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천시의 두 과제가 보여주는 지방행정의 본질

멈춘 지 오래인 취수장 하나가 사라지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시설은 사실상 기능을 잃었는데, 규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펌프는 멈췄지만 제한은 살아 있었고, 주민들의 삶은 그 보이지 않는 벽 안에 묶여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행정이 만들어낸 가장 고약한 그림자, 이른바 ‘유령 규제’다.
포천 내촌취수장이 그랬다. 2009년 광역상수도 보급 이후 사실상 쓰임을 다한 시설이었지만, 취수원 반경 1km 이내 공장설립 제한은 그대로 유지됐다. 3.14㎢에 이르는 땅이 오랜 시간 규제에 묶였고, 주민들은 개발도 재산권 행사도 제약받아야 했다. 존재 이유를 잃은 시설 하나가 지역의 현재와 미래를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지난 8일 환경부의 수도정비기본계획 변경 승인으로 이 유령은 비로소 사라질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 절차는 남아 있다. 경기도의 폐지 인가와 환경부의 제한지역 해제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포천시가 2014년부터 11년 넘게 건의해 온 행정적 노력이 마침내 실질적 결실의 문턱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같은 시기 포천시는 전혀 다른 싸움도 벌이고 있다.
이번에는 묵은 규제가 아니라, 다가오는 재난과의 싸움이다.
기후변화 앞에서 여름은 더 이상 낭만의 계절이 아니다. 이제 여름은 예고된 재난의 시간이 됐다. 폭우는 일상이 됐고, 국지성 집중호우는 더 이상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포천시는 올해 5만 9,256개소의 재난취약시설을 전수 점검하고, 이 가운데 1,813개소를 중점관리시설로 지정했다. 지난해 수해 피해액 388억 원 가운데 183억 원이 하천 피해였다는 분석은 숫자 이상의 경고다. 시가 하천과 배수시설 정비, 빗물받이 준설, 급경사지 위험요인 제거, 지하주차장 침수알람장치 설치 등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겉으로 보면 두 사안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하나는 오래된 규제를 푸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재난을 막는 일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둘 다 주민의 일상을 지키는 행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유령 규제는 주민의 오늘을 갉아먹는다.
재난 대비 부실은 주민의 내일을 위협한다.
한쪽은 삶의 기회를 빼앗고, 다른 한쪽은 삶의 안전을 흔든다.
결국 지방행정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불필요한 제약은 걷어내고, 예고된 위험은 앞서 막는 것이다.
내촌취수장 폐지 승인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규제 하나가 완화됐기 때문이 아니다. 행정이 늦게라도 현실을 따라잡았다는 점, 그리고 주민이 오래 감내해 온 불합리를 제도적으로 바로잡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대로 재난 대비가 중요한 이유 역시 단순히 피해액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재난은 늘 가장 낮고 약한 곳부터 파고든다. 하천변, 급경사지, 침수 우려 지역, 노후 시설 주변에 사는 이들이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 결국 재난 대응은 안전의 문제인 동시에 형평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 과제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포천~화도 고속도로 개통과 맞물려 내촌면 일대에는 새로운 변화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규제가 풀리면 개발 가능성도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개발은 안전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삶의 터전이 침수와 붕괴 위험 앞에 놓여 있다면, 어떤 투자와 확장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지역의 활력을 키우는 일과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지방정부가 동시에 수행해야 할 책무다.
좋은 행정은 거창한 구호로 증명되지 않는다.
주민이 왜 불편한지 알아채고, 그 불편이 오래 방치되지 않도록 움직이는 데서 시작된다.
좋은 행정은 피해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피해가 오기 전에 위험을 줄이는 데서 신뢰를 얻는다.
포천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결국 그 두 문장으로 설명된다.
오래된 규제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 그리고 다가올 여름의 위험을 미리 막는 일.
둘 다 행정의 속도와 집요함, 현장 감각이 필요한 과제다.
유령은 이제 사라질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분명하다.
풀어야 할 규제는 끝까지 풀고, 막아야 할 재난은 계절이 오기 전에 막아내는 것.
지방행정의 품격은 거기서 드러난다.
주민의 삶이 덜 묶이고, 덜 다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결국 행정이 존재하는 가장 분명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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