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정부시 '민원 매니저' 제도가 던지는 질문
행정을 경험해본 시민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서류 하나를 떼기 위해 한 부서를 찾았더니 다른 부서로 가보라고 하고, 다시 그곳에서는 또 다른 창구를 안내받는다. 담당자들은 저마다 친절하지만, 정작 민원인 입장에서는 아무도 전체 그림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신의 일인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가 남았는지는 결국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행정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행정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은 늘 민원인의 몫이었다.
이 불편하고 익숙한 풍경에 의정부시가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는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민원 매니저 제도’를 시범 운영한다. 인허가처럼 여러 부서 협의가 필요한 복합민원을 한 명의 공무원이 접수부터 처리 완료까지 총괄 관리하는 방식이다. 식품·위생, 건축, 기타 복합민원 등 수요가 많은 3개 분야를 우선 대상으로 삼고, 실무 경험이 풍부한 팀장급 공무원을 매니저로 지정했다.
제도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이 단순한 구조 안에는 적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동안 행정은 철저히 부서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각 부서는 자기 소관 업무만 처리하면 됐다. 그 업무가 다른 부서와 맞물려 있다면, 그 사이를 오가며 퍼즐을 맞추는 사람은 민원인이었다. 행정 내부의 칸막이는 공무원에게는 익숙한 체계일지 몰라도, 시민에게는 높은 벽이었다. 민원인이 부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시민의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시민이 그 구조를 몰라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어야 한다.
그 점에서 민원 매니저 제도는 발상의 축을 바꾸는 시도다.
부서 중심이 아니라 민원인 중심으로 행정을 재배열하는 것이다. 민원인이 여러 창구를 전전할 필요 없이, 한 명의 담당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파악하고 조율한다면 행정의 복잡성은 시민에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시민은 더 이상 각 부서의 경계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누가 무엇을 담당하는지 따져 묻기보다, 자신의 민원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한 사람에게 확인하면 된다.
이 제도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책임’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복합민원이 어려운 이유는 단지 절차가 많아서가 아니다. 여러 부서가 얽혀 있을수록 책임은 흐려지고, 조정은 늦어지기 쉽다. 이견이 생기면 누가 중간에서 정리할 것인지, 지연이 발생하면 누가 끝까지 챙길 것인지가 불분명해진다. 결국 민원인은 “이건 우리 부서 소관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 명의 매니저가 처음부터 끝까지 맡는 구조는 편의성뿐 아니라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팀장급 공무원을 매니저로 지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복합민원은 단순 안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부서 간 의견 차가 생길 수 있고, 협의 과정이 늦어질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접수 창구가 아니라, 행정 내부를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실무 경험과 조직 내 조정 능력을 갖춘 팀장급이 나선다면, 형식적 연결이 아니라 실제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민원 매니저는 일종의 ‘안내자’이면서 동시에 행정 내부의 ‘교통정리자’인 셈이다.
물론 제도가 이름만 새롭고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의미는 반감된다.
6개월의 시범 운영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니저 1명이 감당해야 할 민원량은 적절한지, 기존 부서 체계와 충돌은 없는지, 실제 처리 기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민원인의 체감 만족도는 어떤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제도는 도입보다 운영이 더 중요하다. 행정이 종종 빠지기 쉬운 함정은 ‘새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성과로 착각하는 것이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제도 도입 보도가 아니라, 실제로 청사 복도를 덜 걷게 되는 경험이다.
의정부시가 시범 운영 뒤 민원 처리 기간 단축 효과를 분석해 확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바람직하다.
정책은 선의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실제 효과로 검증돼야 한다. 만약 이번 시범 운영이 민원인의 대기 시간을 줄이고, 반복 방문을 줄이며, 민원 처리 과정을 더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개선을 넘어 시민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의 원스톱 행정서비스 확대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보더라도, 이번 시도는 지방정부가 중앙의 방향을 현장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정책은 늘 위에서 내려오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행정은 결국 현장에서 결정된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민원 창구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시민에게는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민원 매니저 한 명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복잡한 인허가 절차 앞에서 막막했던 소상공인, 건축 허가를 위해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던 시민, 어디에 문의해야 할지 몰라 전화번호만 옮겨 적던 민원인에게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챙기겠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안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행정이 비로소 시민 쪽으로 몸을 돌렸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좋은 행정은 시민이 행정의 복잡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행정이다.
의정부시의 민원 매니저 제도가 그 당연한 원칙을 실무에서 증명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6개월 뒤, 그 성과가 숫자만이 아니라 시민의 경험으로 확인되기를 바란다.
행정의 칸막이를 허무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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