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시 ‘EBS 자기주도학습센터’가 보여주는 교육의 또 다른 가능성



‘자기주도학습’은 오래된 말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수십 년째 강조돼 왔지만, 정작 그것을 어떻게 길러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늘 막연함이 뒤따랐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워준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또 다른 방식의 관리와 주입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주도학습은 늘 중요하지만, 동시에 가장 추상적인 교육 언어처럼 남아 있었다.
양주시가 운영 중인 ‘EBS 자기주도학습센터’는 그 모호한 말에 비교적 구체적인 형체를 부여한다. 학습 습관 진단, 목표 설정, 학습계획 수립, 학습 수행, 결과 점검으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는 얼핏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방향은 분명하다. 공부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라는 운영 시간도 의미심장하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이 가장 쉽게 흐트러질 수 있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학원이 채우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아무 계획 없이 흘러가 버리는 공백의 시간이기도 하다. 센터는 바로 그 시간을 붙잡는다. 출결 확인, 자리 배정, 학습 수행, 종료 전 일일 점검과 플래너 작성, 주 1회 개별 상담으로 이어지는 반복된 루틴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의 질서’를 만들어준다.
중요한 것은 이곳이 지식을 더 많이 넣어주는 공간이라기보다, 공부의 리듬을 익히게 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습관은 의지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반복되는 환경 속에서 조금씩 몸에 배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계획을 세우고, 수행하고, 다시 점검하는 경험이 쌓일 때 공부는 비로소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된다. 학생이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는 과정이 반복돼 공부 습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 것도 결국 이 구조의 힘을 설명한다.
이 센터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는 학습 코디네이터의 존재다.
요즘 교육에서 AI는 더 이상 낯선 도구가 아니다. 그러나 데이터를 분석하고 학습 상태를 진단하는 것과, 학생의 흔들림을 읽고 적절한 시점에 말을 건네는 일은 다르다. 센터는 AI 학습 프로그램과 더불어 학습 코디네이터를 두고 학생별 상황을 관리하고 보완한다. 주 1회 개별 상담은 단순한 점검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자기 학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장치에 가깝다.
정원 25명이라는 규모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중학생 16명, 고등학생 9명. 숫자만 놓고 보면 크지 않다. 그러나 교육에서는 때로 규모보다 밀도가 중요하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학습 리듬과 변화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려면 어느 정도 작은 규모가 필요하다. 양보다 질을 우선한 이 선택은, 이 센터가 단순한 자습실이 아니라 관리와 코칭이 결합된 학습 공간임을 보여준다.
EBS 콘텐츠와 AI 프로그램의 결합도 현실적인 해법이다.
공교육 콘텐츠의 신뢰성과 디지털 학습의 개인화 기능을 함께 활용해, 사교육 의존 없이도 일정 수준의 학습 지원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지역 간 교육 인프라 격차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이런 공공 학습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은 작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교육 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이나 거주지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시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낮 시간대 공간 활용 계획도 흥미롭다.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공유 회의실, 소모임 공간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이곳을 단순한 청소년 학습 공간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자산으로 확장한다. 하나의 공간이 하루 동안 서로 다른 세대와 목적을 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시설의 효율성과 지역 연결성을 함께 생각한 운영 방식이라 할 만하다.
물론 지금의 규모는 시작에 불과하다.
25명 정원은 촘촘한 관리라는 장점을 지니지만, 동시에 더 많은 학생이 이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결국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하다. 지금의 밀도 있는 관리 체계를 유지하면서, 이 모델을 더 넓게 확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운영 성과가 쌓이고 효과가 검증된다면, 더 많은 학생이 이런 환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길을 넓혀야 한다.
자기주도학습은 결국 자신을 아는 힘에서 출발한다.
내가 언제 집중이 잘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계획을 세워야 흔들리지 않는지, 어느 과목에서 자주 멈추는지를 스스로 파악하고 조정하는 능력. 그것이 진짜 자기주도학습이다. 누군가 대신 공부를 시켜준다고 해서 생기는 힘이 아니라, 스스로를 관찰하고 관리하는 과정 속에서 길러지는 힘이다.
그 점에서 양주시 EBS 자기주도학습센터는 학생들에게 답을 주기보다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코디네이터가 옆에서 지켜보고,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플래너가 하루를 기록하는 동안 학생은 조금씩 자기만의 공부법을 배워간다. 어쩌면 자기주도학습이란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하루를 스스로 설계하고 다시 돌아보는 작은 반복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 습관은 직접 주입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은 설계할 수 있다.
양주시의 시도는 바로 그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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