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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쟁 없는 경제를 말하면서, 전쟁 산업을 키운다고?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4.2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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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를 말하며 방산을 키우는 도시의 모순
  • 전쟁 없는 경제? 그렇다면 왜 방산이 미래산업인가
  • 포천의 미래가 국방 AI여야 하는 이유를 시민은 아직 듣지 못했다
  • 첨단산업이라는 포장지로 방산의 본질을 가릴 수는 없다

1-1 포천시, 특수지상작전연구회(LANDSOC-K)와 업무협약 체결.jpg


경기 포천시가 특수지상작전연구회와 손잡고 국방 AI·방위산업 육성에 나섰다. 시는 지난 22일 첨단 기술 자문, 기업 유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행정의 언어로 보면 그럴듯하다. 미래 산업, 첨단 기술, 고용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요즘 어떤 정책 보도자료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문장들이다. 문제는 그럴듯한 단어들이 정작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지워버린다는 데 있다. 방위산업은 결국 전쟁을 전제로 움직이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포천은 오랫동안 군사도시의 그늘을 짊어져 온 지역이다. 각종 군 관련 시설, 개발 제한, 소음, 안전 문제, 지역 이미지 훼손까지 감내해 왔다. 그런 도시가 이제는 다시 “국방 AI”와 “첨단 방산”을 미래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시민들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포천은 군사도시의 피해는 계속 떠안으면서, 이제는 그 군사도시 구조를 더 공고히 하는 길로 가겠다는 것인가.


더 직접적으로 말해 보자. 한쪽에서는 평화, 민생, 지속가능한 지역경제를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드론, 유무인 복합체계, 국방 AI, 방산 육성을 말한다. 물론 행정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방위산업은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며, 지역에는 일자리와 기업 투자를 가져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를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그 산업의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무기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군사기술을 더 고도화하는 산업을 키우면서 동시에 ‘전쟁 없는 경제’를 말하는 것은, 적어도 시민 눈높이에서는 매우 불편한 모순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협약에 등장하는 표현들을 보면 더 그렇다. 국방 AI, 디지털 전환, 드론, 유무인 복합체계. 이런 단어들은 첨단과 혁신의 옷을 입고 있지만, 결국 사용처는 군사 영역이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어도, 정책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어떤 산업을 지역의 미래로 키우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 도시는 예산과 행정력, 정치적 상징을 어디에 실을 것인지 선택하게 된다. 포천시는 지금 사실상 “우리 지역의 미래 먹거리 가운데 하나는 군사기술”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여기서 더 따져봐야 할 대목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익숙한 명분이다. 방위산업을 육성하면 과연 지역 청년에게 얼마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가 생기는가. 실제로 포천 시민, 포천 청년, 포천의 중소상공인이 그 열매를 얼마나 나눌 수 있는가. 아니면 외부 기업과 전문가 집단, 특정 연구 네트워크만 들어왔다 나가며 지역은 또다시 부지 제공과 행정 지원만 떠안게 되는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말은 너무 자주 쓰여 이제는 검증 없는 면죄부처럼 소비된다. 방산 기업 몇 곳 유치했다고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시민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세수와 고용이 얼마나 지역에 남는지, 민간 산업과 어떤 연계 효과가 있는지부터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도시의 방향성이다. 포천이 정말로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포천은 군사와 훈련, 규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더 폭넓은 산업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랫동안 있었다. 관광, 농업, 식품, 친환경 산업, 정주 여건 개선, 교육·의료 인프라 확충 같은 과제는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다. 그런데 또다시 방산이 전면에 선다면, 포천은 결국 익숙한 길로 되돌아가는 것 아닐까. 군사도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도시가, 군사도시의 정체성을 미래 전략으로 재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물론 현실론도 있다. 남북 대치 상황이 여전하고, 방위산업은 국가적으로도 성장 분야라는 주장이다. 그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지방정부는 신중해야 한다. 방산 육성은 단순한 기업 유치가 아니다. 도시의 정체성과 윤리, 미래 세대의 산업 구조, 지역사회의 가치 판단이 함께 걸린 문제다. 적어도 이런 사안이라면 “첨단산업”이라는 말로 포장하기보다, 시민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 우리는 왜 이 길을 택하는가. 이 산업의 위험과 한계는 무엇인가. 평화와 공존이라는 가치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면, 이번 협약은 그저 또 하나의 홍보성 MOU로 남을 뿐이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전쟁을 준비하는 산업을 지역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 시민이 이를 두고 이율배반이라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불편한 질문이라고 피해선 안 된다. 오히려 지방행정이라면 그 질문부터 받아안아야 한다. 진짜 필요한 것은 “첨단”이라는 단어가 아니다. 포천이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보다 먼저, 어떤 도시가 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다.


지금 포천시에 필요한 것은 방산 육성의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그 선택이 품고 있는 모순과 비용까지 시민에게 설명하는 용기다. 전쟁 없는 경제를 원한다면, 평화를 소비하는 수사가 아니라 평화와 산업이 양립할 수 있는 구체적 비전부터 내놔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들은 계속 묻게 될 것이다.


평화를 말하는 도시가 왜 무기를 미래라고 부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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