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원을 많이 들은 시장과 민원을 많이 해결한 시장은 다르다. 선거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뽑는 자리다.

백영현 포천시장이 포천시장 예비후보 등록과 함께 다시 시민 앞에 섰다. 그의 출마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했다. 자신은 “정치적 신분 상승을 노리는 정치꾼”이 아니라 “시민의 손톱 밑 가시를 빼주는 지역 일꾼”이며, 지난 4년은 시민 불편 해소와 행정 신뢰 회복에 집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익숙하고도 설득력 있는 언어다. 지방정치에서 생활밀착형 행정, 현장 중심 소통, 주민 불편 해소만큼 강한 호소력을 가진 말도 드물다.
그러나 선거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온도가 아니라 말의 무게다. 백 시장의 이번 출마 선언은 분명 현장성과 진정성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질문도 남겼다. 무엇보다 “나는 정치꾼이 아니라 지역 일꾼”이라는 구도 설정은 강한 프레임이지만, 자칫 자신의 경쟁자를 낡은 정치의 상징으로 단순화하는 정치적 수사로도 읽힐 수 있다. 생활정치를 말하면서도 결국 가장 정치적인 언어를 택한 셈이다.
백 시장은 지난 4년 동안 14개 읍면동을 돌며 약 1100건의 민원을 접수했고, 이를 통해 행정에 대한 불신을 신뢰로 바꿨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은 분명 그의 강점이 될 수 있다. 민원 현장을 직접 챙기고 주민 목소리를 듣는 행정은 기초자치단체장에게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선거는 태도만으로 치르는 평가가 아니다. 1100건의 민원을 접수했다면, 이제 유권자가 묻는 것은 단순하다. 그중 몇 건이 해결됐는가. 해결까지 평균 얼마나 걸렸는가. 예산과 제도 한계로 미해결된 과제는 무엇이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민원을 ‘들었다’는 사실과 민원을 ‘해결했다’는 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백 시장 발언의 또 다른 축은 경제위기 진단이다. 그는 지금의 경제 상황이 코로나 이전보다, IMF 외환위기 이전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위기감을 강조해 선거의 절박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위기의식이 강할수록 더 필요한 것은 정밀한 처방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총론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시민이 궁금한 것은 포천 경제가 왜 어려운지, 어떤 산업과 상권이 얼마나 타격을 받고 있는지, 지난 4년 동안 이를 위해 무엇을 했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바꿀 것인지다. 위기 인식은 출발점일 뿐, 정책 설명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공감의 언어가 아니라 불안의 언어에 그칠 수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백 시장이 스스로를 “29년 지방행정 실무 경험”을 가진 후보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오랜 행정 경험은 분명 강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오래 일했다는 것은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해법보다 익숙한 방식에 머물렀을 가능성도 내포한다. 특히 재선 도전이라면 더 그렇다. “경험이 많다”는 말은 결국 “그래서 무엇을 바꿨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실무 경험은 능력의 증거가 될 수 있지만, 변화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백 시장은 “포천에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희망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검증이 필요한 문장이다. 그 기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누가 체감하고 있는지, 어떤 사업과 어떤 재정·산업 기반 위에서 가능한 이야기인지 밝혀지지 않으면, 이는 선거용 낙관론으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시민은 더 이상 ‘기회가 왔다’는 추상적 문장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기회의 실체, 실행 계획, 실패 가능성까지 듣고 싶어 한다.
이번 출마 선언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단연 “손톱 밑 가시를 빼주는 생활정치”였다. 이 표현은 쉽고, 선명하고, 지역 정치인의 역할을 잘 압축한다. 다만 생활정치는 비유가 아니라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 도로 하나, 배수 하나, 교통 불편 하나, 교육 문제 하나, 기업 애로 하나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숫자와 사례로 보여주지 못하면, 그 말은 좋은 문장에 머문다. 지방선거는 이미지 선거가 아니라 생활 평가 선거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이번 백 시장의 출마 선언은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강점은 분명하다. 현장을 아는 언어, 행정 경험, 시민 접점, 생활밀착형 메시지다. 반면 한계도 뚜렷하다. 성과의 정량적 설명이 부족하고, 경쟁 구도에 기대는 정치적 프레임이 강하며, 앞으로의 청사진은 다소 추상적이다. “정치꾼이냐 지역 일꾼이냐”라는 이분법은 지지층 결집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중도 유권자에게는 오히려 자기 검증 회피로 비칠 수도 있다.
유권자가 보고 싶은 것은 결국 하나다. 말이 아니라 증거다. 소통을 했다면 무엇이 바뀌었는지, 불편을 해소했다면 어디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기회가 왔다면 누구의 삶이 실제로 달라질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선거에서 진정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행정의 세계에서 진정성은 성과로 번역될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백영현 시장의 이번 출마 선언은 “나는 시민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규정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자기 규정을 시민이 인정할 수 있도록 구체적 성과, 수치, 책임, 비전으로 입증하는 일이다. 재선 도전은 초선 때보다 훨씬 엄격한 시험이다. 약속은 미래형이지만, 평가는 완료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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