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유가 위기 앞에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을 보여준 백영현 시장
위기는 늘 누가 먼저 움직이는지를 드러낸다.
정부가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 11일, 포천시가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은 그 다음 날인 12일이었다. 불과 하루 만에 시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부서별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빠른 대응이다. 그리고 민생 앞에서 그 빠름은 단순한 행정 속도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은 전국을 대상으로 설계된다. 그것은 강점이지만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전국 단위 정책은 평균을 향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지역별 특수성은 종종 뒤로 밀린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지원하는 구조 안에서는 언제나 사각지대가 생긴다. 특수한 지역, 특수한 업종, 특수한 생활 조건을 가진 이들이 정책의 그물 밖으로 밀려난다.
포천시는 그 지점을 먼저 봤다.
도농복합도시인 포천에는 농업인이 있고, 영세 운송업자가 있으며, 에너지 취약계층이 있다. 유가 상승에 직접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도시 외곽과 농촌 마을, 산업단지 주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정부 지원이 일정 계층이나 산업군 중심으로 설계될 경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 포천시가 긴급회의를 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 정책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 지원이 닿지 않는 곳을 먼저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의 역할은 바로 이런 데서 분명해진다.
중앙정부가 큰 방향을 설계한다면, 지방정부는 그 정책이 지역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책임진다. 중앙의 정책이 지역의 삶과 정확히 맞물리지 않을 때, 그 틈을 메우는 것이 지방자치의 존재 이유다.
백영현 시장이 회의에서 밝힌 “정부 정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우리 시 실정에 맞는 추가 지원책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민생 경제의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말은 지방정부의 역할을 정확히 짚는다. 정부가 하는 일만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 포천의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시민 삶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방자치단체장이 해야 할 말이고, 또 해야 할 일이다.
이번 대응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단어는 ‘포천형’이다.
포천시가 마련하겠다고 밝힌 대책의 이름은 ‘포천형 고유가 민생 안정 대책’이다. 이 표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국 어디에나 적용되는 획일적 대책이 아니라, 포천의 산업 구조와 생활 여건, 시민 구성에 맞춘 맞춤형 대책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농업인의 유류비 부담은 도심의 소비자 부담과 다르고, 영세 운송업자의 어려움은 대기업 물류체계와 전혀 다른 결을 가진다. 에너지 취약계층의 분포 역시 포천의 지리적 특성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이 차이를 읽고, 그 차이에 맞는 해법을 세우는 것. 그것이 ‘포천형’이라는 말의 무게다.
특히 민생 문제에서 속도는 중요하다.
행정에서 빠르다는 말은 종종 효율성의 문제로 이해되지만, 민생에서는 그보다 훨씬 직접적인 의미를 갖는다. 지금 당장 기름값 부담을 견뎌야 하는 농민에게, 운송비 인상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생계형 사업자에게, 냉난방비를 걱정하는 취약계층에게 지원 시기의 차이는 생활의 차이로 이어진다. 한 달 빠른 대책은 한 달 빠른 안도감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 발표 직후 곧바로 긴급회의를 열고 시장이 직접 점검에 나선 것은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시민의 어려움을 ‘나중에 검토할 과제’가 아니라 ‘지금 대응해야 할 문제’로 봤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회의 자체가 성과는 아니다.
논의된 내용이 실제 정책으로 확정돼야 하고,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며, 집행은 신속하고 정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말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닿아야 한다. 지원 대상은 촘촘해야 하고, 절차는 가능한 한 간명해야 하며, 정책 효과는 시민이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포천형 고유가 민생 안정 대책’의 성패는 발표가 아니라 실행에서 갈릴 것이다.
그럼에도 시작은 중요하다.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 회의를 열고, 사각지대를 먼저 점검하며, 필요하면 시 예산 투입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것. 이것이 있어야 정책도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포천시는 적어도 그 출발을 빠르게 했다.
고유가 위기는 포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모든 지자체가 비슷한 고민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같은 위기 앞에서도 어떤 곳은 중앙정부의 후속 지침만 기다리고, 어떤 곳은 지역의 실정에 맞는 대응을 먼저 고민한다. 포천시는 후자가 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지방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멀리 있는 정부가 미처 닿지 못하는 곳에서 시민 곁에 서기 위해서다.
이번 포천시의 대응은 바로 그 지방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그 선택이 실제로 시민 삶의 부담을 덜어내는 결과로 이어질 때, 이번 긴급회의의 의미는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포천시는 지금, 정부를 기다리지 않는 지방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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