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의 절규가 포천 시청 강당에 울려 퍼진 밤, 우리는 무엇을 들었는가
3월의 초입, 포천시청 신청사 강당에 밤이 내려앉았다. 행정의 언어가 오가던 그 공간에 이날만큼은 전혀 다른 언어가 흘렀다. 베토벤의 분노, 모차르트의 천재성, 그리고 비올레타의 눈물. 제10기 포천예술대학 특강 '인문학으로 듣는 클래식 음악'은 그렇게, 일상의 공간을 예술의 공간으로 조용히 변모시켰다.
임정빈 평론가의 강연을 들으며 내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음악'으로만 여겨왔는가. 그리고 그 의무감의 무게 아래서, 정작 음악이 건네는 진짜 말을 얼마나 놓쳐왔는가.
◇'운명'이라는 이름의 오해 — 혹은 진실
이날 강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역설적으로 가장 익숙한 곡에 관한 이야기였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우리가 '운명'이라 부르는 그 곡.
임 평론가는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운명'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악보 원본에는 단지 'Symphony C Minor OP.67'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수십 년간 '운명의 동기'라 부르며 경외해온 그 이름은, 사실 일본 음반 시장의 마케팅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 음악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가. 오히려 반대다.
제목이라는 외피를 걷어내고 나면, 음악의 본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폴레옹 전쟁의 포화 속에서 궁핍했던 삶, 음악가에게 찾아온 청각의 상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베토벤이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토해낸 네 개의 음표. 따-따-따-따아. 그것은 '운명'이라는 거창한 이름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절규였다.
이름을 빼앗긴 음악이 오히려 더 진실해지는 순간. 그것이 인문학이 클래식에 건네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천재의 조건 — 모차르트가 우리에게 묻는 것
모차르트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경이로움으로 시작해 묘한 쓸쓸함으로 끝난다.
단 한 번 들은 성당의 합창곡을 완벽하게 악보로 옮겨낸 소년. 수정 흔적이 거의 없는 악보를 남긴 작곡가. 수학적 완결성과 감성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구현한 음악. 임 평론가가 전하는 모차르트의 일화들은 청중을 경탄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강연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경탄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평범함을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평범함 속에서도 음악을 듣고, 감동받고, 눈물 흘리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모차르트가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선물이 아닐까.
태교 음악으로서의 모차르트를 설명하며 임 평론가가 강조한 '수학적 하모니'는 단순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이 인간의 신체와 정서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클래식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알아듣는 언어인 것이다.
◇비올레타의 아리아 — 자유와 사랑 사이에서
강연의 대미를 장식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우리말로는 '춘희', 혹은 '길을 잃은 여인'으로 번역되는 이 오페라는 19세기 파리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다.
그러나 임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 듣는 비올레타의 이야기는 단순한 멜로드라마가 아니었다. 사회가 규정한 경계 밖에 서 있던 한 여성이 진실한 사랑 앞에서 겪는 내면의 격랑. 아리아 '이상해!~언제나 자유롭게'는 그 격랑의 언어적 표현이다.
자유를 원하면서도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의 모순. 그것은 19세기 파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 포천 시청 강당에 앉아 있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베르디는 비올레타의 입을 빌려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170년의 시간을 가뿐히 뛰어넘어 2026년 3월의 포천 시민들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오페라가 '음악이 있는 드라마'라는 임 평론가의 정의는 그래서 더욱 정확하다. 드라마는 시대를 초월하고, 음악은 그 드라마에 영원성을 부여한다. 비올레타의 고뇌가 오늘도 우리를 울리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실존적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감상(鑑賞)이라는 거울 앞에서
임 평론가가 강연 중 풀어낸 '감상'의 어원은 이날 강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였다. 감상(鑑賞). 거울 감(鑑), 상줄 상(賞).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거울 앞에 서는 것과 같다. 음악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고, 자신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미처 몰랐던 내면의 결을 확인하는 행위.
그렇다면 이날 강당을 가득 메운 포천 시민들은 그 거울 앞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베토벤의 분노 속에서 자신의 좌절을 발견한 이가 있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완벽한 하모니 속에서 삶의 균형을 꿈꾸는 자신을 본 이도 있었을 것이다. 비올레타의 아리아 속에서 오래전 묻어둔 사랑의 기억을 꺼내든 이도 있었을 것이다.
클래식이 어렵다는 것은 어쩌면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렵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포천에 클래식이 필요한 이유
이번 특강은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니다. 제10기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포천예술대학은 10년의 세월 동안 지역 시민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조용히 키워온 문화적 토양이다.
도시의 품격은 도로의 넓이나 건물의 높이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얼마나 섬세하게 느끼며, 얼마나 풍요롭게 나누는가에 달려 있다. 클래식 음악을 인문학의 언어로 풀어내는 강연이 포천 시청 강당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포천이 어떤 도시를 지향하는지를 말해준다.
포천예총이 상반기 17주 동안 클래식, 미술, 문학 등 9개 과목의 정규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는 계획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일회성 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배움의 과정을 통해 예술이 시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강연의 마지막, 임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 감상은 거울을 보며 자신과 대화하는 것과 같습니다."
강당의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음악은 끝나지 않았다. 베토벤의 네 음표는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었고, 비올레타의 아리아는 누군가의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것이 클래식의 힘이다. 공연장을 나서도, 강연장을 떠나도, 음악은 우리 안에 남아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당신은 지금 어떤 운명과 싸우고 있는가. 당신이 포기할 수 없는 자유는 무엇인가. 당신이 갈망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
3월의 포천에서, 클래식은 그렇게 살아있는 언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언어를 배우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포천예술대학 제10기 정규 과정에 대한 문의는 포천예총 사무국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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