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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지나치는 역에서 머무는 문화로

  • 양동원 기자
  • 입력 2026.05.0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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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부 회룡역 ‘힐링컬쳐스테이지 H’가 보여주는 생활밀착형 문화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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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문화는 거창한 공연장이나 대형 축제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이 매일 오가는 익숙한 공간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문화의 깊이와 일상의 품격이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의정부시가 5월 6일부터 7월 1일까지 매주 수요일 회룡역 2층 대합실에서 운영하는 시민참여형 문화프로젝트 ‘퇴근길, 문화정거장 힐링컬쳐스테이지 H’는 생활 속 문화정책의 방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하철역과 경전철 역사는 대개 이동과 환승의 공간으로만 인식된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가고, 공간은 기능적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같은 장소도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의정부시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한 이동 공간이던 회룡역을 공연과 체험, 쉼과 참여가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려 한다. 이는 공간의 쓰임을 바꾸는 일이자, 시민의 하루를 대하는 행정의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 퇴근길을 문화의 시간으로 바꾸는 발상


퇴근길은 많은 시민에게 가장 지친 시간대다.  

하루의 업무를 마친 뒤 몸과 마음이 모두 무거워지는 시간, 사람들은 목적지만을 향해 서둘러 이동한다. 이때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음악 한 곡, 소박한 체험 하나, 따뜻한 나눔의 순간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문화는 반드시 긴 시간을 들여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삶의 결을 부드럽게 바꾸는 힘이 있다.


회룡역에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하고 있다.  

카네이션 만들기, 힐링매직, 풍선 이야기, 통기타 하모니, 꽃차 나눔, 오카리나 듀오, 책갈피 체험, 라인건강댄스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 구성은 거창하기보다 친근하고, 관람형에 머무르기보다 참여형에 가깝다. 이는 시민이 문화를 소비하는 대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함께 만들어 가는 주체가 되도록 설계된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유휴공간을 공공문화 자산으로 바꾸다


이번 행사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역사 내 유휴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도시 곳곳에는 본래의 기능 외에는 충분히 쓰이지 못하는 공간이 적지 않다. 이런 공간을 단순히 비워 두는 대신 시민을 위한 문화 플랫폼으로 바꾸는 것은 비용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 공간은 새로 짓는 것보다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회룡역 대합실을 문화정거장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생활권 내 공공공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멀리 가지 않아도,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시민이 일상 동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생활밀착형 문화정책의 핵심이다. 문화는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시민의 삶 속에 더 깊이 스며든다.


◇ 예산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과 지역의 협력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번 행사가 별도 예산 투입 없이 시민공감과 지역 예술인의 협력으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행사 운영 방식을 넘어 문화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화정책은 언제나 큰 예산과 대형 시설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다. 지역의 예술인, 시민단체, 행정이 함께 뜻을 모으면 생활 가까운 곳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비예산 사업이라는 점만으로 모든 가치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적은 비용으로도 시민 체감도가 높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역 문화생태계의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는지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무엇을 얼마나 크게 하느냐’보다 ‘어떻게 시민과 연결되느냐’를 묻는 문화행정의 좋은 실험으로 읽힌다.


◇ ‘H’에 담긴 의미, 도시의 정체성을 넓히다


‘힐링컬쳐스테이지 H’의 H에 회룡, 치유, 희망, 사람의 의미를 담았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이는 단순한 명칭 이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공간의 이름에 지역성과 감정,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담아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문화정책은 결국 지역만의 정체성을 어떻게 생활 속 언어로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시민이 자주 오가는 장소에 지역의 이름과 정서를 덧입히는 일은, 그 도시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회룡역이 단지 지나치는 환승 거점이 아니라 잠시 머물며 위로를 얻는 장소로 기억된다면, 이는 물리적 공간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이 도시를 경험하는 감정 자체가 달라진다. 좋은 도시란 이동이 편리한 도시를 넘어, 이동의 과정마저 덜 삭막한 도시여야 한다.


◇ 문화도시는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시작된다


‘문화도시’라는 말은 자주 쓰이지만, 실제 시민이 체감하는 문화도시는 대개 이런 작은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퇴근길 역사 한편에서 음악이 흐르고, 시민이 잠시 멈춰 웃고, 누군가는 체험에 참여하고, 누군가는 공연을 지켜보며 하루의 피로를 덜어내는 순간들 말이다. 문화는 멀리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속 반복되는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의정부시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런 가능성이다.  

도시의 공공공간을 보다 따뜻하게 쓰는 방법, 시민의 시간을 행정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하는 방법, 그리고 예술을 삶 가까이 배치하는 방법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이런 시도가 쌓일수록 문화도시는 표어가 아니라 경험이 된다.


◇ 맺음말


회룡역 ‘힐링컬쳐스테이지 H’는 단순한 소규모 문화행사가 아니다.  

이는 이동의 공간을 머무름의 공간으로, 유휴공간을 공공문화의 무대로, 퇴근길의 피로를 일상의 위로로 바꾸려는 시도다. 시민 가까이에서, 시민이 쉽게 닿을 수 있는 방식으로 문화를 풀어내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좋은 문화정책은 시민에게 거창한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바쁜 하루 속 잠깐의 여유를 건네고, 익숙한 공간에 새로운 온기를 더한다.  

의정부시의 이번 프로젝트가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나치는 역이 머무는 문화로 바뀔 때, 도시의 일상도 조금은 더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정부 회룡역 ‘힐링컬쳐스테이지 H’는 생활권 공공공간을 시민의 위로와 참여가 있는 문화정거장으로 바꾸는 의미 있는 생활문화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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