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천시장 선거의 첫 전선, ‘재정안정화기금’이라는 정치

지방선거가 막을 올리면 대개 인물 경쟁과 정당 대결이 전면에 선다. 그런데 포천시장 선거는 시작부터 결이 다르다. 선거 초반을 달구는 쟁점은 후보 개인의 이력이나 정당 구호가 아니라, 다소 딱딱한 행정 용어인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이다. 언뜻 회계 장부 안의 숫자처럼 보이지만, 이번 선거에서 이 기금은 가장 선명한 정치적 상징이 됐다. 누구에게는 민생을 위해 제때 곳간을 연 증거이고, 누구에게는 미래를 대비할 재정의 버팀목을 성급히 허문 흔적이다. 숫자는 차갑지만, 선거에서 숫자는 언제나 가장 뜨거운 언어가 된다.
백영현 국민의힘 후보 측은 분명한 논리를 편다. 재정안정화기금은 비상 상황이나 경기 침체기에 쓰라고 만든 돈이지, 그 자체를 쌓아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 물가 상승, 시민 생활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고, 도로망 확충이나 주차장 조성, 하천과 공원 정비, 교육·돌봄 강화, 생활불편 해소 사업 등에 재정을 적극 투입한 것은 시민 삶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일리가 있다. 지방재정은 결국 시민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곳간을 지키는 일만 행정의 미덕이 될 수는 없다.
박윤국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문제의 본질을 기금 사용 그 자체가 아니라 사용의 속도와 규모에서 찾는다. 민선 7기 역시 코로나19와 각종 재난이라는 혹독한 상황을 겪었지만, 그 와중에도 시민 지원과 재정 여력을 함께 지켜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 후보 측이 “비상금을 3년 만에 급격히 소진했다”거나 “이대로면 2026년 말에는 700억 원대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 후보 측이 ‘적극 행정’을 말할 때, 박 후보 측은 ‘재정 책임’을 말한다. 지금의 필요에 응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위기에 대비할 안전판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양측의 공방은 거칠지만, 사실 이 논쟁은 지방행정의 오래된 딜레마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재정은 늘 두 시간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하나는 오늘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내일의 위험이다. 지금 시민이 겪는 불편과 경기 침체를 외면한 채 재정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도 무책임하지만, 반대로 미래의 충격을 감당할 여지를 남기지 않은 채 단기 성과에 몰두하는 것도 현명한 행정이라 보기 어렵다. 문제는 언제나 균형이다. 결국 좋은 시장이란 재정을 아끼는 사람도, 재정을 과감히 푸는 사람도 아니다. 필요할 때는 쓰되, 다음 위기를 버틸 힘도 남겨두는 사람이다.
이번 포천시장 선거에서 유권자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양측 모두가 자신에게 유리한 숫자만을 앞세울 가능성이다. 백 후보 측은 “기금을 쓴 결과 시민 편익을 높였다”고 말하고, 박 후보 측은 “기금이 지나치게 줄어 재정 건전성이 흔들린다”고 말한다. 둘 다 선거 언어로는 강하다. 그러나 행정의 평가는 구호가 아니라 성과와 구조로 이뤄져야 한다. 백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기금을 왜 썼는지에 대한 원론적 해명보다, 그래서 시민의 삶에서 무엇이 어떻게 나아졌는지 입증하는 일이다. 박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기금을 많이 남겼다는 과거의 실적보다, 앞으로도 민생과 재정 안정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보여주는 일이다.
실제로 지방선거에서 예산 논쟁은 쉽게 생활의 언어로 번역된다. ‘곳간’, ‘비상금’, ‘소진’ 같은 표현은 복잡한 재정 구조를 모르는 시민에게도 직관적으로 다가간다. 문제는 그 직관이 때로는 본질을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기금이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무능을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아직 일정 규모가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정 운용이 건전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사용의 내용과 남은 여력, 그리고 향후 재정 수요를 감당할 계획이다. 포천처럼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침체, 기반시설 확충, 미래 투자 수요가 동시에 겹쳐 있는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재정안정화기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도시의 시간표와 맞물린 전략 자산에 가깝다.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이번 논쟁은 흥미롭다. 백 후보는 ‘행동하는 행정가’의 이미지를 원한다. 시민의 삶이 어려울 때 곳간을 열 줄 아는 시장이라는 상징을 가져가려 한다. 반면 박 후보는 ‘재정을 지켜낸 관리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한다. 위기 속에서도 곳간을 지켜낸 사람만이 다시 도시의 미래를 맡을 자격이 있다는 논리다. 하나는 현재를 위한 결단, 다른 하나는 미래를 위한 절제다. 선거는 결국 이 두 미덕 가운데 무엇이 지금 포천에 더 절실한지 묻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나쁜 답은 둘 중 하나만 붙드는 것이다. 지금 포천에 필요한 것은 무작정 쓰는 리더십도, 무작정 아끼는 리더십도 아니다.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투자와 장기적 재정 체력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다. 포천의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따져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기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줄었는지를 넘어 그 돈이 어떤 철학 아래 어디에 쓰였는지, 남은 여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다음 위기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선거 초반부터 불붙은 재정안정화기금 공방은 앞으로도 더 거칠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 논쟁이 단지 상대를 향한 비난 경쟁으로 끝난다면 포천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은 자극적인 수사보다 정직한 설명이다. 누가 더 큰 목소리로 상대를 공격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구체적인 숫자와 더 설득력 있는 재정 계획을 내놓는가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의 수준은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결국 재정은 정치의 거울이다. 무엇에 돈을 쓰는가는 그 도시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는지 보여주고, 무엇을 남겨두는가는 어떤 미래를 준비하는지 말해준다. 포천시장 선거의 ‘재정안정화기금’ 공방은 단순한 예산 다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돌보는 정치와 미래를 준비하는 행정 사이의 간극을 누가 더 책임 있게 메울 수 있느냐를 겨루는 시험대다. 유권자가 봐야 할 것은 기금 자체가 아니라, 그 기금을 대하는 후보들의 철학과 능력이다. 선거는 결국 숫자가 아니라 신뢰를 뽑는 일이기 때문이다.
메트로포천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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