단순하다.  

세탁실이 된 장애인 화장실을, 다시 화장실로 돌려놓는 일이다.


ⓒ 메트로포천 & metropc.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90세 노모가 입혀준 붉은 점퍼 소통과 효심으로 그리는 포천의 미래
  • 가평 ‘상동터널’ 건립 사업, 행안부 중투심 통과. ‘사업 추진 가속도’
  • 국민의힘, 포천 시의원 선거 ‘위기론’ 확산... 승부수는 ‘필승 전략공천’
  • 임종훈 포천시의장, '험로' 무소속 시의원 3선 도전...
  • 가을 정취 물들이는 허브아일랜드 관광객을 위한 음악회 성황
  • 경민고 총동문회 골프팀 SBS골프 고교골프최강전 4강 진출 쾌거 10월 13일 준결승 격돌
  • 독수리유격대 전몰대원 추모행사 노곡리 전적비서 엄수
  • 옥정 포천 광역철도 대진대역 공사 현장 무법천지
  • (단독)미2사단 한미연합사단 포천서 2026 추석 리셉션 개최 굳건한 한미동맹 다져
  • 도마치계곡 익수 사고 현장서 빛난 포천시 시민안전과의 대응… 군부대 비협조는 뼈아픈 오점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기자수첩] 장애인 화장실이 세탁실이 된 도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