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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피해를 본다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4.0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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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 YTC 단전 사태가 드러낸 것…성실 납부자를 함께 벌하는 구조는 공정하지 않다

양주시의회 한상민.jpg


전기요금을 제때 냈다.  

매달 빠짐없이, 밀린 적 없이 성실하게 납부했다. 그런데도 어느 날 단전 통보를 받는다. 이유는 내 체납이 아니라, 같은 건물 안 다른 누군가의 체납 때문이다. 내 잘못은 없는데 내 사업장은 문을 닫을 수 있고, 내 기계는 멈출 수 있으며, 내 생계는 위협받을 수 있다.


양주시의회 한상민 의원이 5분발언에서 제기한 양주 테크노시티 지식산업센터(YTC)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그렇다.  

248개 호실이 입주한 건물에서 전기요금 체납액이 3억 6천만 원에 달했고, 한국전력공사는 건물 전체 단전을 예고했다. 문제는 체납자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실하게 요금을 낸 수많은 입주자들까지 한꺼번에 단전 위험에 놓였다. 법원에 낸 단전 금지 가처분은 기각됐고, 입주자들은 자발적으로 4천만 원을 모아 분할 납부 의사까지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양주시장이 중재에 나서 1억 200만 원을 선납하는 조건으로 4월 18일까지 단전이 유예됐다. 위기는 잠시 미뤄졌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체납 문제가 아니다.  

집합건물 전기공급 구조 자체가 안고 있는 불공정이다. 현행 방식은 한국전력공사와 관리단이 건물 전체를 하나의 계약 단위로 묶는 단일계약 구조다. 한전 입장에서는 효율적일 것이다. 수백 개 호실을 개별 관리하는 대신 관리단 하나만 상대하면 되기 때문이다. 체납이 발생했을 때도 건물 전체를 상대로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효율은 누구의 효율인가. 한전의 효율이지, 입주자의 효율은 아니다.


이 구조에서는 책임과 피해가 완전히 어긋난다.  

전기요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전기가 끊기는 피해는 건물 전체가 함께 입는다. 체납의 책임은 소수에게 있지만, 단전의 위험은 다수에게 전가된다. 이는 명백히 공정하지 않다. 법적 계약 단위가 하나라는 이유만으로 성실 납부자까지 같은 제재를 받는다면, 그것은 징벌의 편의일 뿐 정의는 아니다.


더구나 전기는 사치재가 아니다.  

전력은 사업장의 혈관과 같다. 전기가 끊기면 컴퓨터가 멈추고, 생산설비가 서고, 냉장·냉동 시스템이 정지하며, 영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특히 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한 소상공인들에게 단전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계 중단을 의미한다. 하루 이틀의 멈춤도 계약 손실과 거래처 이탈, 임대료 연체, 직원 급여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전력 공급은 시장 논리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공공 기반이다. 시의회가 “전력은 단순한 재화가 아닌 생계와 직결된 필수 기반”이라고 지적한 것은 정확하다.


그 절박함은 입주자들의 행동이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4천만 원을 자발적으로 모았다. 왜 그랬겠는가. 억울하지만 버티기 위해서다. 무너질 수 없으니 스스로 돈을 모아 사태를 막아보려 한 것이다. 그 제안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구조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의 방식은 체납자를 겨냥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결국 성실한 사람들까지 함께 몰아세우는 시스템에 가깝다.


이 사안은 공공기관의 책임도 함께 묻게 한다.  

먼저 한국전력공사다. 한전은 공기업이다. 공기업이라면 단지 채권 회수의 효율만 따질 것이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선량한 이용자 보호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체납자를 압박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성실 납부자를 같은 위협 속에 넣는 것이라면, 그 구조는 재검토돼야 한다. 분리계량 체계나 부분 단전 방식, 성실 납부자 보호 장치 같은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공기업의 역할이다.


경기도를 둘러싼 의혹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입주자 측 주장대로 경기도가 해당 건물 일부 공간을 사용한 뒤 약 4억 5천만 원의 관리비를 내지 않았다면, 이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매우 गंभीर한 공공 책임 문제다. 사실 여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만약 체납의 주요 원인 가운데 공공기관의 미납이 포함돼 있다면, 공공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 민간 소상공인이 피해를 떠안는 기이한 구조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기도의 명확한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양주시의 역할도 가볍지 않다.  

시는 드론봇 인재교육센터 운영을 위해 전세보증금 6억 원과 시설투자 2억 원 등 총 8억 원의 공공 자금을 투입한 상태다. 회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단전 위기까지 겹쳤다. 이번에 시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 유예를 끌어낸 것은 분명 필요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공공 자금이 투입된 건물의 운영 리스크를 더 일찍, 더 면밀히 살폈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분리계량 체계다. 각 호실별로 전기 사용량과 납부 책임을 명확히 분리해, 체납이 발생하면 해당 호실만 제재하도록 바꾸는 방식이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이미 일부 현장에서는 시행되고 있다. 물론 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 비용이 집합건물 전체 단전이 초래할 사회적 손실보다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지금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관리 편의에 가깝다.


체납 요금의 분할 납부 허용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3억 6천만 원을 한 번에 정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분할 납부를 통해 회수 가능성을 높이고, 동시에 성실 납부자의 피해를 줄이는 방식은 충분히 가능하다. 입주자들이 이미 일정 금액을 모으고 매월 납부 계획까지 제시했다면, 이를 제도적으로 조정할 여지도 있었을 것이다. 법과 규정이 현실의 절박함을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제도는 결국 사람을 살리는 장치가 아니라 압박하는 장치가 되고 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태가 양주 한 곳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식산업센터, 상가, 오피스텔 등 집합건물이 늘어날수록 같은 문제는 전국 어디서든 반복될 수 있다. 관리단 체납이 곧 입주자 전체의 위기로 번지는 구조는 이미 곳곳에 잠복해 있다. 그때마다 임시 유예와 중재로 막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법과 제도를 손봐야 한다. 집합건물법과 전기사업법에 성실 납부자 보호 장치를 명시하고, 분리계량 확대나 부분 단전 원칙을 제도화하는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4월 18일은 단지 유예 종료일이 아니다.  

이 구조가 계속 유지될 것인지, 아니면 바뀔 것인지의 시험대다. 또 다른 임시방편으로 시간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미루기만 해서는 비슷한 위기가 언제든 다시 돌아온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피해를 보는 구조.  

그것은 단지 불운이 아니라, 고쳐야 할 제도의 결함이다.  

정치는 바로 그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이번 사태가 지나간 뒤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음 피해자는 또 다른 성실 납부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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