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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탈을 쓰면 다른 사람이 된다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4.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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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별산대놀이와 양주소놀이굿, 살아 있는 무형유산은 일상 속 무대에서 이어진다

별소굿.jpg


탈춤에는 오래된 자유가 있다.  

탈을 쓰는 순간 사람은 잠시 다른 존재가 된다. 양반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서민은 웃음 속에서 권력을 뒤집는다.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말이 탈 뒤에서는 가능해지고, 억눌린 감정은 춤과 몸짓 속에서 해학으로 풀려난다. 그래서 탈춤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민중의 지혜였고, 오래된 사회적 언어였다. 웃으면서도 비틀고, 즐기면서도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양주별산대놀이가 바로 그 전통을 잇는 대표적 유산이다.  

국가무형유산인 양주별산대놀이는 풍자와 해학의 결이 살아 있는 대표 탈춤이고, 양주소놀이굿은 농경 사회의 기억과 의례가 담긴 또 다른 귀한 무형유산이다. 하나는 탈을 쓰고 세상을 비틀고, 다른 하나는 소를 매개로 공동체의 삶을 재현한다. 결은 다르지만 둘 다 사람들의 삶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몸으로 이어져 온 유산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 두 전통이 올해 한 무대에서 만난다.  

이름도 흥미롭다. **‘별·소·굿’**. 양주별산대놀이의 ‘별’, 양주소놀이굿의 ‘소’, 그리고 ‘굿’이라는 말 속에는 전통 의례의 뜻과 함께 영어 ‘굿(Good)’의 느낌도 겹쳐진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둘째·넷째 토요일 오후 3시, 양주별산대놀이마당과 양주 관아지에서 번갈아 열리는 상설공연은 단순한 행사 하나가 아니다. 전통을 박제하지 않고 살아 있게 하려는 시도다.


무형유산은 건물처럼 남지 않는다.  

돌로 쌓은 성곽은 시간이 지나도 형태를 유지하지만, 무형유산은 사람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 배우고, 익히고, 공연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이들이 있어야만 존재를 이어갈 수 있다. 결국 무형유산의 생명력은 기록이 아니라 반복에서 나온다. 자주 공연되고, 자주 보고, 자주 경험할수록 전통은 현재의 문화로 남는다. 반대로 특별한 날에만 잠깐 꺼내 보이는 유산은 점점 생활에서 멀어지고, 언젠가는 기록 속 이름으로만 남게 된다.


그 점에서 상설공연의 의미는 크다.  

전통을 축제성 행사나 기념일 프로그램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시민이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한 번 가볼 수 있는 공연”이 되는 순간, 무형유산은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역의 생활 문화가 된다. 특별한 날에만 소환되는 유산이 아니라, 주말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문화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어진다.


양주별산대놀이와 양주소놀이굿을 함께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다.  

양주별산대놀이는 풍자와 해학이 강한 탈춤이다. 양반과 파계승을 비웃고, 웃음 속에서 사회 질서를 비튼다. 반면 양주소놀이굿은 보다 의례적이고 공동체적인 결을 지닌다. 농경 사회에서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삶을 함께하는 존재였다. 그 소를 중심으로 한 굿과 놀이에는 노동과 생존, 풍요와 공동체의 감각이 녹아 있다. 이 둘이 한 무대에서 만나면 전통 공연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한쪽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래된 삶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같은 전통이라도 결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공연과 함께 마련된 무료 체험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탈 만들기, 탈 뱃지 만들기, 해금 만들기, 장구 만들기, 걱정인형 만들기, 의상 체험까지 더해진 구성은 전통을 ‘보는 것’에서 ‘해보는 것’으로 확장한다. 전통문화는 손을 대보는 순간 훨씬 가까워진다. 직접 탈을 만들고 얼굴에 대보면 무대 위 인물이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금과 장구를 만들어보면 악기의 소리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에서 태어나는 결과물이라는 점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관람이 기억으로 남으려면 체험이 필요하고, 체험은 다시 관심으로 이어진다.


관아지라는 공간도 의미를 더한다.  

조선시대 양주목의 관아가 있던 자리에서 전통 공연이 펼쳐진다는 것은 단순한 장소 사용을 넘어선다. 역사적 공간이 역사적 콘텐츠와 만나면 시간의 층위가 겹쳐진다. 수백 년 전 이 땅에서 비슷한 웃음과 몸짓이 오갔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해진다. 전통은 책 속 설명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그 시대의 공간에서 체감할 때 훨씬 강하게 다가온다. 별산대놀이마당과 관아지를 번갈아 사용하는 구성은 같은 공연에도 다른 결을 더한다. 현대적 공연 공간과 유적지 공간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전통의 매력을 드러낸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매주 둘째·넷째 토요일 오후 3시. 이 시간은 가족 단위 관람객이 움직이기 좋은 시간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고, 부모도 비교적 여유를 낼 수 있는 주말 오후다. 가까운 곳에서 무료로 전통 공연과 체험을 즐길 수 있다면, 시민의 주말 선택지는 그만큼 넓어진다. 쇼핑몰이나 영화관이 아니라, 전통문화 공연장이 주말의 자연스러운 목적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문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반복 가능한 시간표 속에서 생활이 된다.


아이들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무형유산이 실제 눈앞에서 움직이고, 탈을 쓰고, 장단을 맞추며, 손으로 만들어보는 경험은 전통문화를 박물관 유리장 안에서 꺼내온다. 전통이 “옛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 경험이 쌓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쌓이면 전통을 이어갈 사람도 생긴다. 결국 무형유산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음 세대가 그것을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만드는 일이다.


양주는 이미 중요한 자산을 갖고 있다.  

양주별산대놀이와 양주소놀이굿이라는 두 개의 국가무형유산이 바로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산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창고에 넣어두고 “우리에겐 이런 것이 있다”고 자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대에 올리고, 시민이 보고, 아이들이 만지고, 가족이 함께 즐기게 해야 한다. 유산은 보유보다 활용에서 살아난다.


‘별·소·굿’은 그런 방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전통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한다.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시민 중심으로, 감상 위주가 아니라 체험까지 포함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것이야말로 무형유산을 지금의 문화로 이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탈을 쓰면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전통 공연이 오늘날에도 필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옛것을 지킨다는 의무 때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웃음과 해학, 전환의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4월의 양주 무대에서 다시 탈을 쓴 사람들이 등장한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웃음이 다시 시작된다.  

전통은 그렇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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